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3수와 고시 9수 [여기는 논설실]

사진=연합뉴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 공식 방문 후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참모들에게 “(윤석열 대통령과) 진정한 유대가 형성된 것을 느꼈다. 행복한 방문이었다”며 흡족한 마음을 나타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소인수(少人數)회담에서 윤 대통령이 “27년간 검사로 있다가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느껴 출마하게 됐다”고 한 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폭포수처럼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당초 예정된 시간을 두 배나 넘겼다. “흔히 말하는 케미가 잘 맞는 관계”라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표현이 두 사람의 ‘궁합’을 잘 나타낸다.

그런데 외견상으로는 두 사람은 그리 스타일이 잘 맞는 타입은 아닌 듯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키 181cm, 83kg로 균형 잡힌 몸매에 몸에 꼭 맞는 정장이 잘 어울린다. 윤 대통령은 키 178cm에 90kg의 다소 거구 체질로, 넉넉하고 헐렁한 정장을 즐겨 입는다. 구두 역시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이 강조된 컴포트화를 찾는다. 겨울철 내내 경량 회색 패딩만 입고 다닐 정도로 옷차림새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윤 대통령이 딱 보기에도 마초 스타일이라면, 바이든 대통령은 여성과 소수 인종 등 마이너리티 권익을 중시하는 민주당 스타일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그가 의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있게 느낀 일은 여성 폭력 방지법을 발의한 것이라고 한다. 그는 정상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흑인 기자와 아시아계 여성 기자를 1, 2 순위 질문자로 지명했다.

인생 궤적에서도 큰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바이든 대통령은 약관 29살의 나이에 델라웨어 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36년간 의정 활동을 한 정통 정치인이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내면서 한국을 찾은 적도 있고, 오바마 정부에서는 8년간 부통령을 한 베테랑이다. 이에 반해 정치인 윤석열의 경력은 아직 1년도 안 됐다.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작년 6월이다. 두 사람의 커리어에서 굳이 접점을 찾자면 같은 법조인(검사와 변호사) 출신이라는 정도다.

얼핏 180도 다른 듯한 두 사람에게 커다란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속되는 실패의 고통을 이겨내고 결국 뜻한 바 목표를 이뤄낸 ‘오뚜기 인생’이라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윤 대통령은 9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해 34세에 초임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결혼도 52세가 돼서야 했다. 늦깎이 연애 시절 김건희 여사가 헤어지자고 하자, 눈물을 흘리며 마음을 붙잡았다고 한다.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충돌했을 때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한 말은 “사시를 9수 해서 인내심 하나는 갑(甲)”이라는 것이다. 바이든은 대선 3수 끝에 대통령에 올랐다. 1987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처음으로 이름을 내밀었지만, 연설문 표절로 중도 낙마했다. 2007년 경선에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에게 밀려 고작 1%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2016년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지만, 장남의 사망으로 경선을 포기했다. 사실상 이때 대선의 꿈을 접었던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실정에 반사이익을 얻은 영향도 있지만, 78세에 미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으로 꿈을 이뤘다.

인생의 쓴맛을 많이 본 사람은 남의 고통에도 공감 지수가 높다. 윤 대통령은 고시생 때도 친구들의 관혼상제를 자기 일처럼 챙겼다. 지인 부친상 상여를 매거나 결혼식 때 함진아비도 도맡아 했다. 그에게서 '고시 낙방생' 꼬리표를 떼게 해 준 것도 결국 친구였다. 사시 합격할 때도 시험 전날임에도 친구 결혼식 차 대구 가는 길에 고속버스에서 본 대목이 그대로 시험에 나와 그 과목을 수석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정상 만찬 건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예이츠의 시구를 인용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인간의 영광이 어디서 시작하고 끝나는지 생각해보라. 나의 영광은 훌륭한 친구를 가진데 있었다.” 어릴 적 극심한 말더듬이로 고생하다 시를 암송하면서 극복한 바이든에게 시구를 인용한 것은 더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게다. 바이든은 건배사로 “We go tother”라고, 작별 인사말로 “I trust you”라 했다. ‘끈기’를 인생 최고의 자산으로 삼고 있는 두 사람이 상호 신뢰 속에서 중국과 북한이라는 도전과제를 함께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