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구두 만드는 장인…"대통령이 신던 구두보면 성격 보이죠" [배정철의 패션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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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신던 구두보면 그분들의 성격이 보입니다.”
패션그룹 형지에스콰이아에서 1979년부터 40여년 동안 남성 구두를 만들어 온 김학진 장인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 장인은 형지에스콰이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 구두’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시내 백화점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구두를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션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구두가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김학진 장인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농업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는 “시골에서 살다 간 농사를 짓고 끝날 운명이었다”며 “농사가 싫어서 무일푼으로 상경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이모의 집에 얹혀 지낸 지 2개월. 보다 못한 이모는 그에게 일자리를 하나 주선했다. 당시 성수동에서 구두를 만들던 제화회사 ‘에스콰이아’였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자 가죽 냄새가 코끝을 찌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손끝으로 표현하는 일에는 자신 있어 일에 금세 적응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는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아의 구두를 사려는 사람들로 명동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불량으로 버리는 제품을 사 가려는 사람들도 몰려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그는 1986년 처음으로 대통령의 구두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전 대통령의 골프화를 처음 제작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전 대통령이 이순자 부인과 골프화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선배가 청와대에 들어가 치수를 측정해오면 그 수치를 전달받아 구두를 만드는 방식이었다.여러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 전 대통령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볼로냐 공법’을 활용해 구두를 만들었다. 볼로냐 공법은 중창이 없어 꺾임이 부드럽고 땀 흡수가 뛰어난 제작 방식이다. 구두 전체에 스펀지를 넣어 잘 꺾이고 착용감이 좋게끔 만들어 설계했다. 그는 “‘대통령이 내가 만든 신발을 신고 편하게 다니겠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구두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데, 그가 ‘가장 깐깐한 사람이다’라고 느낀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구두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아서 기억이 생생하다”며 “구두의 디자인과 굽까지 디테일하게 주문했다”고 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호방한 성격인지라 어떤 구두를 전달해도 별 신경을 안 썼다.‘비즈니스맨’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멋쟁이’ 스타일의 구두를 선호했다. 김 장인은 “구두 코가 뾰족하고 세련된 ‘차도남’ 스타일 구두를 선호했다”며 “구두를 총 8켤레 납품했다”고 말했다.그는 “‘터벅터벅’ 걷는 스타일인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굽이 낮거나 아예 없는 구두가 잘 맞을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은퇴하기 전에 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두 산업에 40여년 넘게 종사했으나 구두 제작은 여전히 어렵다. 그는 “최신 유행에 맞춰 상품을 내놓으면 항상 부족한 부분이 생겨 배우게 된다”며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게 구두”라고 말했다. 형지에스콰이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6명의 구두를 대체불가토큰(NFT)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대통령의 구두를 NFT로 만들어 ‘오픈씨(Opensea)’에 판매한다.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배정철 기자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패션그룹 형지에스콰이아에서 1979년부터 40여년 동안 남성 구두를 만들어 온 김학진 장인은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 장인은 형지에스콰이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5명의 ‘대통령 구두’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윤석열 대통령 내외가 시내 백화점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구두를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패션의 완성’이라고 불리는 구두가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김학진 장인은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농업고등학교를 중간에 그만두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 그는 “시골에서 살다 간 농사를 짓고 끝날 운명이었다”며 “농사가 싫어서 무일푼으로 상경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이모의 집에 얹혀 지낸 지 2개월. 보다 못한 이모는 그에게 일자리를 하나 주선했다. 당시 성수동에서 구두를 만들던 제화회사 ‘에스콰이아’였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자 가죽 냄새가 코끝을 찌르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손끝으로 표현하는 일에는 자신 있어 일에 금세 적응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는 금강제화와 에스콰이아의 구두를 사려는 사람들로 명동이 북새통을 이루기도 했다. 그는 “회사에서 불량으로 버리는 제품을 사 가려는 사람들도 몰려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그는 1986년 처음으로 대통령의 구두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무렵 전 대통령의 골프화를 처음 제작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전 대통령이 이순자 부인과 골프화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선배가 청와대에 들어가 치수를 측정해오면 그 수치를 전달받아 구두를 만드는 방식이었다.여러 대통령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구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 전 대통령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볼로냐 공법’을 활용해 구두를 만들었다. 볼로냐 공법은 중창이 없어 꺾임이 부드럽고 땀 흡수가 뛰어난 제작 방식이다. 구두 전체에 스펀지를 넣어 잘 꺾이고 착용감이 좋게끔 만들어 설계했다. 그는 “‘대통령이 내가 만든 신발을 신고 편하게 다니겠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회상했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구두를 보면 사람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데, 그가 ‘가장 깐깐한 사람이다’라고 느낀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구두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아서 기억이 생생하다”며 “구두의 디자인과 굽까지 디테일하게 주문했다”고 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호방한 성격인지라 어떤 구두를 전달해도 별 신경을 안 썼다.‘비즈니스맨’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멋쟁이’ 스타일의 구두를 선호했다. 김 장인은 “구두 코가 뾰족하고 세련된 ‘차도남’ 스타일 구두를 선호했다”며 “구두를 총 8켤레 납품했다”고 말했다.그는 “‘터벅터벅’ 걷는 스타일인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굽이 낮거나 아예 없는 구두가 잘 맞을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은퇴하기 전에 윤 대통령의 구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구두 산업에 40여년 넘게 종사했으나 구두 제작은 여전히 어렵다. 그는 “최신 유행에 맞춰 상품을 내놓으면 항상 부족한 부분이 생겨 배우게 된다”며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게 구두”라고 말했다. 형지에스콰이아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6명의 구두를 대체불가토큰(NFT)으로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대통령의 구두를 NFT로 만들어 ‘오픈씨(Opensea)’에 판매한다. 판매 수익금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배정철 기자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