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와 권성동, 그리고 한동훈 [여기는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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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욱 반장의 대통령실 현장 돋보기“모피아와 검찰 세상 아니냐”
대선 공신들 "재주는 곰이 넘었는데 모피아·검찰만 중용" 부글부글
윤핵관 맏형 권성동 "전 정권 사람 기용 말라"…선거 공신 챙기겠다 메시지
"쓴소리 마다 않겠다"더니 성비위 의혹 윤재순엔 침묵…결국 밥그릇 싸움
한동훈은 명분 내세워 속전속결 영향력 확대…일각선 '제2 윤석열' 평가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을 헌신적으로 도왔던 여권 인사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자조적인 푸념을 듣는다. 생업을 그만두고 선거판에 뛰어들었던 이들 중 일부는 여전히 ‘백수’ 신세. 새 정부 출범 후 발표되는 인사 명단을 볼 때 마다 이들의 심장은 타들어간다. 한 인사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걷어간다던 속담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사진)가 26일 작심한 듯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국무조정실장 인사를 공개 비판한 것은 이런 여권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권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을 수용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또 “권 원내대표 뿐 아니라 비서실과 경제부처 인사들도 반대 문자를 보내와 고심 중”이라는 윤 대통령과 통화 내용까지도 공개했다. 윤종원 행장 인사가 부적절하다는 여론을 몰아가려는 의도다.
여당 원내사령탑이자 대선 공신인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의 맏형인 권 대표의 이런 발언은 무게감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그간 권 대표가 보여준 우직하고 올곧은 성품도 발언의 무게감을 더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당 발언이 적절한 지 여부를 생각하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우선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 “총리가 국무조정실장은 ‘제 뜻대로 하게 해달라, 책임을 지겠다’고 했고 윤 대통령이 승낙했다. 뒤늦게 권 대표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인사를 두고 여권 내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윤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들은 “실상은 총리와 윤핵관 간 갈등인데 자칫 대통령과 집권여당간 갈등으로 비쳐질 까 걱정”이라며 조바심을 낸다.
창업 공신인 권 대표가 이미 정리된 사안을 다시 꺼낸든 이유를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권력의 언저리에 위치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같은 값이면 전 정권 출신 보다는 창업 공신드을 더 챙기라는 것이다.
무보수로 근 1년을 고생한 사람들은 권 대표의 발언에 박수를 보낼 지 모르겠다. 정치적 명분으로 따지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인심을 잃을 수 있는 발언이다. 선거를 앞두고 자리다툼으로 비쳐지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 요인이다. 지지율이 오르자 또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보수당의 고질병으로 비쳐질 수 있다.명분도 없다. 권 대표가 윤종원 행장을 반대한 이유는 문재인 정부 경제수석으로 1년간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소득주도 성장과 부동산 정책 실패의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다시 중책을 맡길 수 없다는 논리다.하지만 이런 정책 실패는 관료들의 책임이라기 보다 장하성, 김수현, 김현미 등 문재인 정부의 폴리페서, 정치인들의 책임이라는 게 중론이다. 더욱이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총리와 장관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 당선인 시절엔 “자기와 같이 일할 사람을 고르라고 하면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라도 실력없는 사람을 뽑겠냐”고 했었다. 사석에선 수차례 “책임장관제를 확실히 하겠다”며 “장관에게 인사권을 주고 책임을 확실하게 지우면 된다”고 했었다.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히는 장제원 의원도 여러 차례 이런 대통령의 발언을 언론에 전달했다.
국무조정실장은 총리를 보좌하는 총리실 2인자다. 부처로 따지면 차관과 장관의 관계다. 이런 자리 인사에 대해 “제 뜻대로 하고, 이에 대해 책임도 지겠다”고 한 총리의 의사를 집권여당 원내사령탑이 뭉개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인사에 영민한 고위 공무원들이 죄다 윤핵관에 줄을 설 것이다. 한 총리가 “본인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직을 던지겠다’고 마음먹었을 것”이라는 추측성 관측들도 돌아다닌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사진)은 여러모로 윤핵관들과 대조적이다. 전 정권에서 핍박을 받았다는 이유 등으로 이번 정권에서 화려하게 부활했지만, 정작 선거 당시엔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의 거친 파고를 넘을 수 있겠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거의 자력으로 돌파했다. 장관이 되자 속전속결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금융증권범죄합수단을 설치한 데 이어 장관 직속 인사검증단도 두기로 했다. 검찰 뿐 아니라 본인의 정치적 활동반경까지 키울 수 있는 조치들이다.
정치적으로 능수능란하다. 야권 뿐 아니라 여권에서도 제기되는 법무부 권한 집중 비판 여론엔 공식 자료를 내고 “과거 대통령실에 집중됐던 인사 추천, 인사 검증, 최종 판단 기능을 대통령실, 인사혁신처, 법무부 등 다수 기관에 분산하는 것”이라고 정면대응했다. ‘민정수석실 폐지’라는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후속조치라는 명분을 앞세운 것이다. 정치권에선 “정치 경험이 전무한 40대 법무부 장관이 노련한 여야 공격수들의 칼날을 요리 저리 피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 2의 윤석열이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분석도 현 시점에서 보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정치는 명분이다. “선거 공신을 중용하지 않는다”는 여권 내 일각의 불만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부 내 주요 인사들을 모피아와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문제는 심각성이 더 크다. “공무원 뿐 아니라 민간 최고 인재, 해외 교포, 경륜있는 중장년층, 패기있는 젊은 인재 등 실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국정에 참여할 수 있겠다”고 공언한 윤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맞지 않다.
권 원내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윤 대통령에 대해 “쓴소리를 마다 않겠다”고 했다. 이 발언에 추상같은 무게가 실리려면 칼날이 윤종원 행장이 아닌 대통령실의 윤재순 총무비서관을 향했서야 했다. 성비위 해명 자리에서 나와 당당하게 “생일빵에 화나서 뽀뽀해달라 했다”는 말하는 고위 공직자를 받아들일 국민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또 이런 분위기를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참모들은 과연 있는 걸까. 사족. 윤 행장을 두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본적도 없고 통화한 적도 없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