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째로 빼돌렸다…中 넘어간 삼성반도체 핵심기술 뭐길래

초임계 세정 장비, 불량율 줄이는데 필수
기술 유출로 800억원의 부당이득 올린 혐의
세메스의 초임계 세정장비 [사진=세메스 홈페이지 캡처]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 출신 전직 연구원 등 일당이 중국에 핵심 반도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해당 기술인 '초임계 세정 장비'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제2, 제3의 반도체 원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서는 약정보다는 합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초임계(액체와 기체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 세정 기술은 반도체 생산 장비를 만드는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가 2018년 세계 최초로 개발, 삼성전자에만 납품해왔다. 특히 미세 반도체 불량률을 줄이는데 필수여서 경쟁사들도 관심을 보였을 만큼 혁신적인 장비로 평가받고 있다.세정장비는 반도체 기판을 극도로 깨끗하게 세팅해주는 설비다. 통상 현대 반도체 산업은 머리카락 굵기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나노미터(nm) 단위로 공정이 이뤄진다.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한 입자 수준의 먼지나 오염물만 묻어도 수율(양품 비율)에 치명적 영향을 끼친다. 세정장비는 이같은 부정 변수를 제거해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핵심 장비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극도로 정제한 물인 '초순수'를 이용해 세정작업을 했지만 이 과정에서 물이 튀어 반도체 회로를 훼손시키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세정장비가 고안됐다. 이 장비는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로 반도체 기판의 불순물을 제거해 회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다.

오늘날 초임계 세정장비는 삼성전자과 SK하이닉스의 10nm대 DRAM(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에 투입되는 핵심 설비로 손꼽힌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초임계 세정장비의 설계를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했으며 관련 법령에 따라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하고 관리 중이다.세메스는 1993년 설립된 반도체 장비 전문 기업으로, 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 등 글로벌 경쟁업체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초임계 세정장비를 상용화한 기업이다.

당초 삼성전자가 일본 다이니폰스크린(DNS)과 합작한 '한국DNS'로 시작했으나 2005년 이후 사명을 세메스로 바꿨으며 현재는 삼성전자가 DNS 지분을 전량 사들여 계열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매출 3조1280억원, 영업이익 3533억원을 기록해 국내 반도체 장비 회사 중 유일하게 매출 3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와 세메스는 개발 인력 전직을 금지하는 약정까지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높은 보안으로 도면 훔치기나 인력 빼가기가 어려워지자 이번에 새로운 수법이 동원됐다. 부품 협력사들과 접촉해 공정 전체를 통째로 복사하다시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스1
앞서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세메스 전직 연구원 2명과 부품 협력사 직원 2명 등 총 4명을 구속기소했다.

이들은 2018년 중국 소재 연구소와 접촉해 세메스 측이 세계 최초로 개발해 삼성전자에만 납품해온 초임계 세정 장비를 그대로 만들어줄 수 있다면서 생산 설비가 없는 상태에서 18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실제로 이들은 중국과 합작 회사를 만들어 초임계 세정 장비를 만들어 넘긴 것으로 파악됐다. 지금까지 모두 800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린 혐의를 받는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핵심 기술 유출 시도는 국가적 손실을 불러오는 만큼 업계에선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반도체 왕국 재건을 꿈꾸는 일본, 글로벌 파운드리 1위 TSMC를 보유한 대만은 각자의 원천 반도체 기술을 지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기술 유출 건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핵심 기술을 약정과 제재, 애국심으로만 지키는 것은 언젠가는 한계에 직면한다"며 "적어도 반도체 원천 기술만큼은 그에 합당한 보상이 이뤄져야 제2, 제3의 기술 유출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