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 지도자, 총선 과반의석 확보 실패 인정…협조 촉구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 정파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가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 치러진 총선 결과를 수용한다는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전날 밤 TV 연설에서 "총선에서 큰 승리를 얻었다"고 자평하면서도 "2018년 총선과 달리 어떤 정치 그룹도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치러진 총선에서 헤즈볼라 동맹 측은 과반(65석)에 못 미치는 61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2018년 총선에서는 전체 128석의 의석 중 71석을 차지했었다.

헤즈볼라와 또 다른 시아파 정당인 아말 운동 등이 기존 의석을 지켰지만, 미셸 아운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 애국 운동'(FPM)과 이슬람 드루즈파 계열 정당 등 다른 동맹 정당들이 부진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으며 헤즈볼라와 맞섰던 민족주의 성향의 기독교계 정당 '레바논 포스'는 19석을 확보해 최대 기독교계 정당이 됐다.

또 2019년 실업난 해소와 부패 청산 등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야권세력 '변화의 힘'(Force of Change)도 예상을 뛰어넘는 14명의 무소속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번 총선 결과는 2019년 시작돼 3년 만에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은 경제위기를 부채질한 집권 세력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헤즈볼라 동맹을 포함한 모든 정치 그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서, 향후 총리 및 대통령 선출과 정부 구성 과정의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나스랄라는 각 정당과 무소속 당선자들의 협력과 협조를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혼돈과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때 창설됐으며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 1980년대에는 항공기 납치 등으로 악명을 떨쳤고 1990년대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처럼 자살폭탄 공격을 테러 수법으로 이용했다.

또 헤즈볼라는 다른 한편으로 1992년부터 선거에 참여하면서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1975년부터 1990년까지 장기 내전을 치른 레바논은 이후 세력 균형을 위한 합의에 따라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출신이 각각 맡는 독특한 권력분점 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런 권력분점이 낳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이 19세기 이후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는 레바논 경제위기의 근원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