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빅스텝' 고려할 4가지 요인 [조미현의 외환·금융 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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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지난 26일 기준금리를 연 1.75%로 인상했다. 지난달에 이은 인상이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인상한 건 2007년 이후 15년 만에 일이다.
그만큼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한국도 미국처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한국도 빅스텝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빅스텝 발언'과 관련 "특정 시점에 빅스텝을 하겠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이 총재는 일단 선을 그었지만,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보면 한은이 빅스텝을 결정할 때 고려할 요인들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이 총재는 물가가 언제 '피크(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정에 달려 있다"며 "현재 유가가 2분기에 배럴당 107달러 정도 하던 것이 연말에는 99달러, 내년에는 90달러 중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유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겠지만, 국제 곡물 가격이 내년 상반기 초까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곡물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상당한 정도 오래간다"며 "경작하고 공급이 늘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하고, 내년에도 4%대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런 전망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 요인이 점차 정상화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해 물가가 한은 예상보다 치솟는다면 한은이 긴축 속도를 더욱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통계청은 내달 3일 5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금리 인상 결정에서는 성장이 큰 고려 요인은 되지 않았다. 이 총재는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한은은 당초 3.0%로 전망한 경제성장률을 2.7%로 수정했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아직 잠재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GDP가) 2% 밑으로 떨어지기에는 아직 버퍼(여유)가 있다"고 했다.
한은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상방 요인) 중 하나로 민간 소비 증가를 제시했다. 한은은 올해 민간 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3.5%에서 3.7%로 올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에 따라 '보복 소비'가 이뤄지면서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다소 낙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예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던 지난 2월보다 높아진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소득 회복세가 제약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1분기 소득 증가율은 생산 증가율(3%)을 훨씬 하회하는 전년 대비 0.1%에 그쳤다"며 "2분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향이 더 반영돼 교역조건이 추가로 악화하고 소득은 전년보다 감소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연말로 갈수록 펜트업 소비(보복 소비)가 약화하면서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추가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동시에 물가의 추가적인 상방 리스크는 제한되면서 한은의 매파적 기조는 누그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소비와 함께 세계 지정학적 요인 등에 따라 수출까지 더욱 차질을 빚으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은이 예고한 대로 금리 인상의 속도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물가는 치솟는데 성장률이 선방한다면, 금리 인상할 이유가 더 생긴다.
Fed는 두어번 빅스텝을 단행할 계획을 밝혔다. Fed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6·7·9·11·12월 등 올해 다섯 번 남았다. 미국에서는 이달 빅스텝을 밟은 Fed가 6, 7월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정이라면 현재 연 1.0%(상단)인 미국의 기준금리는 6월에 연 1.5%, 7월에 연 2.0%로 높아진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의 다음 회의는 7월 13일에 예정돼 있다. 한은이 이 회의에서 빅스텝을 밟지 않고,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7월에는 한·미 간 기준금리가 같아진다. 만약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한다면 한국(연 1.75%)과 미국(연 2.0%) 간 금리는 역전된다.
이 총재는 "미국보다는 한국의 금리가 당연히 일반적으로 좀 높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한·미 금리차가 항상 역전되지 말라는 법은 또 경제적으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빅스텝으로 두 번쯤 하고 더 금리를 올리고, 우리도 우리 상황을 더 봐야 하겠지만 금리를 올릴 경우에 그 (역전) 가능성이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 상황을 볼 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이 더욱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경우 한국이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한국이 빅스텝을 쉽게 단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계부채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단기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이 연동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체 대출의 70%가 변동금리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대출금리가 인상돼 가계에 즉각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은 부동산 대출이 장기금리에 연동돼 있다. 당장 기준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상대적으로 한국만큼 가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이 총재는 "지난 연말부터 시작해서 최근 4월 전까지 가계부채의 성장세가 많이 둔화하고 꺾임세를 보였다"며 "최근 데이터를 보면 그것이 4월에 약간 주춤하고 다시 조금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물가가 오르는데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 한은이 통화정책을 펼치는 데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그만큼 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일부에서는 한국도 미국처럼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앞서 "한국도 빅스텝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이 총재는 기자간담회에서 '빅스텝 발언'과 관련 "특정 시점에 빅스텝을 하겠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이 총재는 일단 선을 그었지만, 이 총재의 기자간담회 발언을 보면 한은이 빅스텝을 결정할 때 고려할 요인들의 힌트를 찾을 수 있다.
① 물가 어디까지 오를까
이 총재는 "당분간 물가를 중점에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히면서 금리 조정에 참고할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 총재는 "6월 초 통계청에서 5월 물가상승률을 발표할 예정"이라며 "저희 생각으로는 5%가 넘는 숫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이 총재는 물가가 언제 '피크(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여러 가정에 달려 있다"며 "현재 유가가 2분기에 배럴당 107달러 정도 하던 것이 연말에는 99달러, 내년에는 90달러 중반으로 떨어질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유가는 비교적 안정세를 보이겠지만, 국제 곡물 가격이 내년 상반기 초까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다. 이 총재는 "곡물 가격은 한 번 올라가면 상당한 정도 오래간다"며 "경작하고 공급이 늘어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5%대를 기록하고, 내년에도 4%대를 상당 기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이런 전망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글로벌 공급망 교란 요인이 점차 정상화될 것이라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급망 차질이 장기화해 물가가 한은 예상보다 치솟는다면 한은이 긴축 속도를 더욱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통계청은 내달 3일 5월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발표할 예정이다.
② GDP는 얼마나 될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 고려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물가와 함께 성장률이다. 금리 인상이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7월 중순에 2분기 국내총생산(GDP) 자료가 발표된다"고 언급했다.이번 금리 인상 결정에서는 성장이 큰 고려 요인은 되지 않았다. 이 총재는 "경제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한은은 당초 3.0%로 전망한 경제성장률을 2.7%로 수정했다.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4%로 제시했다. 이 총재는 "아직 잠재성장률보다 (성장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GDP가) 2% 밑으로 떨어지기에는 아직 버퍼(여유)가 있다"고 했다.
한은은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요인(상방 요인) 중 하나로 민간 소비 증가를 제시했다. 한은은 올해 민간 소비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 3.5%에서 3.7%로 올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에 따라 '보복 소비'가 이뤄지면서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예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다소 낙관적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예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상황이 반영되지 않았던 지난 2월보다 높아진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며 "글로벌 원자재 가격 상승 여파로 소득 회복세가 제약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1분기 소득 증가율은 생산 증가율(3%)을 훨씬 하회하는 전년 대비 0.1%에 그쳤다"며 "2분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영향이 더 반영돼 교역조건이 추가로 악화하고 소득은 전년보다 감소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연말로 갈수록 펜트업 소비(보복 소비)가 약화하면서 한은의 민간 소비 전망이 추가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동시에 물가의 추가적인 상방 리스크는 제한되면서 한은의 매파적 기조는 누그러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간 소비와 함께 세계 지정학적 요인 등에 따라 수출까지 더욱 차질을 빚으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은이 예고한 대로 금리 인상의 속도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물가는 치솟는데 성장률이 선방한다면, 금리 인상할 이유가 더 생긴다.
③ 미국의 긴축 속도는?
이 총재는 "다음 달에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어떤 이자율을 결정하는지까지 중요 데이터가 다 나온다"고도 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Fed의 움직임은 매우 중요하다. 이 총재는 "한·미 간 금리 차를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데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했지만, 일반적으로 미국의 금리가 더 높으면 한국에 투자된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Fed는 두어번 빅스텝을 단행할 계획을 밝혔다. Fed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6·7·9·11·12월 등 올해 다섯 번 남았다. 미국에서는 이달 빅스텝을 밟은 Fed가 6, 7월에도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정이라면 현재 연 1.0%(상단)인 미국의 기준금리는 6월에 연 1.5%, 7월에 연 2.0%로 높아진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의 다음 회의는 7월 13일에 예정돼 있다. 한은이 이 회의에서 빅스텝을 밟지 않고,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 7월에는 한·미 간 기준금리가 같아진다. 만약 한은이 7월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한다면 한국(연 1.75%)과 미국(연 2.0%) 간 금리는 역전된다.
이 총재는 "미국보다는 한국의 금리가 당연히 일반적으로 좀 높은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한·미 금리차가 항상 역전되지 말라는 법은 또 경제적으로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빅스텝으로 두 번쯤 하고 더 금리를 올리고, 우리도 우리 상황을 더 봐야 하겠지만 금리를 올릴 경우에 그 (역전) 가능성이 없다고 얘기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 상황을 볼 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미국이 더욱 공격적인 긴축에 나설 경우 한국이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④ 가계부채도 지켜봐야
이 총재는 "물가와 함께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융안정에 대해 "가계부채 문제와 외채 문제 등을 다 포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한국이 빅스텝을 쉽게 단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가계부채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단기 금리에 주택담보대출이 연동된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전체 대출의 70%가 변동금리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 대출금리가 인상돼 가계에 즉각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미국은 부동산 대출이 장기금리에 연동돼 있다. 당장 기준금리가 인상되더라도 상대적으로 한국만큼 가계 부담이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이 총재는 "지난 연말부터 시작해서 최근 4월 전까지 가계부채의 성장세가 많이 둔화하고 꺾임세를 보였다"며 "최근 데이터를 보면 그것이 4월에 약간 주춤하고 다시 조금 올라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물가가 오르는데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면, 한은이 통화정책을 펼치는 데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