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안 짓고 말지"…건설사들 아파트 수주 포기하는 이유

자잿값에 인건비·장비 임대료 동반 상승
건설사들 "차라리 수주 포기"
국토부, 내달 기본형 건축비 인상
서울 시내 한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콘크리트 타설공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경DB
건설 자잿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인건비와 건설장비 임대료까지 급등하면서 분양가 상승 압박이 커지고 있다. 늘어난 공사비에 건설사들이 수주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자 국토교통부가 내달 기본형 건축비 추가 인상에 나선다.

21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격은 1㎡당 441만9000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410만3000원에 비해 7.7% 상승했는데, 3.3㎡ 기준으로는 1458만2700원이다.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의 3.3㎡당 평균 가격은 2126만52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89% 높아졌다.최근의 원자재 가격 상승세와 인건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현재 분양가도 낮다는 것이 건설업계의 시각이다. 건설사들이 수주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지난 4일 경기 성남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경기지역본부 강당에서 열린 신흥1구역 재개발사업 설명회에는 참여한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조합은 건설사들을 30분가량 기다렸지만, 참가 의향을 보였던 곳들마저 불참하면서 행사는 취소됐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3구역 재건축 조합도 지난달과 이달 시공사 입찰을 받았지만, 참여 건설사가 한 곳도 없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흥1구역은 4183가구, 우동3구역은 2918가구로 건설사 입장에선 매력적인 규모"라면서도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를 맞출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흥1구역 재개발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총건축 연면적 3.3㎡당 495만원 이하, 우동3구역 재건축 조합은 3.3㎡당 590만원 수준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 공사비 오르니 "그 값엔 못 짓는다"…수주 포기

한 레미콘 공장에 레미콘 차량들이 세워져 있다. 사진=뉴스1
건설사들이 수주마저 포기하는 상황을 만든 요인 중 하나는 자잿값 상승이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철근과 골재 등 건설자재 가격이 50% 가까이 올랐다. 시멘트 생산 원료인 유연탄은 지난 1분기 톤당 260.6달러를 기록, 전년 같은 기간의 89.4달러에 비해 191% 올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제재가 뒤따른 여파인데, 그 결과 지난해 5월 톤당 7만5000원 수준이던 시멘트 가격도 이달에는 9만3000원으로 약 24% 인상됐다. 지난해 1월 톤당 70만원 수준이던 철근 가격도 지난달 114만원으로 63% 올랐다. 각재, 합판 등 자재 가격도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뛰었다.

인건비도 크게 올랐다. 거푸집 시공비 30%, 철근 시공비 10% 등 크게 올랐다. 숙련공의 경우 10만~20만원의 웃돈도 붙는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지방의 경우 일손이 모자라 하루 20만원 내외던 인건비가 40만원까지 오른 곳도 있다"며 "한국인 숙련공이 만성적으로 부족한 가운데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외국인 노동자도 대거 줄어든 영향"이라고 말했다.

공사비 15% 이상 올라…국토부, 기본형 건축비 인상 검토

건설장비 임대료도 인건비·유가 상승 등을 이유로 10% 이상 상승했다. 건설 업계에 따르면 크레인(유압 기중기)의 경우 지난해 하루 100만원이던 임대료가 30만원가량 더 올랐고 굴삭기(6W 기준)도 전년 55만~60만원 수준이던 하루 임대료가 75만원 선으로 뛰었다.

B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의 30% 이상이 자잿값"이라며 "상승분 일부를 건설사가 떠안더라도 원자재 가격이 동시다발적으로 오르는 만큼 분양가를 올리지 않으면 주택 공급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C 건설사 관계자도 "자잿값에 안전 관리 비용이나 인건비도 뛰면서 평균 공사비가 지난해 말에 비해 15% 이상 올랐다"며 "3.3㎡당 분양가에 60만원 이상 반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레미콘 기사들의 파업에 부산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이 멈춰져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해 기본형 건축비를 인상하기로 했다. 기본형 건축비는 분양가 산정의 기준이 되는데, 국토부가 매년 3월 1일과 9월 15일 정기적으로 고시한다. 지난 3월에는 공동주택 ㎡당 기본형 건축비 상한액을 178만2000원에서 182만9000원으로 2.64% 올렸다. 고시 이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자잿값이 15% 이상 오르면 건축비를 다시 고시할 수 있다. 자잿값과 노무비 등이 급등하면서 국토부는 내달 별도의 수시 고시를 하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내달 수시 고시에서 기본형 건축비가 대폭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15% 이상 오른 공사비가 반영될 것"이라며 "기본형 건축비가 인상되면 분양가도 함께 오르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분양가는 결국 토지가격과 공사비를 기준으로 지자체의 심의를 받아 결정된다"며 "토지가격이 비싼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분양가가 10%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공사비 전망에 대해서는 "자재 수급이 원활해지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고 1년은 필요하다"며 "올해는 현재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고 빨라도 내년에나 공사비가 다소 조정되길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