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이어 삼성도 폐배터리 산업 눈독

글로벌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폐배터리서 자원을 회수하는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테슬라는 모든 공장에 배터리 재활용 시설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과 LG, 포스코 등 배터리 밸류체인에 속한 국내 기업들이 그룹 차원에서 폐배터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한경ESG] ESG NOW
테슬라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들이 폐배터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앞으로 테슬라의 모든 공장에는 배터리 재활용 시설이 도입될 것이다. 새로 광물 원료를 사 오는 것보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높은 회수율로 소중한 광물 원료를 다시 가져오는 것이 우리 목표다.”최근 발간한 ‘테슬라 2021 임팩트 리포트’에 담긴 문구다. 테슬라는 기업 운영 방향을 상세히 담은 이 보고서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비중 있게 다뤘다. 배터리셀 제조를 내재화하고 있는 테슬라는 리포트를 통해 “인하우스 배터리셀 제조업체인 우리는 텍사스와 베를린 등 글로벌 공장에서 폐배터리 원료 제조를 의미 있게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치솟는 배터리 원료 가격에 폐배터리 확보전

글로벌 전기차 관련 기업이 폐배터리에서 자원을 회수하는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 빅뱅’이 일어나는 가운데 핵심 부품인 배터리 원료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생긴 일이다.2021년 5월 18일 킬로그램당 81.5위안이던 탄산리튬 가격은 지난 5월 18일 428.5위안으로 뛰어올랐다. 5배 이상 오른 가격으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리튬 가격이 미쳤다. 테슬라가 채굴·정제 사업에 뛰어들어야 할지 모른다”고 토로할 정도로 급등세다. 코발트 가격도 같은 기간 톤당 4만3650달러에서 7만4665달러로 71% 치솟았다.

이에 삼성, LG, 포스코 등 배터리 밸류체인에 속한 국내 기업이 그룹 차원에서 폐배터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테슬라, 폭스바겐, 현대차 등 국내외 완성차업체도 폐배터리 확보전에 속속 ‘참전’하고 있다.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국내 선두 폐배터리 자원 회수업체인 성일하이텍 지분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2009년께 이 업체의 지분 6.33%를 확보한 데 이어 지난해엔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11.5%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폐배터리를 확보해 니켈, 코발트, 리튬, 망간 등 핵심 원료를 추출하는 성일하이텍은 헝가리와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에 글로벌 재활용 거점 6곳을 둔 국내 1위 회사다. 내후년까지 글로벌 거점을 24곳으로 늘리기 위해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삼성그룹은 성일하이텍과의 협력을 기반으로 폐배터리 생태계를 확대할 계획이다. 삼성SDI가 배터리셀 제조 중 발생하는 폐배터리를 성일하이텍에 공급하면, 성일하이텍이 여기에서 핵심 원료를 추출하고 삼성물산이 이 원료를 수요처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 상사 부문은 전기차 생태계를 새 먹거리로 삼고 있다”며 “성일하이텍도 삼성물산을 통해 판매하면 자금 회수 등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SDI 관계자도 “배터리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성일하이텍과 협력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G그룹도 폐배터리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최근 LG화학이 벨기에 배터리 소재업체 유미코아를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유미코아는 양극재 회사인 동시에 폐배터리 재활용 기업이다. LG화학은 ‘사실무근’이라며 인수를 부인했지만, 업계에선 “유미코아를 인수하면 양극재뿐 아니라 폐배터리 사업까지 포함한 사업 사이클을 갖춘다는 점에서 관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최대 규모 폐배터리업계인 라이사이클(Li-cycle) 지분 2.6%를 확보하고 재활용 메탈 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 또한 “국내에서 대규모의 폐배터리 회수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만성 원료 부족 해결책 선점 경쟁

해외에서도 폐배터리 사업을 확대하는 기업이 많다. 중국 CATL은 자회사 비럼프를 통해 폐배터리 사업을 내재화하고 있다. 스위스의 글로벌 광산 기업 글렌코어는 캐나다 폐배터리업체 라이사이클에 2억 달러(약 255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원료를 생산하는 광산업체까지 재생 원료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배터리뿐 아니라 완성차업체도 폐배터리 사업에 적극적이다. 자체 사업과 미국 레드우드와의 협업을 병행하는 테슬라에 이어 폭스바겐도 자체 연구개발(R&D)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테슬라는 이미 지난해 니켈 1500톤과 구리 300톤, 코발트 200톤을 재활용을 통해 조달했다. 중국 CATL도 계열사인 광둥방푸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을 후베이성에 짓겠다고 밝혔다. 투자 규모는 6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폐배터리 경쟁이 뜨거운 것은 원료값 폭등세 속 ‘희망’으로 떠오른 이 시장을 선점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약 10년이지만 전기차 출시는 시작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현재는 배터리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이 폐배터리로 나오고 있지만, 향후 승용차에서 폐배터리가 쏟아지면 선점업체의 비교우위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폐배터리 시장 성장세는 배터리 수요보다 빠를 거라는 전망이다. SNE리서치는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규모가 2025년 배터리 수요의 9% 수준(92GWh)에서 2030년 수요의 약 14%(415GWh)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유럽 등 선진 시장의 재활용 메탈 사용 의무화 움직임도 폐배터리 시장을 키우고 있다. 한정된 자원과 광산개발의 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면 재활용 원료 사용 규제는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유럽의회가 최근 논의 중인 ‘지속 가능한 배터리법’은 배터리 제조 시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이 법안이 발효되면 2030년부터 산업·전기차용 주요 배터리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재활용 소재로 구성해야 한다. 세부 비율은 리튬 4%, 코발트 12%, 니켈 4% 등으로 알려졌다. 2035년부터는 비율이 리튬 10%, 코발트 20%, 니켈 12%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정부도 폐배터리 재활용 부문에 6000만 달러(약 760억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박한신 한국경제 기자 p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