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유학파 컨설턴트가 '술타트업'에 뛰어든 이유 [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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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는 요즘 '비주류'의 반란으로 뜨겁습니다.
하이트진로·롯데칠성 등 대기업과 수입업체들이 장악한 맥주·소주 등 주류(酒類) 산업에서 중소형 양조장·브루어리로 무장한 비주류(非主流)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술맛에 대해 기존 레거시 주류 회사와는 다른 시각의 해석과 경험을 제시하고 '힙'한 감성까지 곁들여 MZ세대를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술타트업' 창업 열풍도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이들 '비주류 주류'의 약진은 단순한 유행일까요. 아니면 우리 소비 트렌드 변화의 또 다른 시작일까요.
남다른 이력의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 컴퍼니 대표는 술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주목받습니다. 한경 긱스가 김 대표를 만나 '수제맥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합니다."달콤하고 향기로운 첫 모금, 그리고 씁쓸한 뒷맛"첫사랑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이 정도가 적당할까. 수제맥주 스타트업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설립 초창기였던 2016년 '첫사랑IPA'라 이름붙인 맥주를 내놨다. 이 맥주는 불티나게 팔려 45만 잔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편의점에 입점한 맥주를 제외하면 판매량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한 언론사가 주최하는 '주류 대상' 시상식에선 매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맥주가 대상을 휩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50여 종 이상의 수제맥주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올 초엔 카카오인베스트먼트로부터 3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카카오는 이 회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수제맥주 업체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누적 투자금은 100억원이 넘는데, 시리즈B 브릿지 성격의 투자 유치를 한 차례 더 준비하고 있다.
고객들에게 "어메이징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삼겹살 집에서 단체로 모여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식으로 먹는 획일화된 술자리 문화를 바꾸고 싶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차별화된 맥주 퀄리티에 한 번 놀라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우리 회사를 보고 두 번 놀라게 하고 싶었다"며 "마케팅 용어로 치면 '와우 경험(Wow Experience)'을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어메이징'한 시도 중 하나는 맥주 축제다. 오늘(27일)부터 3일간 '어메이징 비어 페스트'를 연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3년 만에 열리는 축제다. 매년 6만명이 찾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GBAF)'을 벤치마킹했다. 부스에 들어가 맥주 한잔씩을 사서 먹는 방식이던 일반적인 맥주 축제와는 달리 입장료만 지불하면 100mℓ짜리 잔을 받은 뒤 무제한으로 100가지 이상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김 대표는 "내 취향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술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15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13년 시장 규모가 100억원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 시장과 달리 여성 소비자층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음주 문화를 부드럽게 바꾸려는 이유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맥주가 '미식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며 "예쁜 잔을 비롯한 '감성' 한 스푼이 국내 맥주 문화를 더 건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어딘가 엉뚱하고 '힙스터' 기질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유학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KBS의 퀴즈 프로그램 '1대100'에 출연하기도 했다. 무려 우승을 차지해 5000만원을 상금으로 탔다. 김 대표는 "이 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ROI(투자수익률)이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원래 맥주를 좋아하는 '맥덕(맥주덕후)'였다.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먹는 '홈브루잉'을 취미로 갖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 유학 시절엔 미국의 수제맥주 문화에 푹 빠졌다. 이 때 경험을 살려 맥주 여행기를 담은 '비어 투어리스트'라는 책도 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맥주 소믈리에 자격증인 씨서론(Certified Cicerone)을 취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미국 수퍼마켓에 진열된 수많은 맥주들을 보면서 '어메이징'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한국 편의점엔 기껏해야 수입맥주 몇 종류가 있었을 뿐이었다"며 "하나씩 사서 맛보기도 하고, 맥주병에 적힌 주소를 보고 아내와 함께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150곳 넘게 투어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13~2014년 베인에선 글로벌 맥주 회사 AB인베브가 OB맥주를 인수하는 거래의 자문을 맡았다. 이 때 시장의 규모부터 회사의 경쟁사, 밸류에이션, 마케팅, 연구개발(R&D) 등 맥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깊이 파헤쳤다. 김 대표는 "거래 마무리 즈음 AB인베브 측에서 재밌는 말을 들었는데, '수제맥주는 글로벌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며 "글로벌 맥주 회사가 이런 말을 하니 한국에서도 곧 수제맥주 바람이 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4년엔 또 한 차례의 바람이 불었다.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수제맥주의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는 식당 안에서만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법 개정 이후 2014년 54개였던 수제맥주 양조장 수는 이듬해 72개로 늘어났고, 지난해엔 160개를 넘었다. 베인에서의 경험과 함께 이 때의 법 개정은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국내 수제맥주업계에서 이 같은 종량세 도입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수제맥주협회 내 '종량세 추진 TF팀'의 팀장을 맡아 목소리를 냈다. 작은 회사가 앞장서서 의견을 내는 게 모양새가 좋아보일 것 같았다.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등 종량세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김 대표는 맥주 배달을 합법화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2019년까지는 배달앱 등을 통해 맥주를 배달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 제도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신문고에 글도 올렸다. 김 대표는 "배달 수요는 늘어나는데 맥주가 배달이 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어필했고, 결국 음식값을 초과하지 않는 가격 범위 안에서는 맥주 배달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이런 자세가 곧 '크래프트(수제맥주) 정신'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이 크래프트 정신이 회사를 관통하는 원칙이다. 그는 "모험하고 시도하고 버티는 것,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라고 말했다.
8년차 스타트업이 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엔 직원 40여 명이 소속돼 있다. 모두 크래프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이천 공장에 15명이 상주한다. 성수동 매장에선 9명이 일한다. 도보 10분거리의 오피스엔 12명가량이 근무하고 있다.
'힙'한 스타트업답게 맥주가 주요 사내 복지다. 이를테면 1년에 100만원까지 맥주 구입 비용을 지원한다. 또 매일 '퇴근주'를 제공한다. 퇴근을 기념하며 맥주 한 잔을 마시라는 회사의 배려다. 사무실 냉장고엔 언제나 마실 수 있는 맥주들이 구비돼 있다. 맥주를 마시면서 일해도 전혀 상관없다.
그런 식으로 이달 초 내놓은 게 '마크홀리(Mark Holy)'다. 막걸리를 음차했다. 가상의 스토리도 담아냈는데, 마크 홀리라는 인물이 한국의 전통주 맛에 푹 빠져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술을 내놓는다는 내용이다. 김 대표는 "1930년대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수학자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가상의 인물이었다"며 "유대인처럼 당시 차별받던 학자들이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전통주업계도 좁은 시장이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를 조심하자는 취지에서 가상의 '부캐'를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걸리 브랜드 자회사의 이름은 홀리워터컴퍼니로 정했다. 성수동의 '성수'를 영어로 만든 단어다. 성수동 매장 옆엔 전통주를 만들 수 있는 양조장도 세웠다. 향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로 무대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대만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수출 계약이 돼 있고, 홍콩의 수퍼마켓이나 싱가포르의 온라인 주류 판매 채널과도 손을 잡았다. 말레이시아나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발을 넓힐 예정이다. '로컬 비즈니스'인 수제맥주의 특성상 가까운 지역부터 공략한다는 목표다. 10년 뒤엔 종합 주류회사가 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포부다.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우선 온라인 채널을 통해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 맥주에 대한 세금 인하도 기대 중이다. 김 대표는 "종량세가 도입됐지만 사실상 이전에 붙던 72%의 종가세를 승계한 형태"라며 "현재 와인보다 수제맥주의 세율이 높은데, 서민의 술인 맥주 세금을 더 깎아주면 좋겠다"고 했다.참, 한가지 더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선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분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당화'라고 한다. 맥아에는 탄수화물 성분과 함께 이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함께 들어 있다. 맥아를 물에 넣은 뒤 가열하면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탄수화물을 분해한다. 엿당과 포도당 등으로 작게 분해된 당분은 이후 발효돼 알코올과 탄산을 만들어낸다.
당화가 끝나고 당분이 우러나온 액체를 워트(Wort)라고 부른다. 워트는 맥아 찌꺼기와 불순물이 뒤섞여 있어 탁한데, 이를 맑게 여과해주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맑아진 워트를 1시간가량 끓인다. 이 과정을 통해 워트에 남은 불순물이 살균되고, 잡미를 유발하는 성분이 휘발돼 맥주의 품질이 향상된다.
이 때 맥주의 주 재료 중 하나인 홉(Hop)을 넣는다. 홉에는 쓴 맛을 내는 성분이 있는데, 홉으로 인해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풍미가 생긴다.워트를 끓이고 나면 효모가 생존하기 좋은 온도로 냉각된 뒤 발효탱크로 옮겨진다. 효모는 크게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로 나뉜다. 발효되기까지 각각 다른 온도와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조 과정에서 어떤 효모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에일과 라거로 나뉜다. 수제 맥주에서 주로 쓰이는 에일 효모는 라거 효모에 비해 약간 높은 온도에서 발효되고, 발효 속도도 빨라 소규모 공장에서 생산하는 데 적합하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
하이트진로·롯데칠성 등 대기업과 수입업체들이 장악한 맥주·소주 등 주류(酒類) 산업에서 중소형 양조장·브루어리로 무장한 비주류(非主流)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술맛에 대해 기존 레거시 주류 회사와는 다른 시각의 해석과 경험을 제시하고 '힙'한 감성까지 곁들여 MZ세대를 열광시키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술타트업' 창업 열풍도 어느 때보다 뜨겁습니다. 이들 '비주류 주류'의 약진은 단순한 유행일까요. 아니면 우리 소비 트렌드 변화의 또 다른 시작일까요.
남다른 이력의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 컴퍼니 대표는 술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주목받습니다. 한경 긱스가 김 대표를 만나 '수제맥주'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합니다."달콤하고 향기로운 첫 모금, 그리고 씁쓸한 뒷맛"첫사랑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이 정도가 적당할까. 수제맥주 스타트업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설립 초창기였던 2016년 '첫사랑IPA'라 이름붙인 맥주를 내놨다. 이 맥주는 불티나게 팔려 45만 잔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편의점에 입점한 맥주를 제외하면 판매량이 가장 많은 수준이다. 한 언론사가 주최하는 '주류 대상' 시상식에선 매년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의 맥주가 대상을 휩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50여 종 이상의 수제맥주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올 초엔 카카오인베스트먼트로부터 30억원의 투자도 유치했다. 카카오는 이 회사가 한국을 대표하는 수제맥주 업체로 성장할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누적 투자금은 100억원이 넘는데, 시리즈B 브릿지 성격의 투자 유치를 한 차례 더 준비하고 있다.
맥주 경험을 '어메이징'하게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사진)는 최근 서울 성수동 매장에서 기자와 만났다. 알 없는 검정 뿔테 안경에 회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은 정장을 입은 기자와 대비돼 '힙'한 느낌을 뿜어내기에 충분해보였다. 회사는 이 곳 서울 성수동 뿐만 아니라 경기 이천에도 양조 공장을 갖고 있다.성수동 매장은 '힙'을 좀 아는 사람들에겐 핫플레이스로 통한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맥주 라인업 그림이 인상적이다. 직원들이 직접 그려넣었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성수동이 유명해지기 훨씬 전인 2016년부터 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김 대표는 "당시 집이랑 가깝고 공장 부지도 활용할 수 있는 저렴한 곳을 찾다가 여기에 오게 됐다"며 "때마침 몇 년 뒤 '핫플'이 됐는데 운이 엄청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회사가 내놓은 수제맥주는 젊은 맥주 마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에일인 '노을'은 노을이 지는 행복한 순간을 담아냈다. 감귤과 시트러스 향과 함께 끝맛에는 쌉쌀함이 느껴진다. 고소한 풍미의 라거인 '서울숲'도 인기 메뉴다. 대기업과 협업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주류대상에서 대상을 받은 '진라거'는 오뚜기와 협업해 내놓은 제품이다. 인기 웹예능 '워크맨', BGF리테일과 나란히 손잡고 내놓은 '노동주'를 이달 초 출시하기도 했다.고객들에게 "어메이징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는 게 김 대표의 말이다. 삼겹살 집에서 단체로 모여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식으로 먹는 획일화된 술자리 문화를 바꾸고 싶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이 매장에 들어오자마자 차별화된 맥주 퀄리티에 한 번 놀라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우리 회사를 보고 두 번 놀라게 하고 싶었다"며 "마케팅 용어로 치면 '와우 경험(Wow Experience)'을 주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의 '어메이징'한 시도 중 하나는 맥주 축제다. 오늘(27일)부터 3일간 '어메이징 비어 페스트'를 연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3년 만에 열리는 축제다. 매년 6만명이 찾는 세계 최대 맥주 축제인 '그레이트 아메리칸 비어 페스티벌(GBAF)'을 벤치마킹했다. 부스에 들어가 맥주 한잔씩을 사서 먹는 방식이던 일반적인 맥주 축제와는 달리 입장료만 지불하면 100mℓ짜리 잔을 받은 뒤 무제한으로 100가지 이상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김 대표는 "내 취향을 음미하면서 즐기는 술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1500억원대로 추정된다. 2013년 시장 규모가 100억원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가파르다. 해외 시장과 달리 여성 소비자층이 많은 점이 특징이다.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가 음주 문화를 부드럽게 바꾸려는 이유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는 맥주가 '미식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며 "예쁜 잔을 비롯한 '감성' 한 스푼이 국내 맥주 문화를 더 건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잘나가던 컨설턴트가 맥주에 빠진 이유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는 원래 잘 나가던 컨설턴트였다. 창업 전엔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에서 일했다. 인수합병(M&A) 자문 업무를 맡았다. 베인 합류 전엔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갬블(P&G)에 몸담았다. 이후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도 밟았다. 스펙만 보면 문과 직렬에선 최고의 '엘리트'다.하지만 예전부터 어딘가 엉뚱하고 '힙스터' 기질이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유학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KBS의 퀴즈 프로그램 '1대100'에 출연하기도 했다. 무려 우승을 차지해 5000만원을 상금으로 탔다. 김 대표는 "이 때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ROI(투자수익률)이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원래 맥주를 좋아하는 '맥덕(맥주덕후)'였다. 집에서 맥주를 만들어 먹는 '홈브루잉'을 취미로 갖기도 했다. 2010년대 초반 유학 시절엔 미국의 수제맥주 문화에 푹 빠졌다. 이 때 경험을 살려 맥주 여행기를 담은 '비어 투어리스트'라는 책도 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맥주 소믈리에 자격증인 씨서론(Certified Cicerone)을 취득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미국 수퍼마켓에 진열된 수많은 맥주들을 보면서 '어메이징'한 감정을 느꼈다. 그는 "당시만 해도 한국 편의점엔 기껏해야 수입맥주 몇 종류가 있었을 뿐이었다"며 "하나씩 사서 맛보기도 하고, 맥주병에 적힌 주소를 보고 아내와 함께 양조장을 직접 찾아가 150곳 넘게 투어를 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2013~2014년 베인에선 글로벌 맥주 회사 AB인베브가 OB맥주를 인수하는 거래의 자문을 맡았다. 이 때 시장의 규모부터 회사의 경쟁사, 밸류에이션, 마케팅, 연구개발(R&D) 등 맥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깊이 파헤쳤다. 김 대표는 "거래 마무리 즈음 AB인베브 측에서 재밌는 말을 들었는데, '수제맥주는 글로벌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며 "글로벌 맥주 회사가 이런 말을 하니 한국에서도 곧 수제맥주 바람이 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4년엔 또 한 차례의 바람이 불었다.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수제맥주의 외부 유통이 가능해졌다. 그 전까지는 식당 안에서만 수제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법 개정 이후 2014년 54개였던 수제맥주 양조장 수는 이듬해 72개로 늘어났고, 지난해엔 160개를 넘었다. 베인에서의 경험과 함께 이 때의 법 개정은 김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다.
규제 개혁의 숨은 주역
2020년 맥주와 막걸리에 대한 과세 체계를 종량세로 전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세법이 개정됐다. 기존에는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종가세)했다. 맥주는 1리터당 72%, 막걸리는 5%의 주세율이 매겨졌다. 이 탓에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맥주가 시장에 유통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하지만 술의 양이나 함유된 알코올 비중에 비례해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가 도입되면서 수제맥주 회사의 세금 부담이 줄어들었다.김 대표는 국내 수제맥주업계에서 이 같은 종량세 도입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수제맥주협회 내 '종량세 추진 TF팀'의 팀장을 맡아 목소리를 냈다. 작은 회사가 앞장서서 의견을 내는 게 모양새가 좋아보일 것 같았다. 공청회에서 목소리를 내는 등 종량세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김 대표는 맥주 배달을 합법화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2019년까지는 배달앱 등을 통해 맥주를 배달하는 것이 불법이었다. 중소기업 옴부즈만 제도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신문고에 글도 올렸다. 김 대표는 "배달 수요는 늘어나는데 맥주가 배달이 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점을 어필했고, 결국 음식값을 초과하지 않는 가격 범위 안에서는 맥주 배달을 허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도전하는 것이 수제맥주 정신
김 대표의 철학은 윈스턴 처칠의 명언에서 따왔다. '성공은 열정을 잃지 않고 실패를 거듭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는 말이다. 그는 "내 성격답게 포기하지 않고 '존버'의 자세를 유지해온 게 이만큼 회사를 키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며 "규제 역시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부딪혀보는 자세 덕에 개혁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런 자세가 곧 '크래프트(수제맥주) 정신'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이 크래프트 정신이 회사를 관통하는 원칙이다. 그는 "모험하고 시도하고 버티는 것,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라고 말했다.
8년차 스타트업이 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엔 직원 40여 명이 소속돼 있다. 모두 크래프트 정신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이천 공장에 15명이 상주한다. 성수동 매장에선 9명이 일한다. 도보 10분거리의 오피스엔 12명가량이 근무하고 있다.
'힙'한 스타트업답게 맥주가 주요 사내 복지다. 이를테면 1년에 100만원까지 맥주 구입 비용을 지원한다. 또 매일 '퇴근주'를 제공한다. 퇴근을 기념하며 맥주 한 잔을 마시라는 회사의 배려다. 사무실 냉장고엔 언제나 마실 수 있는 맥주들이 구비돼 있다. 맥주를 마시면서 일해도 전혀 상관없다.
막걸리로 주종 넓혀... "10년 뒤엔 종합 주류회사로"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최근 막걸리(전통주)로 주종을 넓혔다.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게 큰 몫을 했다. 김 대표는 2020년부터 한국가양주연구소에 나가 전통주 제조법을 배웠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막걸리는 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맥주 효모로 발효시키는 게 특징"이라며 "깔끔한 쌀의 향이 느껴지게끔 제조한다"고 했다.그런 식으로 이달 초 내놓은 게 '마크홀리(Mark Holy)'다. 막걸리를 음차했다. 가상의 스토리도 담아냈는데, 마크 홀리라는 인물이 한국의 전통주 맛에 푹 빠져 자신의 이름을 내건 술을 내놓는다는 내용이다. 김 대표는 "1930년대 니콜라 부르바키라는 수학자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가상의 인물이었다"며 "유대인처럼 당시 차별받던 학자들이 가명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전통주업계도 좁은 시장이기 때문에 말 하나하나를 조심하자는 취지에서 가상의 '부캐'를 설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막걸리 브랜드 자회사의 이름은 홀리워터컴퍼니로 정했다. 성수동의 '성수'를 영어로 만든 단어다. 성수동 매장 옆엔 전통주를 만들 수 있는 양조장도 세웠다. 향후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로 무대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대만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수출 계약이 돼 있고, 홍콩의 수퍼마켓이나 싱가포르의 온라인 주류 판매 채널과도 손을 잡았다. 말레이시아나 몽골,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발을 넓힐 예정이다. '로컬 비즈니스'인 수제맥주의 특성상 가까운 지역부터 공략한다는 목표다. 10년 뒤엔 종합 주류회사가 될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포부다.
새 정부를 향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우선 온라인 채널을 통해 맥주를 판매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또 맥주에 대한 세금 인하도 기대 중이다. 김 대표는 "종량세가 도입됐지만 사실상 이전에 붙던 72%의 종가세를 승계한 형태"라며 "현재 와인보다 수제맥주의 세율이 높은데, 서민의 술인 맥주 세금을 더 깎아주면 좋겠다"고 했다.참, 한가지 더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선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분을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당화'라고 한다. 맥아에는 탄수화물 성분과 함께 이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가 함께 들어 있다. 맥아를 물에 넣은 뒤 가열하면 효소가 활성화되면서 탄수화물을 분해한다. 엿당과 포도당 등으로 작게 분해된 당분은 이후 발효돼 알코올과 탄산을 만들어낸다.
당화가 끝나고 당분이 우러나온 액체를 워트(Wort)라고 부른다. 워트는 맥아 찌꺼기와 불순물이 뒤섞여 있어 탁한데, 이를 맑게 여과해주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맑아진 워트를 1시간가량 끓인다. 이 과정을 통해 워트에 남은 불순물이 살균되고, 잡미를 유발하는 성분이 휘발돼 맥주의 품질이 향상된다.
이 때 맥주의 주 재료 중 하나인 홉(Hop)을 넣는다. 홉에는 쓴 맛을 내는 성분이 있는데, 홉으로 인해 맥주 특유의 쌉싸름한 풍미가 생긴다.워트를 끓이고 나면 효모가 생존하기 좋은 온도로 냉각된 뒤 발효탱크로 옮겨진다. 효모는 크게 에일 효모와 라거 효모로 나뉜다. 발효되기까지 각각 다른 온도와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양조 과정에서 어떤 효모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에일과 라거로 나뉜다. 수제 맥주에서 주로 쓰이는 에일 효모는 라거 효모에 비해 약간 높은 온도에서 발효되고, 발효 속도도 빨라 소규모 공장에서 생산하는 데 적합하다.
김종우 기자 jo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