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사채왕' 마약 던지기에 18년간 누명…국가배상 소송 패소(종합)

'사건 조작' 증언 나와 형사 사건 재심서는 무죄
20여 년 전 이른바 '명동 사채왕' 최모(68)씨와 얽힌 사건에서 마약 사범으로 누명을 썼던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4부(이석재 부장판사)는 25일 피해자 신모(63)씨가 국가와 경찰관을 상대로 "30억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신씨는 2001년 12월 사기도박을 당해 돈을 잃었다며 최씨 일당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던 중 그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호주머니에 마약 봉지를 넣고 경찰에 신고했다. 속칭 '던지기' 수법으로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A씨는 신씨를 긴급 체포했다.

이듬해 신씨는 필로폰을 소지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그런데 이후 최씨의 지인이 뒤늦게 검찰에서 '최씨의 사주로 신씨의 바지 호주머니에 물건을 넣었다'고 털어놓으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신씨는 새로운 진술이 나왔다며 2016년 재심을 청구했고, 2020년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심 재판부는 "경찰관들은 사건 현장에 출동하기 전부터 누군가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나 제보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최씨와 경찰 사이의 사전 교감 가능성을 제기했다. 신씨는 지난해 3월 국가와 경찰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는 소장에서 "국가의 불법 행위로 평생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왔고, 18년간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잃었다"고 밝혔다.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신씨가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수사 과정에서 경찰관의 위법 행위가 없어 국가가 신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경찰관이 허위로 원고(신씨)의 마약 소지 범죄를 조작하기로 최씨 등과 공모했다고 인정하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체포 전후로 경찰관이 최씨와 연락한 사실이 없고, 마약을 발견한 경위도 자연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신씨는 경찰관이 지문 감식 등 자신의 요구를 무시해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수사가 이뤄져 재량권을 남용하지 않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관련 재심 판결이 유·무죄에 관한 결론을 뒤집은 것은 공모자의 새로운 진술이 나왔기 때문이지 경찰관이 재량 범위를 일탈해 필요한 수사를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사 소송과 별도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고연금 수석부장판사)는 지난해 8월 국가가 신씨에게 구금 및 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1천176만원의 형사보상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명동 사채왕' 최씨는 장기간 사기 도박단의 뒤를 봐주는 전주 노릇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공갈, 변호사법 위반, 마약 등 혐의로 구속돼 수사와 재판을 되풀이해 받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