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된 ‘성평등’…젠더 다양성 갖춘 기업에 돈 몰린다

ESG 핵심 주제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이 꼽힌다. UBS 글로벌 성평등 ETF는 한 주 만에 1억 7만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주식 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ESG 가치주 ETF로 자금 유입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메리츠자산운용의 더우먼펀드가 대표적이다
[한경ESG] 투자 트렌드
한국거래소(KRX) 서울사옥에서 열린 'KRX-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성평등을 위한 링더벨' 행사에서 손병두 이사장(왼쪽 네 번째)과 주요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거래소 제공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핵심 이슈는 성평등이다.’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는 지난 5월 ‘기업의 ESG 경영을 여성이 주도해야 하는 5가지 이유’를 소개하며 이처럼 강조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여러 분야 가운데 성평등에 대한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는 만큼 기업의 ESG 경영 역시 여성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미국 컨설팅업체 딜로이트가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ESG 중역 조사(ESG executive survey)’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ESG 핵심 주제로 다양성·형평성·포용성을 꼽았다. 환경(E) 부문 핵심 과제인 온실가스 배출(49%)을 넘어선 수치다. ESG 투자에서도 성평등은 주요 투자 지표로 떠올랐다. 기업의 ESG 평가에 ‘성평등’ 점수가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에서 오는 8월부터 시행되는 새 자본시장법은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의 이사회를 특정 성(性)이 독식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업들이 앞다퉈 여성 인재를 확보하려는 이유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역시 국내 ESG의 핵심 키워드로 ‘여성’을 꼽았다. ‘여성이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성평등에 몰려든 뭉칫돈

5월 들어 전 세계 ESG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가장 큰 뭉칫돈이 유입된 ETF는 ‘UBS ETF 글로벌 성평등(gender eqlty) USD A Acc’다. ‘솔라액티브 이퀼립 글로벌 성평등 100 리더스 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으로 한 주 만에 1억7330만 달러의 자금이 유입됐다. 기업 내 평등한 인사 구조, 동등한 보상, 성평등 촉진 정책 등을 기준으로 기업들을 추려내 이를 지수화했다. 지지부진한 증시 상황 탓에서 ESG에 대한 투자가 주춤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성평등이란 ESG 테마에 눈을 돌린 셈이다. 고경범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주식 시장의 변동성 확대로 ESG 투자 심리 위축된 상황에서 성장주에 대한 거품 논란이 생기면서 ESG 가치주 ETF로의 자금 유입이 증가했다”며 “젠더 이슈를 투자 전략으로 삼고 있는 ‘UBS ETF 성평등 USD’로 자금 유입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이미 성평등을 테마로 한 다양한 ETF가 출시돼 있다. 2016년 상장한 ‘SPDR SSGA 젠더 다양성 (Gender Diversity) Index ETF가 대표적이다. 티커명이 ‘SHE’인 이 상품은 성평등을 중시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경영진이나 이사회 구성원 중 여성이 한 명도 없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는다. 포트폴리오에 담긴 상위 종목에는 유나이티드헬스그룹, 비자, 세일즈포스, 월드디즈니, 코카콜라, 나이키 등이 있다.

성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ESG ETF ‘IQ 인젠더 평등(Engender Equality) ETF(티커명 EQUL)’도 상장돼 있다. 미국 상장기업 중 젠더 다양성 점수가 가장 높은 75개 기업에 투자한다. 화석연료, 핵에너지, 무기, 논란이 많은 사업 관련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근 2년간 비윤리적 사업을 펼친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울러 남녀 간 평등한 보상이 이뤄지고 있는지, 양성평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등을 평가한 점수로 기업을 추린다. 이 밖에 근로자 성비 등을 반영해 투자 대상을 선별하는 2018년 출시된 ‘임팩트 셰어즈 YMCA 우먼스 임파워먼트 ETF(티거명 WOMN)‘도 있다.
“다양성 갖춘 회사가 더 성장한다”국내에선 메리츠자산운용의 메리츠더우먼펀드가 성평등과 관련된 대표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메리츠자산운용은 메리츠더우먼펀드에 대해 “기업의 펀더멘탈을 분석함에 있어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기준을 추가적으로 적용해 우수한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국내 기업을 선별, 지속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존 리 대표는 이와 관련해 “미국에선 다양성이 중시되는 기업의 성과가 월등히 높고 그런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의 성과가 크게 차이가 난다”며 “같은 기업이라도 여성의 임금 차이가 없다든가 여성의 승진 기회가 높은 기업의 성과가 월등히 높다”라고 강조했다. 메리츠더우먼펀드를 운용하고 있는 박정임 매니저 역시 “다양성과 포용을 회사 전략에 반영하는 기업들이 실제 다양한 고객들에 대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을 확률이 높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메리츠더우먼펀드는 카카오, SK하이닉스, JYP엔터테인먼트, LG생활건강, 인터로조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고 있다.

해외 관련 펀드로는 캐다나의 BMO우먼리더십펀드가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여성이거나 이사회에서 여성 비율이 25% 이상 되는 기업이 투자 대상이다. 일본에는 여성 근로자와 임원 비율 등을 고려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MSCI재팬우먼인덱스펀드가 있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가 국내·외 여성 친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6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여성 차별이 없는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들의 수익률이 연평균 18%로 시장 평균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거세지는 성평등 요구

기업들의 ESG 경영 평가에서 성평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여성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오는 8월부터 새로운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는 것도 기업들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 개정을 앞두고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30대 그룹의 여성 사외이사 비중이 처음으로 15%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분기 78명에서 올해 1분기 119명으로 증가했다. 여성 사외이사 중 학계 출신은 40.3%(48명), 관료 출신은 26.1%(31명)이었다.

성평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한국ESG연구소에 따르면 ISS, 글래스루이스 등 의결권 자문기관은 최근 발간한 한국에 대한 의결권 행사 가이드라인에서 자본시장법 적용 대상 기업이 이사회 내에 여성 이사를 한 명 이상 선임하지 않는 경우 해당 기업의 후보추천위원회 위원장 또는 이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사에 대한 재선임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 최대 규모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도 투자 기업에 여성 이사를 확대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투자 회사 가운데 이사회의 여성 비중이 30%에 못 미치는 회사에 대해 여성 이사 충원 목표를 설정하도록 하는 등 여성 이사 확충을 요구하는 내용을 정책 입장 표명서에 담았다.

박재원 한국경제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