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단위 '뚝뚝'…"그게 되겠어요?" 분당 집주인들 속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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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적률 500%' 기대 식어가는 분당대표적인 1기 신도시인 경기도 성남 분당에서 매물이 대거 늘어나면서 억대 하락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1기 신도시 재정비를 두고 정부와 여당의 발언이 엇갈린 여파라는 지적이다.
매물 적체 심화…21개월 만에 3700건 넘어
억대 하락 거래 속출…용적률 상향 우려 여파
김은혜·안철수 "용적률 최대 500% 적용"
원희룡 "있을 수 없는 일…형평성 고려"
26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분당에서 아파트 매물이 매일 늘어나 연일 올해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25일에는 3715건을 기록했는데, 대통령 선거가 있던 지난 3월 9일 3385건에 비해 약 10% 늘었다. 분당 아파트 매물이 3700건을 넘어선 것은 2020년 8월 20일 이후 21개월여 만에 처음이다.매물 적체가 심화하면서 하락 거래도 속출하고 있다. 이매동 '이매삼성' 전용 127㎡는 지난 17일 13억원에 팔렸다. 지난해 말 17억원에 비해 4억원이나 하락했다. 야탑동 '탑선경' 전용 84㎡도 지난 18일 최고가에서 1억4000만원 하락한 12억원에 손바뀜됐다. 서현동 '시범우성' 전용 134㎡ 역시 지난 7일 최고가 대비 2억 낮은 19억원에 거래됐다.
일대 부동산 업계는 가격 하락의 원인으로 정부와 여당을 지목한다. 1기 신도시 재정비를 두고 용적률 상한에 대해 엇갈린 메시지를 쏟아내면서 정책에 대한 시장의 불신감이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여당 후보들은 '용적률 500% 상향'을 외치는 가운데,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분당 매물 3700건 넘어서…4억원 하락 거래도 발생
분당구 이매동 A 공인중개사는 "그간 분당 재건축을 두고 용적률 150~160%대 시범 단지들이 부각된 경향이 있다"면서 "실상 뜯어보면 대부분 단지 용적률이 200%를 넘어간다"고 지적했다. 용적률 상한을 대폭 높이지 않으면 사업성이 나오지 않는 곳이 많다는 의미다. 그는 "용적률 상향을 두고 매번 말이 다르니 주민들의 우려가 크다. 줄 거면 준다, 안 줄 거면 안 준다고 확실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야탑동 B 공인중개사도 "빌라가 아닌 이상 대부분은 용적률 210% 내외"라며 "이미 용적률이 높아 역세권 용적률 상향에 주민들의 기대가 컸다"고 설명했다. 용적률 500%를 적용하면 기존 용적률이 200%대인 노후 아파트도 기존보다 건폐율을 낮춘 초고층 아파트로 재건축해 쾌적한 주거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기대감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그는 "요즘에는 '그게 되겠냐'는 말이 나온다. 현 정부의 의지가 약하니 같은 당에서도 말이 다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고 덧붙였다.용적률 상향과 관련해 여권에서는 엇갈린 메시지가 이어졌다. 여당인 국민의힘 김은혜 경기도지사 후보는 성남 분당·안양 평촌·고양 일산·군포 산본·부천 중동 등 1기 신도시에 용적률 300%를 적용하고 역세권의 경우 최대 500%로 상향 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디자인 인센티브'를 적용해 용적률 10%를 가산하고 층고를 최고 50층까지 허용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안철수 국민의힘 분당갑 후보도 최근 성남시 분당구 시범단지 한양아파트를 찾아 "분당 재건축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용적률을 최대 500%까지 법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끌어올려 제대로 재건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집권 여당의 강력한 힘으로 '제1기 신도시 특별법'을 신속하게 제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뇌관 된 '용적률 500%'…국토부 "다른 지역과 형평성 고려해야"
지방선거 후보들은 용적률 500% 상향을 주장하지만,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원 장관은 지난 23일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1977년에 지어진 아파트도 있고, 전국에서 매일 주택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서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1기 신도시만 특별법으로 우대하진 않겠다는 뜻을 확고히 한 셈이다.그는 국토부 장관 취임을 앞두고 있던 지난 1일에도 '1기 신도시 역세권 용적률 500% 완화'에 대해 "어느 특정 지역에 통으로 500%를 준다는 건 있을 수가 없다"며 "용적률이 올라가려면 추가 용적률의 절반 이상은 전부 청년이나 공공임대로 다 내놔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1기 신도시가 재건축 사업성을 가질 수 있도록 용적률을 최대 500%로 올려준다는 여당 후보들의 주장과 대비되는 발언이다.이와 관련해 이종석 전 분당재건축연합회장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1기 신도시 특별법도 안 된다는 주장"이라며 불쾌감을 표했다. 그는 "전체 지역에 용적률 500%를 적용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역세권 등 고밀개발이 가능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라며 "다른 지역과 달리 1기 신도시는 30만 가구 전체가 노후화된 특별한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분당재건축연합회는 지방선거 이후 재정비를 위해 지난주 기존 임원 모두가 사퇴한 상태다.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역세권 등 고밀개발이 가능한 지역에 국한된 용적률 500% 적용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면서도 "특정 지역의 용적률 상향은 인프라 확충과 (상향된 용적률이 적용되지 않은) 지역 여론 등의 문제를 수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다 신중하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