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놀자] 자는 동안 뇌는 기억·학습능력 높이고 노폐물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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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S10
(98) 사람은 왜 잠을 자야 할까사람은 하루 30%의 시간을 잠자는 데 소비한다. 사람이 평균 80년을 산다면 약 24년을 자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굉장히 긴 시간이다. 과학자들은 사람이 왜 잠을 자게 됐는지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수많은 이론을 제시했다.
옛날에는 밤에 잠을 자는 것이 포식자에게 들키지 않아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잠을 잘 자는 개체가 살아남아 현재의 우리가 자게 됐다는 진화론적 이론도 있었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함이라는 이론도 있었다. 최근 들어 뇌과학자들이 잠이 뇌 기능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뇌는 뉴런이라 부르는 약 1000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신경세포는 가지돌기와 축삭돌기들이 밖으로 뻗어 나와 있고, 이들에 의해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런 신경세포 간 연결을 시냅스라고 하는데, 우리 뇌에는 100조 개가 넘는 시냅스가 있다. 감각 기관을 통해 제공된 정보는 전기 신호로 바뀐 뒤 신경세포를 통해 뇌로 전달된다. 시냅스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이 정보를 주고받는데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는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게 된다.
뇌는 신체의 정보를 처리하는 중요한 기관으로, 몸무게의 2%밖에 안 되지만 우리 몸이 소비하는 전체 에너지의 약 18%를 소비할 정도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뇌가 쉬지 않고 계속 일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과학자들은 쥐를 상대로 강제로 잠을 재우지 않는 실험을 했다. 쥐가 2주 동안 잠을 자지 못하자 피부에 종양이 생기고 체온이 낮아졌으며, 먹이를 먹어도 몸이 말라갔다. 그리고 4주 동안 잠을 자지 못하자 면역 기능이 낮아져 감염증으로 죽고 말았다.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도 있었다. 1964년 미국의 한 고등학생이 잠 안 자기 세계 기록에 도전했다. 그는 264시간(11일)을 한숨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는데, 그동안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수면을 중단한 지 2일째부터 눈의 초점이 일정하지 않아 TV 시청을 할 수 없었고, 3일째에는 기분이 잘 변하고 토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 4일째에는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집중력이 낮아졌으며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6일째가 되자 물체를 입체적으로 보는 능력이 떨어졌다. 7일째가 되자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8일째에는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9일째에는 문장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10일째부터는 기억이나 언어에 관한 능력이 매우 낮아졌다. 결국, 그는 12일째 실험을 중단하고 14시간40분 동안 잠을 잤다고 한다.
수면이 생존에 필수적임은 분명하지만 그 기능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다. 한 가지 가설은 수면이 기억과 학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낮 동안 보고 느끼는 것은 기억의 형태로 뇌에 저장된다. 기억이 뇌에 저장될 때 많은 경우 신경세포의 시냅스 강화가 일어나며 그 강화된 시냅스 속에 기억이 저장된다. 깨어 있을 때 새로운 기억을 저장한 신경세포와 그에 딸려 있는 시냅스들이 잠을 자는 동안 다시 활성화된다. 그리고 다시 활성화된 시냅스들은 장기 기억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험적으로 쥐에게 잠을 못 자게 하거나 자는 동안 뇌의 신경세포 활성화를 방해했더니 전날 습득한 기억이 오래가지 않는 결과를 보였다.
자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또 다른 일은 뇌의 시냅스 일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시냅스는 무한정 생겨날 수 없기 때문에 쓸모없는 시냅스는 사라지고 적절한 시냅스만 남는 것이 기억 보존에 더욱 유리하다.
수면은 뇌의 노폐물 배출과 관련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 증가한 뇌 속 노폐물은 잠을 잘 때 빠르게 배출된다. 과학자들은 쥐들의 뇌 속에 각각 똑같은 양의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주입한 뒤 두 그룹으로 나눠 한쪽 그룹은 잠을 자게 했고, 다른 쪽 그룹은 잠을 못 자게 했다. 그 결과 잠을 잔 쥐들의 뇌 속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더 빨리 제거됐다. 참고로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은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물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