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을 달라"…이집트 식량난, 정치 위기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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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사태로 빵값 상승세계 최대 밀 수입국 이집트에서 빵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빵 부족 위기는 이집트 정부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안보 문제"라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집트에선 빵 공급이 타격을 입었다. 이집트가 빵 원재료인 밀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했기 때문이다. 전쟁 여파로 밀 공급이 급감하자 일부 제빵사들은 빵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고 빵 가격은 뛰어올랐다. 이집트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전통 빵 '발라디'가 이들의 생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취약층을 대상으로 빵 보조금을 지원해왔다. 현재 보조금이 투입되지 않는 발라디 빵의 가격은 개당 7센트로 올랐다. 이집트 인구의 3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가격이다. 이에 이집트 정부는 보조금이 적용되지 않는 발라디 빵에 대해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다. 이집트인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원재료 가격 상승에도 빵값을 올려 받을 수 없게 된 빵 판매업자들의 불만이 커졌다. 빵 가격 상승으로 촉발된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당시 시위로 독재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집트인들의 빵 소비량은 세계에서 손 꼽히는 수준이다. WSJ에 따르면 이집트인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약 150kg에 달하는 빵을 먹는다. 이는 전 세계 평균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집트인들이 빵 가격 상승과 공급난에 저항하며 길거리로 나설 수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압델 파타 엘시시 현 대통령이 반정부 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이어가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WSJ는 "엘시시 대통령이 10년 가까이 반체제 인사들과 언론인들을 감옥에 보내는 등 탄압하면서 조직적인 반대 의견 표출은 드물어졌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