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 배제 못해"…'깜짝 발언' 이창용의 노림수 [조미현의 BOK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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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전 8시 40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찬 회동을 한 뒤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당초 백브리핑은 예정에 없었지만, 추 부총리의 제안에 기자들은 두 수장에게 질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총재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발언'이 나온 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평가와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75bp(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물가와 성장이 어떻게 변할지를 조금 더 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이는 한 달 전 "한국은 빅스텝 필요성이 낮다"고 밝힌 이 총재의 입장과는 다른 얘기였습니다. 더욱이 콜금리 목표제가 폐지된 2008년 이후 한국이 0.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올린 적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자 국고채는 일제히 전 거래일 대비 0.1%포인트 이상 급등했습니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한때 전 거래일보다 0.17%포인트 오른 연 3.082%로, 4거래일 만에 연 3%를 넘어섰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이 나오고 2시간 뒤 한은은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참고' 설명을 내놨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 위한 취지"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총재의 발언을 수습하는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총재의 말에 곧바로 부연 설명을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그만큼 이 총재의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총재가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한은 설명대로 원론적인 입장에 가깝습니다. 이 총재는 빅스텝과 관련, "5월 금융통화위원회 상황을 보고 7, 8월 경제 상황과 물가 변화 등을 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빅스텝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면 빅스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지정학적인 요인과 자연재해 등 대외적인 돌발 변수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해질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이 총재가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주재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도 "한국의 경우 국제유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공급 측 요인, '수입된 인플레이션(imported inflation)'의 영향이 크다"며 "현시점에서는 물가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임금 부문으로까지 전이돼 상호 상승하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제 이 총재는 빅스텝을 언급한 뒤 한은 관계자에게 "향후 3~4개월의 물가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선진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파월 의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마켓플레이스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우리가 연착륙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사실상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달려 있을 수 있다"며 "경제가 예상대로 움직이면 향후 두 번의 통화정책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중앙은행이 시장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이 어려운 대외적인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흘 앞두고도 한은에서는 지난달 25일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 이후 이렇다 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4월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지난달과는 또 다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의 발언은 '상반기에는 빅스텝 필요성이 낮지만, 물가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만큼 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경고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의 발언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며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심리를 가라앉힐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빅스텝'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충격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다른 표현으로 할 수도 있다"며 "전임 총재와의 의사소통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이와 별개로 채권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 발언을 계기로 최근 국채 시장이 굉장히 예민하다는 걸 잘 드러냈다"며 "뉴스 내용을 파악도 안 한 채 제목만 보고 팔아버린 뒤 내용이 파악되면 다시 사들이는 식으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중앙은행과 시장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통화정책 수장에게 시장이 적응해야 할 필요도 높아졌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이 총재의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발언'이 나온 건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에 대한 평가와 한·미 기준금리 역전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총재는 "제롬 파월 Fed 의장이 75bp(0.75%포인트) 인상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데이터가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빅스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우리나라 물가와 성장이 어떻게 변할지를 조금 더 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이는 한 달 전 "한국은 빅스텝 필요성이 낮다"고 밝힌 이 총재의 입장과는 다른 얘기였습니다. 더욱이 콜금리 목표제가 폐지된 2008년 이후 한국이 0.5%포인트 이상 기준금리를 올린 적이 없기 때문에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이 전해지자 국고채는 일제히 전 거래일 대비 0.1%포인트 이상 급등했습니다.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이날 한때 전 거래일보다 0.17%포인트 오른 연 3.082%로, 4거래일 만에 연 3%를 넘어섰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이 나오고 2시간 뒤 한은은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라며 '참고' 설명을 내놨습니다. 이 총재의 발언에 대해 "확대 해석을 경계하기 위한 취지"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총재의 발언을 수습하는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한은이 총재의 말에 곧바로 부연 설명을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며 "그만큼 이 총재의 발언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 총재가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한은 설명대로 원론적인 입장에 가깝습니다. 이 총재는 빅스텝과 관련, "5월 금융통화위원회 상황을 보고 7, 8월 경제 상황과 물가 변화 등을 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당장 빅스텝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앞으로 물가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으면 빅스텝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지정학적인 요인과 자연재해 등 대외적인 돌발 변수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얼마나 심해질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지난 13일 이 총재가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주재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도 "한국의 경우 국제유가 상승, 글로벌 공급망 교란 등 공급 측 요인, '수입된 인플레이션(imported inflation)'의 영향이 크다"며 "현시점에서는 물가에 대한 과도한 우려가 임금 부문으로까지 전이돼 상호 상승하는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이 총재의 '빅스텝 발언'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실제 이 총재는 빅스텝을 언급한 뒤 한은 관계자에게 "향후 3~4개월의 물가 상황이 불확실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선진국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과 소통에 나서고 있습니다. 미국의 파월 의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마켓플레이스라는 팟캐스트에 출연해 "우리가 연착륙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인데 이는 사실상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달려 있을 수 있다"며 "경제가 예상대로 움직이면 향후 두 번의 통화정책회의에서 0.5%포인트 인상이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미국과 한국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중앙은행이 시장과 소통하려는 의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예측이 어려운 대외적인 변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5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흘 앞두고도 한은에서는 지난달 25일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 이후 이렇다 할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4월 금통위 의사록이 공개되기는 했지만, 한국 경제를 둘러싼 상황은 지난달과는 또 다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총재의 발언은 '상반기에는 빅스텝 필요성이 낮지만, 물가 상황이 심상치 않은 만큼 긴장해야 한다'는 취지의 '경고음'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의 발언은 시의적절했다고 본다"며 "물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심리를 가라앉힐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빅스텝'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충격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다른 시장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고를 다른 표현으로 할 수도 있다"며 "전임 총재와의 의사소통 방식과는 분명히 다른 지점"이라고 말했습니다.이와 별개로 채권시장이 과민하게 반응했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이 총재 발언을 계기로 최근 국채 시장이 굉장히 예민하다는 걸 잘 드러냈다"며 "뉴스 내용을 파악도 안 한 채 제목만 보고 팔아버린 뒤 내용이 파악되면 다시 사들이는 식으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불확실성이 커진 시기에 중앙은행과 시장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소통을 중시하는 새로운 통화정책 수장에게 시장이 적응해야 할 필요도 높아졌습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