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밤샘 공부'가 능사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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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수면 중 뇌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 두 가지 현상, 기억 안정화와 뇌 활동 부산물 처리를 얘기하고자 한다.
의과대학 학부 과정은 학습량이 많아 개강 후에 미적대다가는 중간고사에서 쩔쩔매기 일쑤다. 과목에 따라서는 시험 전날에야 준비하는 ‘벼락치기’가 불가피하다. 새벽까지 시험 범위를 겨우 섭렵하고서야 쪽잠을 자고 시험장에 가기도 한다. 한 번은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자고 공부하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다. 외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도저히 기억이 안 났다.뇌 과학을 연구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결과임을 알게 됐다. 새롭게 습득한 지식을 오래 기억하려면 ‘기억 안정화’를 거쳐야 한다. 이는 뇌의 해마에서 형성된 기억이 대뇌피질 등에 안정적인 장기기억으로 전환·보관되는 과정인데 주로 수면 중에 일어난다.
기억 안정화에는 신경세포 내에 새로운 단백질 생산이 필요하다. 이 단백질들이 기억 회로를 연결하는 구조물인 시냅스를 강화한다. 분자신경생물학 연구 결과는 학습·기억 증진을 위한 약물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72시간 동안 잠을 못 잔 쥐의 해마에는 산화스트레스가 쌓여 학습이 어려워지는데, 실험 전에 항산화제를 투여하면 수면 부족에 의한 학습 능력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수면 중 뇌파를 분석해 보면, 해마와 전두엽 간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두 부위의 뇌파가 특정 주파수에서 동조화함으로써 해마에서 생성된 기억이 대뇌피질로 이송돼 장기기억으로 보관된다. 이 뇌파 동조화를 방해하면 기억 안정화가 저해된다. 반대로, 학습 후 수면 중에 전기 자극으로 특정 뇌파를 강화하면 기억이 증진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은 수면 자체가 학습의 필수 과정임을 의미한다. ‘밤샘 공부’가 능사가 아니다.
풍성한 잔치일수록 뒷정리가 고달프듯 뇌가 활발히 활동할수록 활성산소를 비롯한 쓰레기가 많이 쌓인다. 이들 쓰레기는 뇌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 핵산 등 주요 성분에 상처를 입혀 결국 기능에 장애를 일으킨다. 이런 뇌 속 쓰레기의 처리는 주로 자는 동안 진행된다. 몸의 각 조직에서 생성되는 대사 산물은 림프시스템(lymphatic)을 통해 점차 큰 림프관으로 모이고, 가슴림프관을 거쳐 혈관계로 전달돼 간 등에서 처리된다. 그러나 뇌에서는 이런 림프관을 볼 수 없다.
아드레날린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긴장, 흥미를 느낄 때 정신 집중을 이끈다. 뇌 활동이 활발한 낮 동안에는 아드레날린 생산이 증가하다가, 깊이 잠들면 아드레날린이 감소하면서 글림프시스템 작동이 최대 2배 증가해 뇌 활동의 부산물 청소가 2배 빠르게 진행된다.
중·노년에 불면증 등 수면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뇌에 알츠하이머 병리 소견 생성 및 치매 확률이 높다. 50세까지 남녀 7959명을 25년에 걸쳐 관찰한 연구에 의하면 지속해서 수면시간이 6시간인 사람은 정상인(7시간)에 비해 치매 위험이 30% 증가했다. 동물에서도 수면을 방해하면 뇌에 산화스트레스 증가, 뇌-혈관 장벽 손상, 베타아밀로이드 증가가 일어났다.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면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전에 수면장애가 먼저 생긴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즉 알츠하이머 치매 발생 과정에서 수면장애와 베타아밀로이드 병리의 생성은 서로 밀어주는 되먹임의 고리를 이룬다. 수면을 보약처럼 귀하게 대할 이유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에스엘바이젠 이사
의과대학 학부 과정은 학습량이 많아 개강 후에 미적대다가는 중간고사에서 쩔쩔매기 일쑤다. 과목에 따라서는 시험 전날에야 준비하는 ‘벼락치기’가 불가피하다. 새벽까지 시험 범위를 겨우 섭렵하고서야 쪽잠을 자고 시험장에 가기도 한다. 한 번은 아침까지 한숨도 못 자고 공부하다가 시험을 망친 적이 있다. 외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도저히 기억이 안 났다.뇌 과학을 연구하면서 그것이 당연한 결과임을 알게 됐다. 새롭게 습득한 지식을 오래 기억하려면 ‘기억 안정화’를 거쳐야 한다. 이는 뇌의 해마에서 형성된 기억이 대뇌피질 등에 안정적인 장기기억으로 전환·보관되는 과정인데 주로 수면 중에 일어난다.
기억 안정화에는 신경세포 내에 새로운 단백질 생산이 필요하다. 이 단백질들이 기억 회로를 연결하는 구조물인 시냅스를 강화한다. 분자신경생물학 연구 결과는 학습·기억 증진을 위한 약물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72시간 동안 잠을 못 잔 쥐의 해마에는 산화스트레스가 쌓여 학습이 어려워지는데, 실험 전에 항산화제를 투여하면 수면 부족에 의한 학습 능력 저하를 예방할 수 있다.
수면 중 뇌파를 분석해 보면, 해마와 전두엽 간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두 부위의 뇌파가 특정 주파수에서 동조화함으로써 해마에서 생성된 기억이 대뇌피질로 이송돼 장기기억으로 보관된다. 이 뇌파 동조화를 방해하면 기억 안정화가 저해된다. 반대로, 학습 후 수면 중에 전기 자극으로 특정 뇌파를 강화하면 기억이 증진된다. 이 같은 연구 결과들은 수면 자체가 학습의 필수 과정임을 의미한다. ‘밤샘 공부’가 능사가 아니다.
자는 동안 뇌에선 무슨 일이…
수면 중 뇌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중요한 일은 낮 동안의 뇌 활동으로 쌓인 쓰레기의 처리다. 성인의 뇌는 체중의 2%에 불과하지만 전체 몸이 필요로 하는 산소와 당의 20%를 소모한다. 다른 장기에 비해 무게당 10배의 에너지를 쓰는 셈이다.풍성한 잔치일수록 뒷정리가 고달프듯 뇌가 활발히 활동할수록 활성산소를 비롯한 쓰레기가 많이 쌓인다. 이들 쓰레기는 뇌세포를 구성하는 단백질, 핵산 등 주요 성분에 상처를 입혀 결국 기능에 장애를 일으킨다. 이런 뇌 속 쓰레기의 처리는 주로 자는 동안 진행된다. 몸의 각 조직에서 생성되는 대사 산물은 림프시스템(lymphatic)을 통해 점차 큰 림프관으로 모이고, 가슴림프관을 거쳐 혈관계로 전달돼 간 등에서 처리된다. 그러나 뇌에서는 이런 림프관을 볼 수 없다.
수면 중 지식은 장기기억으로 전환
그렇다면 뇌는 그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까? 이 오랜 의문이 최근 동물실험으로 풀렸다. 혈관을 둘러싼 아교세포에 의존하는 ‘글림프시스템(glymphatic)’이 열쇠다. 흥미롭게도, 글림프시스템은 밤에 훨씬 활발하게 작동한다. 수면 중에는 글림프시스템을 억제하는 신경 조절 물질인 아드레날린 분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아드레날린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거나 긴장, 흥미를 느낄 때 정신 집중을 이끈다. 뇌 활동이 활발한 낮 동안에는 아드레날린 생산이 증가하다가, 깊이 잠들면 아드레날린이 감소하면서 글림프시스템 작동이 최대 2배 증가해 뇌 활동의 부산물 청소가 2배 빠르게 진행된다.
중·노년에 불면증 등 수면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뇌에 알츠하이머 병리 소견 생성 및 치매 확률이 높다. 50세까지 남녀 7959명을 25년에 걸쳐 관찰한 연구에 의하면 지속해서 수면시간이 6시간인 사람은 정상인(7시간)에 비해 치매 위험이 30% 증가했다. 동물에서도 수면을 방해하면 뇌에 산화스트레스 증가, 뇌-혈관 장벽 손상, 베타아밀로이드 증가가 일어났다.베타아밀로이드가 축적되면 인지능력이 저하되기 전에 수면장애가 먼저 생긴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즉 알츠하이머 치매 발생 과정에서 수면장애와 베타아밀로이드 병리의 생성은 서로 밀어주는 되먹임의 고리를 이룬다. 수면을 보약처럼 귀하게 대할 이유다.
신희섭 IBS 명예연구위원·에스엘바이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