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식량안보 위기에…英, 유전자 편집 농작물 생산 허용

병해충 저항력 세고 물·비료 덜 들어
식량자급율 높여 물가상승 억제할 계획
AP통신
영국 정부가 유전자 편집(GE) 기술이 적용된 농작물 재배를 허용하기로 했다.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치솟은 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이다.

22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식량 자급률을 끌어올리려 유전자 편집 농작물 재배를 허용하는 법안을 이번 주 안에 의회에 상정할 방침이다. 의회를 거쳐 법안을 심의하는 ‘제2독회’가 2주 내로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전국 소매점에 납품하는 게 목표다.조지 유스티스 영국 환경부 장관은 “(유전자 편집이란) 정밀한 기술을 적용해 농작물 번식을 촉진할 것”이라며 “농토 영양소의 효율적인 활용을 통해 적은 양의 비료와 물로도 수확량을 이전보다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전자편집 기술은 장기적인 세계 식량난 대처에 있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자 편집 농작물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활용해서 한 생물체 안에서 특정 DNA를 강화하거나 제거하는 식으로 개량된 작물이다.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삽입해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유전자변형생물체(GMO)와 달리 한 생물체만 교정한다. 외부 요인이 개입하지 않아 GMO를 대체할 수 있는 작물로 주목받았다.

프랑스 화학자 에마누엘 샤르팡티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 교수와 와 미국의 제니터 다우드나 미국 버클리대 교수가 2012년 개발한 유전체 편집 기술인 ‘크리스퍼 캐스9 유전자 가위’ 기술이 공개되자 유전자 편집 농작물 연구도 급물살을 탔다. 둘은 이 기술을 통해 2020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세계 곳곳에서 과학자들이 오메가3를 함유한 감자, 마름병에 걸리지 않는 농작물 등을 양산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품종이 개량돼도 상용화 과정이 고단했다.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기술이라 안정성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서였다.

미국 농무부가 선도적으로 유전자 편집 농작물 관련 규제를 철폐했다.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 농작물을 규제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 반면 EU는 유전자 편집 기술을 유전자변형생물체(GMO)와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고 2018년 판결했다. 판결 당시 EU 회원국인 영국도 같은 규제를 적용했다. 2020년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브렉시트’를 단행하며 독자적으로 규제를 완화할 수 있게 됐다.

안정성을 우려한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영국 정부는 유전자 편집 농작물 재배 촉진법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EU와 확실히 선을 그으려는 의도다. 지난 10일 찰스 왕세자가 엘리자베스 여왕을 대신한 의회 여왕연설을 보면 상정 취지가 드러난다. 당시 찰스 왕세자는 이 법안에 대해 “EU에 물려받은 불필요한 장벽을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법안이다”라고 설명했다.영국은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려 물가상승도 억제하려 한다. 2020년 영국의 식량 자급률은 54%였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세계의 빵 주머니’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영국은 식량 위기에 부닥쳤다. 밀 공급난 우려가 거세지고 곡물가도 치솟았다. 덩달아 식료품 가격이 뛰어오르며 인플레이션이 심화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은행 총재는 지난주 영국 재무부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식량 공급에 치명타를 안겼다고 강조했다. 그는 “(식량난이)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다. 비관적으로 전망해서 유감이지만 현재 가장 주요한 걱정거리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