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총선 '대이변'…노동당 38년 텃밭서 무소속 압승

베트남 난민 출신 이민자, 거물급 '낙하산' 후보 제압

21일(현지시간)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무소속 후보가 거대 정당의 38년 '텃밭'에서 '낙하산 공천'을 받은 후보에 압승하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호주 일간 시드니모닝헤럴드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호주 총선에서 시드니 남서부 파울러 지역에 출마한 다이 리 무소속 후보가 양대 정당 중 하나인 노동당의 크리스티나 키넬리 후보를 15%포인트 이상 격차로 꺾고 승리를 거두었다.

키넬리 후보는 시드니가 주도인 뉴사우스웨일스(NSW)주 노동당 정부의 총리를 역임하고 2019년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된 거물급 정치인이다.

반면 리 후보는 베트남 난민 출신 이민자로 파울러에 속한 페어필드시(市)의 부시장 경력을 가진 지역 토박이 정치인이다. 무명의 무소속 지역 정치인이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거대 정당 후보를 꺾고 당선된 것은 이번 총선 최대 이변으로 꼽힌다.

작년 3월 파울러가 지역구인 크리스 헤이스 현역 노동당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발표하면서 이 지역 출신 베트남계 투 레 변호사를 예비 후보로 지명했다.

파울러는 베트남계 등 유색 인종 유권자 비율이 60%에 달하는 대표적인 다문화 지역인 만큼 레 변호사를 낙점한 것은 무난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노동당 지도부가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키넬리 상원의원을 파울러에 전략 공천하기로 결정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

파울러 주민들이 대중교통으로 4시간이나 걸리는 시드니 북부 해변에 사는 키넬리 후보가 이 지역과 무슨 연관이 있냐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레 변호사와 지지자들은 소설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키넬리 지명 철회 운동을 벌였으나 노동당 지도부는 결정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논란에도 1984년부터 38년간 모든 연방 선거에서 노동당 후보가 연승한 파울러에서 키넬리 후보가 다시 당선될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막상 선거 운동이 시작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무소속의 다이 리 후보는 '낙하산 공천'에 대한 거부 심리를 파고드는 한편 지역 대표론을 내세우며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리 후보측은 키넬리 후보에 대해 "선거운동 기간 파울러로 휴가를 온 것일 뿐 총선이 끝나면 돌아갈 사람"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실제 한 주민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노동당은 다리 셋을 가진 애꾸눈 당나귀를 후보로 내세워도 당선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오만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은 자유국민연합의 4연속 집권을 막고 8년여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으나, 키넬리 전 상원의원은 절대 우세 지역에서 낙선함으로써 최대의 정치적 위기에 봉착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