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논의만 14년째…'납품단가 연동제'가 뭐길래 [양길성의 여의도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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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이견 없이 입법 추진에 '속도'
중소기업계 "원자재 가격 급등, 단가에 반영되지 않아"
”국가가 인위적으로 시장가격 통제하나” 지적도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7일 중소기업중앙회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달 내로 하도급법 개정안 성안을 완료하겠다”고 했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4일 중소기업중앙회를 찾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법과 하도급 거래 공정화법 처리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뭐길래?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의무’ 반영하는 제도입니다. 주로 원청사(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사(중소기업) 사이에서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나왔습니다.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 단가가 그대로면 수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이죠. 입법 논의는 2008년부터 있었지만 번번히 좌초됐습니다. ‘국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어떤 법안이 발의됐나
최근 들어 그 분위기는 바뀌었습니다. 여야할 것 없이 납품단가 연동제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있습니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 등 19명은 지난해 1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상생협력법 개정안)과 하도급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원자재 기준가격을 정한 뒤 기준가격이 대통령령으로 정한 비율 이상 오르면 추가 비용을 납품대금에 반영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를 어기면 1억원 이하 과태료 부과하는 내용도 담겨있습니다.
중소기업계는 ‘환영’…”조정협의제도 유명무실”
납품단가 연동제의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탄 계기는 여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원자재 가격이 최근 1~2년 새 지나치게 많이 올랐습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세계 공급망이 불안해진 탓입니다.중기중앙회가 지난 3월 중소기업 30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중소기업 75.2%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영 여건이 매우 악화됐다’고 답했습니다. 건설현장에서 주로 하도급을 받아 골조 공사를 하는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원청사(시공사)를 상대로 “공사 계약금을 올려달라”며 ‘셧다운(공사중단)’ 등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원청사와 하도급사가 자율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납품대금 조정협의 제도’는 유명무실하다는 게 중소기업계 지적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철강 목재류 등을 주원료로 제품을 만들어 원청사에 납품하는 401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납품단가 조정을 신청해 본 적 있는 사업자는 39.7%에 불과했습니다. 조정 신청 뒤 위탁기업이 협의를 개시했다고 답한 비중은 51.2%에 그쳤습니다. 조정 신청이 들어와도 원청사의 절반 정도는 협의 자체를 거부했다는 뜻입니다.
중소기업의 절반가량이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고, 매출 80%를 특정 대기업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납품 단가를 두고 공정하게 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적용해서 (원자잿값 상승) 등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계약 당시에 단가 조정 조항을 정해놔야 한다. (양찬회 중기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 17일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납품단가 조정협의 제도가 존재하지만 복잡한 절차와 보복 조치 우려로 사실상 활성화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병조 창호커튼월협회장, 17일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정책토론회’)
반대 측 ”국가가 인위적 시장가격 통제하나”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행하는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합니다. 하도급사의 잘못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죠.다만 납품단가 조정에 관한 사안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게 반대 측 주장입니다. 어떤 업종과 원자재를 납품단가 연동제 대상에 넣을지, 연동되는 인상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등을 법으로 일일이 정하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납품단가 연동제가 시장경제 원리를 해칠 것이란 주장도 있습니다. 국가가 법을 통해 시장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원자잿값 등이 변동될 때 의무적으로 납품단가를 조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법제화하는 것은 과도한 것 같다”며 "수많은 업종과 원재료 중 어떤 업종과 원재료에 연동제를 적용할 지 시행령으로 일일이 정하다 보면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표준 하도급계약서를 만든 기업에 대해 혜택을 주는 것처럼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도급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앞으로 방향은?
국민의힘은 이달 내 하도급법 개정을 새로 마련해 기존 발의된 상생협력 촉진법 개정안과 함께 여야 합의안을 만들 계획입니다. 도입 자체에 이견이 크지 않아 법안 통과는 예정된 수순으로 보입니다.다만 연동제를 적용할 업종과 원자재 범위 등을 세부 논의를 거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제를 어길시 처벌할지 아니면 연동제 도입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할지도 논쟁이 예상됩니다.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