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장관 낙마 흑역사…후보자 신분으로는 정호영이 첫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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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도입 후 후보자 낙마 처음…과거 장관들도 조기 사표 여럿
김영삼 정부 박양실 장관 9일 만에 사퇴 등 기록 재조명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지명 43일 만에 사퇴하면서 역대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및 후보자의 '잔혹사'가 새삼 조명받는다. 장관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이어 조기 사퇴한 바 있으며, 2006년 장관 청문회 도입 이후에도 유독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문회 도입 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신분에서 낙마한 사례는 정 후보자가 처음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초대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 장관으로 의사 출신인 여성 박양실 장관이 1993년 2월 26일 임명됐다가 단 9일 만인 3월 7일 사퇴했다. 당시 박 장관은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됐다.
보건사회부는 1994년 보건복지부로 간판을 바꿨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 임기 5년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은 9번 바뀌어 평균 재임 기간이 7개월에 미치지 못하며 '장관 단명 부처'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두번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중용됐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일찍 물러난 인물도 있다.
국회의원 출신인 이성호 장관이다.
이성호 장관은 1995년 5월 16일부터 약 반년 정도 장관을 한 뒤 다시 국회의원을 지내다 이듬해인 1996년 8월 8일 같은 장관으로 또 부름을 받았다. 이 장관은 그만큼 대통령으로부터 보건·복지 현안 해결에 적격자라는 신임을 받았으나, 부인이 대한안경사협회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약 3개월 만인 11월 12일 물러났다.
보건복지부 장관 조기 낙마는 김대중 정부(문민의정부)에서도 반복됐다.
정권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여성 의사이자 국회의원 출신인 주양자 장관이 1998년 3월 3일 임명됐으나, 임명 58일 만인 4월 30일 사퇴했다.
주 장관 역시 부동산 투기 문제가 경질 사유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들은 낙마 사례 없이 임기를 이어갔다.
정권 말기 변재진 장관 재임 기간이 8개월이고, 다른 장관들은 1년 이상이었다.
유시민 장관이 장관 청문회를 거친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기는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 25일까지 1년 3개월이 넘었다. 정권 첫 보건복지부 장관 흑역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재연됐다.
김성이 장관이 2008년 2월 말 국회 청문회를 거쳐 3월 13일 취임했으나, 세달 만인 6월 10일 내각 일괄 사의 표명에 따라 물러났다.
김 장관은 후보자 때부터 논문 중복 게재, 자녀 외국 국적, 소득 축소 신고 등 의혹이 불거지며 야당 등으로부터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신상 문제에 더해 쇠고기 파동 관련 말실수로 취임 초기부터 경질 가능성이 거론됐던 탓에 내각 일괄 사의가 사실상의 조기 낙마로 해석됐었다.
다만 김 장관 사의 표명 이후 후임 인선에 다소 시일이 걸리면서 공식 재임 기간은 2003년 3월 13일부터 8월 5일까지로 기록돼 있다.
김 장관 사의 표명 후 후임 장관인 전재희 장관이 임명되기까지 두달여 간 사실상 장관 공백 상태였던 것이다.
전재희 장관의 경우 아예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된 사례다.
당시 여야가 원구성과 쇠고기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인 영향으로 청문회의 법정 기한 내 개최가 무산됐다.
이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전 장관을 비롯한 일부 장관 후보자를 청문회 없이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찍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2013년 3월 발탁된 진영 장관이 일명 '항명 파동'으로 반년 만에 중도 하차했다.
진 장관은 청문회는 별문제 없이 거친 뒤 3월 11일 취임했으나, 같은 해 9월 27일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사표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때 사표를 반려했으나 진 장관이 뜻을 굽히지 않아 9월 30일 퇴임했다.
진 장관 퇴임 후에도 복지부는 후임 문형표 장관 인선에 심한 진통을 겪으며 두달 넘게 장관 공백 상태에 놓였던 바 있다.
문 장관은 임명된 후에는 2015년 8월 26일까지 1년 6개월간 재임했다.
다만 연금과 관련해 '세대간 도적질'이라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아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는 등 말미까지 사퇴 압박을 받다 물러났다. 이날 밤 자진 사퇴를 발표한 정호영 후보자는 지난 4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새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후 이달 3일 국회 청문회를 치렀다.
정 후보자는 그간 자녀 편입학과 병역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며 사퇴를 거부해 왔으나, 야당이 새 정부 각료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 후보자 중 한 총리 인준에 20일 협조하면서 사퇴 수순을 밟아 왔다. 정 후보자는 사퇴 입장문에서 "수많은 의혹들이 허위였음을 입증했으나 사실과 별개로 국민 눈높이에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물러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 박양실 장관 9일 만에 사퇴 등 기록 재조명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지명 43일 만에 사퇴하면서 역대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및 후보자의 '잔혹사'가 새삼 조명받는다. 장관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보건복지부 장관이 연이어 조기 사퇴한 바 있으며, 2006년 장관 청문회 도입 이후에도 유독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청문회 도입 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신분에서 낙마한 사례는 정 후보자가 처음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초대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 장관으로 의사 출신인 여성 박양실 장관이 1993년 2월 26일 임명됐다가 단 9일 만인 3월 7일 사퇴했다. 당시 박 장관은 부동산 투기가 문제가 됐다.
보건사회부는 1994년 보건복지부로 간판을 바꿨다.
1993년 출범한 김영삼 정부 임기 5년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은 9번 바뀌어 평균 재임 기간이 7개월에 미치지 못하며 '장관 단명 부처'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에서 두번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중용됐다가 불미스러운 일로 일찍 물러난 인물도 있다.
국회의원 출신인 이성호 장관이다.
이성호 장관은 1995년 5월 16일부터 약 반년 정도 장관을 한 뒤 다시 국회의원을 지내다 이듬해인 1996년 8월 8일 같은 장관으로 또 부름을 받았다. 이 장관은 그만큼 대통령으로부터 보건·복지 현안 해결에 적격자라는 신임을 받았으나, 부인이 대한안경사협회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약 3개월 만인 11월 12일 물러났다.
보건복지부 장관 조기 낙마는 김대중 정부(문민의정부)에서도 반복됐다.
정권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여성 의사이자 국회의원 출신인 주양자 장관이 1998년 3월 3일 임명됐으나, 임명 58일 만인 4월 30일 사퇴했다.
주 장관 역시 부동산 투기 문제가 경질 사유였다.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들은 낙마 사례 없이 임기를 이어갔다.
정권 말기 변재진 장관 재임 기간이 8개월이고, 다른 장관들은 1년 이상이었다.
유시민 장관이 장관 청문회를 거친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기는 2006년 2월 10일부터 2007년 5월 25일까지 1년 3개월이 넘었다. 정권 첫 보건복지부 장관 흑역사는 이명박 정부에서 재연됐다.
김성이 장관이 2008년 2월 말 국회 청문회를 거쳐 3월 13일 취임했으나, 세달 만인 6월 10일 내각 일괄 사의 표명에 따라 물러났다.
김 장관은 후보자 때부터 논문 중복 게재, 자녀 외국 국적, 소득 축소 신고 등 의혹이 불거지며 야당 등으로부터 거센 반대가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했다.
그러나 김 장관은 신상 문제에 더해 쇠고기 파동 관련 말실수로 취임 초기부터 경질 가능성이 거론됐던 탓에 내각 일괄 사의가 사실상의 조기 낙마로 해석됐었다.
다만 김 장관 사의 표명 이후 후임 인선에 다소 시일이 걸리면서 공식 재임 기간은 2003년 3월 13일부터 8월 5일까지로 기록돼 있다.
김 장관 사의 표명 후 후임 장관인 전재희 장관이 임명되기까지 두달여 간 사실상 장관 공백 상태였던 것이다.
전재희 장관의 경우 아예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된 사례다.
당시 여야가 원구성과 쇠고기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구성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인 영향으로 청문회의 법정 기한 내 개최가 무산됐다.
이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전 장관을 비롯한 일부 장관 후보자를 청문회 없이 임명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첫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찍 물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2013년 3월 발탁된 진영 장관이 일명 '항명 파동'으로 반년 만에 중도 하차했다.
진 장관은 청문회는 별문제 없이 거친 뒤 3월 11일 취임했으나, 같은 해 9월 27일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사표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때 사표를 반려했으나 진 장관이 뜻을 굽히지 않아 9월 30일 퇴임했다.
진 장관 퇴임 후에도 복지부는 후임 문형표 장관 인선에 심한 진통을 겪으며 두달 넘게 장관 공백 상태에 놓였던 바 있다.
문 장관은 임명된 후에는 2015년 8월 26일까지 1년 6개월간 재임했다.
다만 연금과 관련해 '세대간 도적질'이라 발언한 것을 문제 삼아 야당이 해임건의안을 발의하는 등 말미까지 사퇴 압박을 받다 물러났다. 이날 밤 자진 사퇴를 발표한 정호영 후보자는 지난 4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새 정부 첫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된 후 이달 3일 국회 청문회를 치렀다.
정 후보자는 그간 자녀 편입학과 병역 의혹에 대해 문제가 없다며 사퇴를 거부해 왔으나, 야당이 새 정부 각료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한덕수 국무총리와 정 후보자 중 한 총리 인준에 20일 협조하면서 사퇴 수순을 밟아 왔다. 정 후보자는 사퇴 입장문에서 "수많은 의혹들이 허위였음을 입증했으나 사실과 별개로 국민 눈높이에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고자 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하고, 여야 협치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물러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