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 빌리는데 금리 22%…미국 앱은 7%였다"…렌딧 창업 스토리[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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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렌딧 대표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는 시기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대출 문턱도 높다. 대형 은행 등 제1금융권에 가면 대출이 거의 안 되고, 저축은행을 찾으면 연 20% 가까이 이자를 내야 한다. 김성준 렌딧 대표가 중금리 대출 시장에 뛰어든 계기도 자신의 '대출 좌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유망 스타트업을 운영했던 그가 한국에서 P2P(개인 간 거래) 대출 서비스를 내놓게 된 스토리를 한경 긱스(Geeks)가 들어봤다. P2P 금융 서비스로 익숙한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온투업) 1호 스타트업인 렌딧의 김성준 대표. 그는 창업에 큰 영향을 줬던 인연으로 스티브 블랭크 전 스탠퍼드대 교수를 꼽는다. 블랭크는 스스로 연쇄 창업가이자 '린 스타트업' 이론의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국내에서《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릭 리스의 스승이다. (*린 스타트업은 기사 맨 아래 추가 설명이 있다.)"스탠퍼드 대학원 시절 블랭크 교수님이 하신 '린 런치패드'라는 창업 관련 수업이 있었습니다. 학생이 40명인데 멘토도 40명 들어와요. 학생 4명씩 팀을 짜서 10팀 정도로 구성되는데 팀마다 멘토가 4명씩 붙는 거죠. 우리로 따지면 김택진(엔씨소프트 창업자) 같은 분들이 멘토로 들어옵니다. 그 수업에서 저의 두 번째 창업인 '스타일세즈'가 시작된 거죠."
'대출 좌절' 경험 통해
P2P 금융 서비스 개발
중금리 대출 시장 개척
온투업 1호 '렌딧'
누적대출 2700억원
"사회 문제 해결하고 싶다"
'린 스타트업' 창시자 수업 들으며 창업 도전
김 대표가 이 수업을 듣게 된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할 때부터 어떤 문제를 해결할지 프로젝트 제안서를 내야 한다. 그 제안서를 평가해 수강생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김 대표는 '그루폰' 같은 공동 구매 커머스 플랫폼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수강 신청에 실패했다. 블랭크 교수를 찾아가 따졌지만 "공동 구매 모델은 이미 너무 많이 다뤄졌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블랭크는 한마디 덧붙였다. "나중에 자네의 자서전에 '스티브(블랭크의 이름), 당신이 그때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냈어'라고 적힌 문구가 나오길 기대하겠네.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에 있었지만 나 역시 자주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학생들이 있었지. 나는 자네처럼 창업가 마인드를 갖춘 학생들이 정말 좋네."
이 말을 들은 김 대표는 거절당했다는 좌절감보다는 더욱 의지가 솟았다고 했다. "실리콘밸리의 전설적 창업가 교수님의 진심 어린 말씀이어서 더 각인됐던 거 같습니다. 20대 중반까지 한국에서 교육받고 일해왔던 저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수업 전에 공동 교수였던 앤 미우라-고를 찾아가 다시 설득했고, 블랭크도 또 한 번 찾아갔다. 결국 '끈질김'에 두 손을 든 교수님들의 허락에 린 런치패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통해 창업한 패션 커머스 플랫폼 스타일세즈는 창업 초기 꽤 잘나갔다. 김 대표는 대학원 2년 과정 중에 1년이 남아있었지만 결국 자퇴를 결심하고 사업에 몰두했다. 사진 기반 소셜미디어 핀터레스트를 통해 홍보를 강화하자 가입자도 크게 늘었다. "어느 날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사 앤드리슨호로위츠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앤드리슨호로위츠는 핀터레스트 투자사이기도 했죠. 저희에게 흥미로운 모델이라며 핀터레스트에 합류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인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핀터레스트는 그냥 예쁜 이미지를 모아둔 플랫폼이란 느낌이었고, 우리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스타일세즈는 이용자들이 빠르게 늘었지만 미국 특유의 '물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서비스였다. 미국은 배송료도 비쌀 뿐만 아니라 거리에 따라 배송되기까지 일주일 이상 걸리기도 했다. 구매 한 달 이내에는 무조건 반품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을 때는 괜찮았지만 서비스를 확장하면서 늦은 배송과 반품 문제 등에 고객 불만도 늘어갔다.
스타일세즈는 서비스 개시 3년가량을 지나면서 매출이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같이 일하던 팀원들도 떠났다. "다시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략 3000만원 정도면 미국에서 라면 먹고 살면서 4~5개월 정도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미국에서는 사업 자금을 위한 대출이 어려울 거라 생각하고 2014년 12월 한국에 잠깐 왔죠."
은행 대출 거부당하고 중금리 시장 개척
김 대표는 먼저 30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제1금융권을 찾았다. 하지만 번번이 대출을 거절당했다. 할 수 없이 저축은행으로 발길을 올렸다. 그런데 저축은행도 3000만원을 다 빌려줄 수는 없고, 절반인 15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데 금리가 연 22%라고 했다. 제1금융권 대출 금리가 연 4~5% 정도였던 때다. 좌절하던 김 대표는 우연히 미국의 렌딩클럽 상장 소식을 듣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에 앱을 깔아봤다.
"정말 신기하게도 다다음 날이 렌딩클럽 상장일이었어요. 저축은행에서 충격받고 나서 서울에서 렌딩클럽 앱을 내려받아 대출을 시도해봤죠. 대출 3만달러 정도 알아봤는데 이자가 연 7.8%로 나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미국에서 그리 오래 생활하지도 않은 외국인에게 3만달러를 이 정도 금리에 빌려준다는 게 놀랄 만한 일이었어요."김 대표는 렌딩클럽이라는 회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 이 금융 서비스가 얼마나 클 수 있을지 연구했다. 한국 시장이 놓치고 있는 중금리 대출 서비스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가 5년 정도 생활하며 쌓인 짐을 다 욱여넣고 창고에 맡겼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그렇게 그는 2015년 초 P2P 대출 서비스업체 렌딧을 창업했다. 자신의 좌절 경험과 함께 '왜 한국에는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사이에 중간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곳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결합한 창업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작년 6월 국내에서도 온투법(온라인 투자 연계 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면서 렌딧은 날개를 폈다. '2021-1'이라는 등록번호가 말해주듯 렌딧은 국내 온투업 1호 업체가 됐고, 개인 신용대출 1위 회사로 우뚝 섰다.개인 투자자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온라인으로 빌려주는 P2P 대출. 이제 많은 사람에게 낯설지 않은 서비스가 됐다. 신용등급이 은행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제2·제3금융권의 고금리 대출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새로운 대출 창구로 떠올랐고, 투자자들에겐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는 투자처로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제는 P2P보다는 온투업이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온투업법 발효 등으로 단순히 개인 간 거래를 넘어 법인들도 시장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투업체들은 개인 또는 법인에서 투자금을 받아 개인이나 기업에 대출을 해준다. 은행과 달리 예금은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투자받은 만큼만 대출해준다. 따라서 투자 총액이 곧 대출 총액이다.
온투업법이 발효된 이후 지금까지 약 50개사가 온투업체로 등록됐다. P2P 사업 초기에 수백 개에 이르는 스타트업이 뛰어들었던 것에 비하면 ‘우량 업체’와 ‘부실 업체’의 옥석이 가려지는 분위기다.
온투업 1호 '렌딧' 누적 대출 2700억원
렌딧은 2015년 5월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 대출액 2700억원에 이른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정교하게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렌딧 스코어'(LSS)라는 자체 평가 기준을 개발했다. LSS는 한국신용정보원과 신용정보업체 나이스신용평가에서 받은 300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 신용도를 1000점 만점으로 점수화한 지표다.
대출 신청자의 월 소득, 부채 정보, 신용카드 사용액, 통신비와 공과금 연체 여부, 거주 지역의 전셋값, 매맷값 변동 추이 등을 AI로 분석한다. 예컨대 소득액이나 소비액이 들쭉날쭉하면 위험도가 올라가는 구조다.
LSS 점수를 기준으로 대출자의 신용을 평가해서 금리를 차등 적용한다. 연 4.5~19.9%까지 적용되고, 평균 적용 금리는 10%대 초반이다. 저축은행 금리가 최고 20%, 신용카드 대출이 15% 정도이니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김 대표는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이 신용에 비해 과도한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며 “렌딧의 대출 규모가 1조원대로 성장한다면 한국 금융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렌딧에 투자금을 넣은 개인 또는 법인의 투자 수익률은 얼마나 될까. 김 대표는 "평균 투자 수익률이 연 7% 정도"라고 설명했다.
렌딧은 다른 온투업체와 달리 철저히 개인 신용대출에 집중하고 있다. 리스크(위험) 관리가 쉽지 않은 법인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압도적인 기술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신용평가 모델을 바탕으로 한 비대면 대출”이라며 “법인이나 부동산 대출은 직접 가서 현장을 확인해야 하는 데다 기존 금융사들이 더 잘한다”고 말했다.
렌딧은 중간 정도의 신용도를 가진 대출자를 집중 공략한다. 대출 실적이 쌓일수록 신용평가 모델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어 리스크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신용도가 낮은 고객을 늘리고 있는데도 렌딧의 손실률은 2%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 대표는 렌딧의 정체성은 ‘핀테크(금융기술)’가 아니라 ‘테크핀(기술금융)’ 기업이라고 말한다. 핀테크는 금융회사가 소비자 편의를 높이는 수단으로 기술을 접목한 것이라면, 테크핀은 기술을 기반으로 금융을 혁신한다는 뜻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는 “미국도 과거에는 은행 아니면 카드론이었지만 P2P 대출이 전체 개인 신용대출 시장의 10% 수준까지 늘었다”며 “한국은 P2P 대출 비중이 아직 1%도 되지 않아 성장 잠재력이 크다”고 강조했다.
"큰돈보다는 사회 문제 해결하고 싶다"
김 대표는 서울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KAIST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으로 유학 가기 전 한국에서 사회적 기업 '2분의 1 프로젝트'도 세웠다. 스타트업 세이브앤코를 이끄는 박지원 대표와 대학 시절에 공동 창업했다."시작은 너무 더운 어느 여름날 사서 마신 500㎖짜리 콜라 한 병이었어요. 그때 저는 콜라 양이 너무 많아 지하철을 타기 전에 남은 콜라를 버렸어요. 그런데 그날 유튜브에서 아프리카의 한 아이가 물이 없어서 소의 소변을 받아먹는 장면을 본 겁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51%가 의식주에 소비하는 일평균 금액이 2달러 이하라고 했고요. 제가 사 먹은 콜라가 2000원 정도였던 게 떠올랐고, 그걸 다 먹지 않고 버린 데서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김 대표는 충격을 받고 이런 기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무엇이든 반만 담아서 파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2000원을 주고 물을 사면 1000원에 해당하는 절반의 물만 통 속에 들어 있다. 소비자가 낸 나머지 1000원은 기부되는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력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겠다 싶어 창업에 뛰어들었다.큰 기대를 안고 시작했던 첫 번째 양산 제품은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을 팔아서 절반에 해당하는 가치만큼을 당시 발생했던 아이티 재난 관련 구호단체에 기부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대학생이던 김 대표 등 공동창업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좀 더 큰 프로젝트인 '절반 저금통'이나 '절반 물통' 역시 단위가 커지면서 많은 사비가 들었다. 결국 사업을 지속하기 힘들었고 첫 번째 실패를 맛봤다.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겪은 두 번째 실패가 스타일세즈다.
김 대표는 세 번째 창업인 렌딧을 통해 한국의 고금리 대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신용 대출 규모가 400조원가량 됩니다. 이 가운데 40% 정도가 10% 이상 고금리인 제2금융권에서 빌리는 것이죠. 주로 서민들인데 이자를 조금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렌딧이 1조원가량을 대출해 주면 15만 명이 총 700억원의 이자를 절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3~4년 뒤면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래 동영상 촬영·진행 도움=이미나 렌딧 이사)
1.렌딧은 어떤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가치를 주고 있는가.
2.'렌딧 임팩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참, 한가지 더
린 스타트업이란?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린 제조(lean manufacturing)’ 방식을 차용한 것으로, 스티브 블랭크 교수의 제자였던 벤처 기업가 에릭 리스가 만든 말이다.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일단 만들어낸 뒤 내놓아 시장의 반응을 보면서 다음 제품 개선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짧은 시간 동안 제품을 만들고 성과를 측정해 다음 제품을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방식이다. 몸집이 가벼운 스타트업 생리에 맞는 경영 전략이다. 드롭박스, 에어비앤비 등 실리콘밸리 주요 스타트업들이 이런 방식을 활용해 성장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