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유권자 12만시대]③ 하향곡선 그리는 투표율…고작 10%대

지방선거 외국인 투표율, 2010년 35%→2018년 13%
홍보 부족·선거 실망감에 저조…"이주민 위한 공약 개발해야"
"이주민 스스로 참정권 소중히 여겨야" 지적도

"선거할 수 있는지도 몰랐죠. 알았다고 해도 투표소를 갔을지는 확답을 못 하겠네요. "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앙시장에서 만난 중국동포 신모(40) 씨는 6·1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주권자다.

하지만 신 씨는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신 씨는 "자영업자로 일하면서 휴일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솔직히 선거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생각도 크다"고 했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에서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외국인 지방참정권을 도입한 후 외국인 유권자는 꾸준히 늘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12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과는 달리 투표율은 하향곡선을 계속 그리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율은 2010년(제5회) 35.2%, 2014년(제6회) 16.7%, 2018년(제7회) 13.5%로 줄곧 떨어졌다. 같은 기간 전체 투표율이 54.5%, 56.8%, 60.2%로 줄곧 상승곡선을 그린 것과 정반대다.

◇ "잘 몰라서", "나와는 상관없어서"…투표 외면하는 외국인 유권자
"선거장은 어디인지, 시간은 언제인지, 절차는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
2013년 한국에 들어와 5년 전 영주권을 취득한 미국인 A(38) 씨는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집으로 배송된 안내문을 보고 당황했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투표 절차나 후보자 소개, 투표소 위치, 시간 등 기본적인 정보마저 외국어로 안내된 게 없었다"며 "적어도 선거 홈페이지라도 외국어로 안내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유권자로서 막막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A씨와 같은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선관위는 선거일을 일주일 앞두고 뒤늦게 영어와 중국어, 베트남어로 투표 방식 등을 홈페이지에 안내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투표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현상의 원인으로 홍보 부족과 선거에 대한 실망감 등을 꼽았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지낸 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는 "외국인 참정권이 부여된 2006년만 하더라도 이를 알리려는 선관위의 홍보도 적극적이었고, 당사자인 외국인의 기대감도 컸다"며 "하지만 선거가 거듭돼도 외국인을 위한 정책이나 공약이 좀처럼 보이지 않자 투표 참여 의지가 크게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홍보 부족 탓에 최근에 투표권을 부여받은 외국인이 이러한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며 "기존 유권자는 이탈하고, 신규 유권자는 유입되지 않으니 투표율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사는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 7개국 출신 이주민 433명에게 지방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56.3%(복수응답)가 '한국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잘 몰라서'라고 답했다.

이어 '투표를 해도 선거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줄 수 없을 것 같아서'(37.5%), '한국 정치나 선거에 관심이 없어서'(31.3%), '시간이 없어서'(25.0%) 등의 답변이 나왔다.

인권위 설문에 참여한 동남아 출신 이주민은 "주변에 투표권을 가진 영주권자도 선거에 큰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주민과 관련한 정책이나 공약을 찾기 힘든 탓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게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선관위 선거통계시스템에 공개된 '제7회 지방선거 정당 정책·공약'에 올라온 15개 정당의 10대 공약 150개를 전수 조사해 분석한 결과 '다문화'나 '이주민'이 언급된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 "이주민 위한 공약 개발 필요"…"외국인 스스로 참정권 실천해야" 지적도
외국인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 외국인 유권자를 위한 공약 개발 등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경숙 이주여성유권자연맹 중앙회장은 "투표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는 경험을 한다면 선거에 대한 이주민들의 무관심도 자연스럽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령 100가지 공약 가운데 최소 한두 개만이라도 이주민을 위한 부분이 있으면 좋겠다"며 "갈수록 이주민 비율은 늘어나고 이들의 주거 환경과 체류 불안정, 인권 침해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외국인 유권자를 위한 선거 홍보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균 교수는 "지자체와 선관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 관련 부처들이 협력해 외국인 유권자에게 후보자 정보나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메일, 문자 등을 외국어로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이주민 스스로 참정권의 소중함을 자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이사장은 "중국동포들의 경우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 특성상 선거 제도가 익숙하지 않고, 참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장은 "외국인을 위한 공약이나 정책이 부족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투표를 외면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권에서 이주민을 주목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결국 투표권 행사뿐"이라며 "미주 한인들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고자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서 그 존재감을 알린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