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만의 소프트파워 신세계] 한국 인터넷, 이젠 '거버넌스 선도국'

2022년은 한국 인터넷 역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해다. 40년 전인 1982년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교수(현 KAIST 명예교수) 팀과 함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대가 처음으로 인터넷 연결을 시도했다. 필자도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했기에 그 기억이 매우 새롭다. 이후 지난 40년 동안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인터넷 기술에 있어 늘 선도적인 역할을 해왔다. 올해는 우리가 인터넷 인프라 선도국을 넘어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에 새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기대된다.

'인터넷주소자원법 개정안' 통과

인터넷은 도메인 이름이나 IP 주소만 알면 전 세계 어느 곳이라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이 확산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미국 정부에 의해 개발, 운영됐지만 초기부터 인터넷주소자원인 도메인 이름과 IP 주소 관리는 민간 기구인 IANA(Internet Assigned Numbers Authority)가 맡아 운영했다. 이후 인터넷 활용의 폭발적 증가와 그에 따른 사회적 영향력의 증대로 주소자원과 관련한 이해당사자 간 충돌이 생겼고 법적 책임 규명에 대한 요구도 커지게 됐다. 이것이 오늘날 인터넷주소자원 정책 수립의 메카인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이 탄생한 계기다. ICANN 설립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터넷 정책 결정을 위한 기본 원칙은 인터넷 거버넌스라 불리는 이해당사자(정부, 인터넷주소 이용자, 인터넷주소 기술자, 관련 사업자, 관련 시민단체, 관련 국제기구 참여자 등)의 다자간 협력에 의한 상향식 결정 구조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사 결정 구조를 통해 인터넷 정책이나 표준이 어느 한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조정할 수 있다. 더불어 정부의 참여를 통해 공공 이익을 추구한다.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민간을 중심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체계를 지향했으나 2004년 인터넷주소자원법 제정으로 정부 주도의 주소정책심의위원회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이해당사자의 참여 범위가 제한됐고 주소자원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토의도 충분히 이뤄질 수 없었다. 지난 20여 년간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있었으며 2015년 이후에는 한국인터넷거버넌스협의회(KIGA)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해당사자 간 균형을 유지하면서 함께 협력하는 정부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여러 제도 및 의견 수렴을 위한 다자간 협의 구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빅데이터·AI정책 수립 기반 마련

지난해 12월 그동안의 요구를 반영한 인터넷주소자원법 개정안이 조승래 의원의 대표 발의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해당사자의 균등한 참여, 주소자원 정책 의결, 한국인터넷정보센터(KRNIC)의 법정기구화다. 이 개정안을 통해 국내 실정에 필요한 주소자원 이슈를 발굴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다자간 협력 체계 수립의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처음으로 인터넷 거버넌스 체계를 법제화한 선진적인 성과다. 현재 정부는 개정된 법의 효율적 시행을 위해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그동안 한국은 인터넷 인프라의 선도국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아왔다. 올해 7월 예정된 개정 시행령이 공표되면 이해당사자가 균등하게 참여해 정부와 협력, 견제할 수 있는 진정한 인터넷 거버넌스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또한 빅데이터와 AI 정책 수립을 위한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디지털 정부를 핵심 기치로 삼는 현 정부가 시행령을 통해 개정된 법의 철학을 잘 담아 인터넷 인프라 선도국을 넘어 거버넌스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다.

이동만 KAIST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