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균형발전] ⑪ 국토 불균형 심화하는데 수도권은 확장중

20년 정책에도 균형발전 요원…되레 경기도 개발 집중 '역주행'
부족한 지방서 일자리 찾아 수도권으로…"지방기업부터 살려야"
울산광역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32) 씨는 지난달 평소 관심을 두고 있던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보러 서울시 성동구에 있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집에서 버스, KTX, 지하철을 갈아타며 미술관까지 가는 데만 4시간이 걸렸다.

교통비에다 이동시간을 생각하면 아깝지만, 보고 싶었던 작품을 '직관'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전시관 분위기를 만끽하며 포토존에서 인증샷을 찍고 나서 주변 카페와 맛집까지 돌고 나면 몸은 피곤해도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이씨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던 작년에도 현대미술관 등 서울지역 미술관에 세 번 정도 다녀왔다.

"울산에는 미술관이 적고 전시회도 다양하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울까지 가야 한다"며 "울산을 문화불모지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제 진부한 얘기"라고 했다.

2020년 기준 울산의 1인당 지역총소득(5천232만원)은 전국 1위로 서울(4천855만원)보다 많다. 하지만 미술관·박물관 인프라(지난해 7월 기준 100㎢당 0.8개)는 전국에서 가장 적은 수준이다.

올해 1월 울산시립미술관이 개관했지만, 서울지역(100㎢당 23.6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대표적인 지방소멸 위기 지역으로 꼽히는 경북 의성군에는 아기를 낳을 병원이 한 곳도 없다. 안계면에 군내 유일의 외래산부인과 의원이 있지만, 분만 전 진찰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한 달에 15명 안팎의 의성지역 임산부는 멀리 떨어진 대구나 안동, 상주 등지로 나가서 출산해야 한다.

의성군 한 주민은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살았다면 치르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지역 인재를 양성할 지방대학의 존폐 문제도 심각하다.

거점 국립대인 전남대는 지난해 140명이 정원 미달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 데 이어 올해도 총 정원이 38명 미달했다.

같은 지역 조선대도 작년(-128명)과 올해(-15명)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전반적인 영향이 있지만, 취업과 맞물린 수도권 대학 선호 현상도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광주지역 한 대학 관계자는 "광주·전남지역의 양축인 두 대학이 이 정도인데, 다른 대학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도권 각종 선거에서는 규제를 풀어 대학을 유치하겠다는 공약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 "서울은 노른자, 경기는 흰자"…팽창하는 수도권 내부도 불균형
수도권이라고 해서 모두 행복하지는 않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지역에 따라 삶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TV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서울을 계란 노른자에, 경기도를 흰자에 비유하는 대사가 화제가 됐다.

가상의 경기도 '산포시'에 사는 등장인물들이 출퇴근 고통에 시달리는 장면이 거의 매회에 나온다.

이달 초 서울에서 경기 의왕시 학의동으로 이사한 김모(50) 씨는 대중교통편이 마땅치 않아 매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직장까지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그의 딸은 시내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며 서울 노원구까지 1시간 40분을 통학한다.

하루 왕복 3시간 이상을 길에 버리는 셈이다.

김씨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일상"이라며 "서울 재입성은 고사하고 역세권으로 이사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를 보면 인구가 전년도보다 증가한 상위 15개 시·군·구 중 10곳이 경기도였다.

국내 총인구는 지난해 처음 감소한 것으로 관측됐지만, 경기도 인구는 출산율 감소에도 2036년 1천445만명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2021년 국내 인구이동 통계에 따르면 서울 인구 10만6천명이 순유출됐는데 10명 중 7명(63.8%)이 경기도로 이주했다.

인천·강원·충북·충남·전북 등에서도 경기도 전입이 가장 많았다.

그 이유로는 주택 문제가 첫손으로 꼽힌다.

서울연구원이 2020년 서울시 인구의 수도권 내 전출입 경향을 분석해보니, 서울시를 떠나 경기도로 이주한 주된 이유가 '양질의 신규 주택공급'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여전히 국내 주택공급의 대부분은 경기도에 집중돼 있다.

2020년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1년 새 전국에서 주택 수가 39만9천호가 늘었는데, 그중 53.9%(21만5천호)가 수도권이고 경기도만 36.1%(14만4천호)를 차지했다.

3기 신도시만 해도 31만6천가구(9곳) 중 94.5%인 29만9천가구(8곳)가 경기도에 들어선다.

지방소멸은 심화하는데 정책은 역주행이다.

결과적으로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 현상을 심화할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여전한 수도권 중심주의…"이대로 가면 서울이 맨 마지막에 망할 것"
지난 3·9 대선에 이어 오는 6·1 지방선거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1기 신도시 재건축, 광역급행철도(GTX) 신설·연장, 군 공항 이전 및 국제공항 건설 등의 굵직한 수도권 개발 공약이 넘쳐난다.

덩달아 해당 지역 부동산값은 들썩이고 비수도권의 박탈감은 더 커지고 있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지난달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은 8억735만원으로, 5년 전의 약 2배로 뛰었다.

비수도권과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국토 면적의 11.8% 불과한 수도권에 국내 총인구의 절반이 넘는 50.2%(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가 거주하고 있다.

국토의 균형 이용·개발·보전은 헌법 제122조에 명시된 개념이지만, 균형발전을 핵심 국정과제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때부터다.

참여정부에서는 3대 입법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설치, 세종 신행정수도 건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혁신도시 건설 등으로 수도권 분산정책을 추진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 문재인 정부로 계승되면서 '제4차 국가균형발전 5개년 계획'(2018~2022)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년간 역대 정부가 우선순위를 달리하면서도 균형발전 정책을 이어왔지만, 그 결과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인구와 경제력 불균형, 삶의 질 편차는 개선되지 않았고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위험은 더욱 커졌다.

국내 소멸위험 시군구는 지난해 106곳으로 2015년(33곳)보다 73곳 증가했다.

지난해 명목 지역내총생산 중 수도권 비중은 52.5%로, 1985년(43.7%)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 활동을 통해 '균형발전 지역공약'으로 '17개 시도,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76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다.

지방분권경남연대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지방시대를 여는 것을 핵심 국정과제로 채택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이를 실현하고 실행과제들을 완성하기 위해 지역의 뜻을 담은 실행계획과 더 강력한 추진 의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균형발전위원을 역임한 김호범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내실이 없는 구호뿐이었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균특회계(국가균형발전회계)를 들여다보면 실질적으로 관련 없는 사업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지방에는 자율권이 적고 수도권 비중이 큰, 무늬만 균형발전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토 불균형의 가장 큰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며 "이미 대기업은 떠났지만, 중소기업을 중견기업으로 키울 수 있게 기술개발(R&D)을 지원하고 인건비를 보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대로 가면 서울이 맨 마지막에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근주 김용민 전승현 김경태 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