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억 걸작이 된 먼로…아메리칸 드림이 만든 20세기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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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명작 유레카
앤디 워홀 '샷 세이지 블루 마릴린'
20세기 작품 중 최고가인 이유 셋
(1) 20세기 상징하는 이미지
먼로, 가난 극복하고 슈퍼스타로 거듭
당시 시대정신 아메리칸 드림의 '심벌'
(2) 워홀 스타일 가장 잘 묻어나
상업성은 그림의 품격 떨어뜨린다는
인식 거부하고…물질·소비주의 찬양
(3) 순수예술에 재생산 방식 도입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원본 '대량 제작'
색은 다르게 사용…혁명적인 창작방식
“예술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로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과 같은 그림이 꼽힌다. 이 작품은 그 맥을 잇는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면서도 매우 워홀다운 방식으로 끝없이 재생산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플럼은 이 작품이 걸작인 이유로 ‘상징적 이미지’, ‘워홀 스타일’, ‘재생산’을 꼽았다. 이 세 가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작품을 감상하면서 차례로 짚어보자.먼저 상징적 이미지는 시대성을 의미한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술가는 시대의 특성이나 가치를 유형화하는 존재”라고 말했다. 시대정신을 작품에 표현하는 일이 곧 예술가의 사명이자 역할이라는 뜻이다.
네덜란드의 경제학자 한스 애빙에 따르면 예술가는 예술이 신성하다고 믿는다. 상업성이 예술의 품격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신념을 위해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하고 경제적 고통을 감수한다. 하지만 워홀은 예술의 순수성을 지키는 예술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했다.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해 엄청난 돈을 벌었고 세계적 명성도 얻었다.
순수예술은 상위예술이며 상업예술은 하위예술이라는 사회적 인식에서도 자유로웠다. “돈을 버는 것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훌륭한 사업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예술이다. (중략) 미래에는 백화점은 미술관, 미술관은 백화점이 될 것”이라는 어록을 남길 정도로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찬양했다. 그는 비즈니스 세계의 효율성과 예술세계의 창조성을 결합한 아트 마케팅 전략으로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통합한 업적을 남겼다.
끝으로 재생산 방식이다. 워홀은 광고 전단, 상표 등을 제작하는 상업용 인쇄 방식인 실크스크린 기법을 순수미술에 도입해 창작의 생산성을 높인 최초의 예술가다. 1962년 자신이 ‘팩토리’(공장)라고 불렀던 거대한 작업실을 마련하고, 화폭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대신 수십 명의 조수와 함께 사진 이미지를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캔버스에 대량으로 복제하는 혁명적 창작 방식을 선보여 미술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한낱 인쇄물이 어떻게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워홀의 혁신적인 전략이 숨겨져 있다. 실크스크린 원본을 대량으로 제작하고, 여러 단계의 복잡한 작업과정을 거쳐 복제한 이미지 하나하나를 색깔을 다르게 칠하고, 색조 대비를 활용하는 등 회화성을 부여해 차별화했다. 상업미술에서 사용하는 대량생산한 이미지와 순수미술의 핵심인 유일성이 결합돼 대체불가능한 원본 가치를 갖게 된 것이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