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엔 다방서 위스키 마셨다…홍차 넣으면 위티, 물 섞으면 깡티 [명욱의 호모 마시자쿠스]
입력
수정
지면A19
100년 전엔 위스키를 '유사길'로 불러위스키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 패러다임이 바뀐 덕이다. 과거에는 위스키의 90%가 유흥주점에서 폭탄주로 소비됐지만 이젠 집에서 마신다. 10여 년 전부터 폭음 문화가 점차 사라졌고, 술의 맛과 향을 즐기고 음미하는 문화가 확산한 영향이다. 코로나19로 집에서 가볍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탄산수와 레몬으로 도수를 낮춰 칵테일처럼 마시는 ‘하이볼’을 만들기 시작했다. 100년 이상 된 역사, 문화, 그리고 각각의 지역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위스키의 매력으로 꼽힌다.
도라지 없는데 왜 '도라지 위스키'일까
상표권 분쟁으로 '도리스'가 '도라지'로
오랜 역사의 위스키를 왜 우리나라에선 최근에야 다양하게 마시게 됐을까. 위스키는 100년 전에도 있었다. 1883년 12월 20일자 《한성순보》에 따르면 수입되는 주류에 따른 관세 내역이 나와 있다. 바로 30%의 관세를 적용한다는 내용으로 유사길(惟斯吉)이란 단어가 언급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위스키. 중국의 한자를 차음하다 보니 재미있는 발음이 나왔다. 다른 주류들도 마찬가지다. 박란덕(撲蘭德)은 브랜디, 상백윤(上伯允)은 샴페인을 지칭했다. 그렇게 위스키의 역사는 ‘유사길’로 시작됐다.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백마표 위스키’가 유행했다. 영국에서 수입한 ‘White Horse Whisky’로 고대 북유럽 전투의 신이 백마를 타고 나타난 것에서 유래한 브랜드다. 하지만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영국과 무역 교역이 힘들어지면서 사라졌고, 밀주 위스키 등이 성행하게 된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밀수입한 ‘토리스 위스키’가 인기를 끄는데, 이것을 그대로 따라 한 ‘도리스 위스키’가 등장했다. 물론 위스키 원액이 아니라 소주에 색소를 넣은 유사 위스키였다. 하지만 토리스 위스키와 상표권 분쟁에 휩쓸리자 이름을 슬며시 바꿔준다. 그것이 바로 최백호 씨의 노래 ‘낭만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도라지 위스키’다. 당연히 도라지는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해당 제품은 1970년대에 세를 확장하고 다방에서 판매됐다. 여기에 백양 위스키, 쌍마 위스키와 같은 국산 유사 위스키들이 등장하면서 위스키계의 3대 트로이카가 완성됐다. 다방에서 위스키가 팔린 이유는 간단했다. 다방은 찻집으로 분류돼 있었기에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위스키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방에서 술을 파는 것 또한 불법이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홍차에 위스키를 넣은, 위스키티 일명 ‘위티’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게 됐다. 여기에 위스키에 물을 넣은 ‘깡티’란 것도 등장한다. 나중에는 쌍화탕에도 위스키를 넣는 것까지 확장했다. 다방은 위스키를 즐기는 최적의 장소가 된 것이다.
도라지 위스키는 1976년 보해양조에 주류제조 면허를 매각하고 사라진다. 슬슬 위스키 원액이 들어간 제품이 출시됐기 때문이다. 진생 위스키, 에릭사, 조지 드레이크, 진로의 JR, 베리나인, 드슈 등 다양한 위스키가 등장하게 된다. 물론 대부분 원액 20% 미만으로 한 유사 위스키였다.
1980년대에는 한국산 위스키 생산을 타진은 했으나 이내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하게 됐고, 1990년대 들어서는 수입 원액만으로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결국 우리의 위스키는 사라져 갔던 것.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은 삶의 역사와 애환이 녹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