윤대통령 글쓰기는 '미니멀리즘'…민주당도 "짧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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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연설문 4316자로 文·朴 절반 분량"시정연설이 짧아서 좋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40분 가까이 하는데 그러면 말하는 분도 그렇고 듣는 사람도 집중도가 유지되기 어렵거든요(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취임사도 30분에서 16분으로 다이어트
尹 직접 넣은 단어 '반지성주의' 화제
"통합·분배 등 핵심키워드 빠져" 지적도
감성적 수사 절제하고 핵심 단어 강조
윤석열 대통령의 짧은 연설이 화제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문을 15분 가량 읽었다. 특이한 점은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의 호평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도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30분 안 되게 연설을 하셨는데 짧다는 게 허술하다거나 소홀하다는 게 아니라 짧으면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얘기를 몇 가지 남기셨다"고 평가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연설문을 전임 대통령들의 절반 수준으로 파격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본회의장에서 읽은 연설문은 총 4316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첫 국회 시정연설 연설문(8134자)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8611자)의 절반가량이다. '간결한 글'을 선호하는 윤 대통령의 스타일은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 취임사는 총 3440자다. 문 전 대통령(3121자)보다 길지만, 박 전 대통령(5196자), 이명박 전 대통령(8688자) 대통령보다 짧다.
윤 대통령은 초안으로 받은 취임사 내용을 확 쳐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각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취임사준비위원장이 16명의 준비위원과 함께 준비한 30분 분량의 초안을 제출했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보고는 김동조 연설기록비서관과 함께 '연설문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윤 대통령이 뚜렷한 메시지, 간결한 연설을 원했다는 것이다. 최종 결과물은 초안의 절반 수준인 16분37초의 연설이었다.
군살을 덜어내자 핵심이 더 선명히 드러났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키워드인 '자유'가 35회 등장하며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이 직접 추가했다고 알려진 단어 '반지성주의'는 한동안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지나치게 내용을 압축한 나머지 통합·분배·협치 등의 키워드가 빠졌다는 비판도 나왔다. 좌우를 아우르고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할 대통령의 취임사치고는 다소 편향적이었다는 지적이다.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분배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거나 (했다)"며 "뉴라이트 선언문과 같은 그런 내용이 아닌가 싶다"고 혹평했다. 윤 대통령이 추구하는 '간결함'은 문장에서도 드러난다. 윤 대통령은 감정을 자극하는 미사여구보다는 내용과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표현을 선호한다는 게 대통령을 보좌한 이들의 전언이다.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지난 8일 부처님오신날에 한 경축사에는 이같은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나무는 꽃을 버려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 바다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비우며 이웃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짊어진 불교의 자비행은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상생의 정신으로 피어나 코로나를 이겨내는 힘이 되었습니다.문 전 대통령은 불교 경전 화엄경의 한 대목인 "나무는 꽃을 버려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 바다에 이른다"를 인용해 한국 불교의 상생정신을 강조했다. 수사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이 눈에 띈다.
법회와 연등회의 중단 속에서도 불교는 어려운 이웃을 돕고 지친 의료진을 위로했습니다. 최근에는 경북과 강원지역의 산불피해 복구와 우크라이나 국민 지원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언제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전해주고 계신 불교계의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부처님오신날 경축사)
한국 불교는 늘 국민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국난극복을 위해 앞장서 왔습니다. 불교의 문화 유산은 우리 국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부처님 오신날의 봉축표어가 ‘다시 희망이 꽃피는 일상으로’ 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고, 공동체를 위해 연대와 책임을 다한다면 매일 매일이 희망으로 꽃 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여러 도전과 위기가 있지만 다시 새롭게 도약하고, 국민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새 정부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부처님오신날 경축사)
윤 대통령의 경축사에는 감성적인 표현이 절제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한국 불교의 상생정신을 "국민의 든든한 버팀목" "국난 극복을 위해 앞장서왔다"이라는 담담한 표현으로 평가했다. '공동체를 위해 연대와 책임을 다한다면'과 같은 표현에는 '자유'와 같은 추상어를 선호하는 윤 대통령의 스타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고민한 결과나 메시지의 의미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한다"며 "결과적으로는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즘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