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금, 자본으로 인정…보험사 한숨 돌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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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평가에 LAT 활용“금융당국이 강조해온 현행 제도의 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보험회사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묘안으로 보입니다.”
보험사, 많게는 10조원대 보유
일부 가용자본으로 인정되면
금리인상기 RBC 급락 막아줘
"새 회계기준 이행 효과도"
국내 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는 19일 생명·손해보험협회가 최근 보험사 자본건전성 위기 해소를 위해 마련한 보험부채 적정성 평가제도(LAT) 활용 방안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LAT는 자산·부채의 시가 평가를 골자로 한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적용의 연착륙을 위해 2011년 처음 고안됐다. 현행 보험사 자본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RBC) 비율은 자산의 시가 평가, 부채의 원가 평가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내년 IFRS17이 도입되면 초저금리 기조 아래 부채가 지금보다 과대 계상돼 보험사들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컸다.
그래서 IFRS17에서처럼 반기마다 부채를 시가 평가한 뒤 차액을 책임준비금으로 추가 적립하도록 했고 적립금은 해당 기간의 비용으로 인정했다. IFRS17의 전격적인 도입에 따른 충격을 여러 기간에 걸쳐 분산시킬 수 있는 셈이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금리가 조금씩 상승 반전하면서 오히려 LAT에 따른 잉여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향후 보험사들의 재무건전성 관리를 위한 제도인 만큼 잉여금은 해당 기간에 이익으로 환입(자본 확충)할 수 없도록 했다.보험사마다 이렇게 쌓인 LAT 잉여금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십조원에 달한다. 삼성생명이 18조70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이번에 문제가 된 NH농협생명도 3조7652억원을 갖고 있다. 오는 6월 말에는 금리 추가 상승으로 잉여금 규모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보험업계와 당국은 이 LAT 잉여금의 40~60%를 가용자본으로 인정해주는 방식을 유력하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제도를 마련할 당시만 해도 금리가 줄곧 떨어지고 있었던 탓에 잉여금을 자본으로 인정하는 규정은 만들지 않았던 것”이라며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달라졌으니 역으로 자본으로 환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마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에선 금리 인상으로 ‘건전성 위기’를 넘어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3개월간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1%포인트가량 뛰는 기현상 때문이다. 조만간 RBC 비율이 100% 이하로 떨어져 무더기로 당국의 적기시정조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금융당국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지만 보험업계의 요구인 적기시정조치 유예, 신지급여력제도(K-ICS) 조기 도입 등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할 보험회계제도를 뒤흔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하지만 최근 시장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서 당국이 느끼는 위기감도 상당해졌다. 매도가능증권 재분류가 이번 RBC 위기의 본질인데 이 책임에선 금융당국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현재 생보·손보협회와 함께 LAT를 활용한 보험사 자본건전성 관리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올 상반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담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 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LAT)2023년 도입할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지급여력제도(K-ICS)의 연착륙을 위해 보험부채(책임준비금)를 시가평가로 추가 적립하도록 한 제도
■ RBC 비율
보험회사가 보유한 보험부채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 계약자에게 지급할 돈이 마련돼 있는지를 평가하는 지표. 가용자본(지급여력금액)을 요구자본(지급여력기준금액)으로 나눠 구한다.
김대훈/이호기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