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인력 예산 38% 삭감…尹心 못 읽는 과기부

현장에서

정지은 산업부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목한 품목이면 뭐합니까. 정작 우리 정부는 투자를 안 하는데….”

23일 만난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의 토로다. 정부와 민간이 10년간 3500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의 예산이 계획보다 37.8%가량 깎인다는 소식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본지 5월 10일자 A3면 참조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출한 ‘민관 공동투자 반도체 고급 인력 양성사업’에 대해 제출안(3500억원)의 62.2% 수준인 2180억원으로 사업비를 확정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달 초 발표하려던 2100억원과 비교하면 예산이 80억원이 늘어났다.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수십억원 늘린 것도 언론이 정부의 의지 부족을 집중적으로 지적한 데 따른 것”이라며 “이런 식으론 ‘반도체 초강대국’을 건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사업은 반도체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부와 반도체업계·학계가 함께 추진한 프로젝트다. 내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정부 예산을 투입해 석·박사급 반도체 인력 3500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다. 사업비 절반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기업이 투자한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순수 정부 예산은 1090억원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일각에선 정부가 산업 현장을 제대로 모른 채 ‘탁상행정’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산업부에 따르면 내년부터 2033년까지 국내 반도체업계에 최소 5565명의 석·박사 인력이 부족할 전망이다. ‘세계 최고’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산업을 과감히 지원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반도체 수출을 지난해 기준 1280억달러(약 162조1120억원)에서 2027년 1700억달러(약 215조3050억원)로 32.8% 확대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과기정통부가 중앙정부의 큰 그림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국가 단위 전략이 필요하다는 반도체업계 관계자들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무겁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