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4명이 불고기·냉면 먹었더니 44만원 나왔어요"

밀가루 등 곡물가 급등 속 외식물가 고공행진
4월 서울 지역 자장면 값 6000원 냉면 값 1만원 돌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직장인 정모 씨는 가정의 달을 맞아 냉면으로 유명한 한 갈비집에서 가족 모임 후 계산서를 보고 당황했다. 불고기와 갈비, 냉면을 먹으니 4인 가족에 44만원 가까이 나왔기 때문. 정 씨는 "고기 외식이라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이를 넘어섰다. 메뉴판을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물냉면 한그릇에 1만3000원인 것을 보고 치솟은 물가를 체감했다"고 토로했다.

외식 물가가 급등하고 있다. 서울 지역 자장면 평균 가격이 6000원을 넘었고, 칼국수 평균 가격도 8000원을 뚫었다. 이상기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밀 가격이 급등한 여파다. 국제 곡물 시장이 추가로 불안정해진 만큼 추가적인 외식 가격 인상도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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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균 냉면값 1만원·짜장면 6000원 뚫었다

29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이 집계한 지난달 서울 지역 외식비에서 자장면 평균 가격은 처음으로 6000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가격 상승폭이 5.1%로 외식 품목 중 가장 큰 폭으로 뛴 결과다. 4월 자장면 가격은 6146원으로 지난해 같은달보다 14.1% 올랐다.

앞서 지난 3월 서울 지역 칼국수 가격이 처음으로 8000원을 넘은 데 이어 4월에는 자장면이 6000원선을 뚫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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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 가격은 8269원으로 4월에도 전월보다 1.9% 올라 상승세를 이어갔다.

밀가루가 원재료인 자장면, 칼국수 등 외식 품목은 최근 2년 사이 가파른 우상향 추세를 나타냈다. 2020년 4월 당시와 비교하면 2년 사이 자장면 가격은 20.2% 뛰었고, 칼국수 가격도 13.8% 올랐다.

여름이 성수기인 냉면도 메밀 가격 급등 여파로 서울 지역 평균 가격이 1만원선을 돌파했다. 4월 냉면 가격은 1만192원으로 전월보다 2.3%, 지난해 4월보다 9.5% 올랐다.
자료=참가격
특히 유명 음식점은 한발 앞서 주요 메뉴 가격 인상에 나선 만큼 소비자 체감 물가 상승률이 한층 클 전망이다.

칼국수로 이름난 서울 명동의 '명동교자'는 지난 2월 3년 만에 주요 메뉴 가격을 1000원씩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 그릇에 9000원이던 칼국수는 1만원으로 올랐다. 성수기를 앞둔 냉면의 경우 유명 평양냉면 가격은 한 그릇에 1만2000~1만7000원 수준으로 형성된 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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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황 부진에 전쟁까지…곡물 시장 불안 커져

이같은 외식비 상승의 배경에는 밀을 비롯한 곡물 가격 급등이 있다.

밀의 경우 세계 밀 수출 2위인 미국의 생산량이 지난해부터 작황 부진으로 급감한데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침공 여파로 가격이 뛰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초 t당 279달러 수준이던 국제 밀 가격은 26일(현지시간) 420달러로 치솟은 상태다. 국내 기업은 식용 밀을 미국, 호주, 캐나다 등에서 각각 수입하고 사료용 밀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서 수입하고 있다. 여기에 인도의 밀·설탕 수출 제한 등으로 국제 곡물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졌다.

업계에선 우크라이나 사태로 올해와 내년 국제 밀 가격 상승, 국내 외식물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배합사료 및 식품제조업에 사용되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
자료=NH투자증권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현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식량 불안정에 미칠 영향에 대해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은 밀과 옥수수 가격이 8% 추가 상승할 전망이고, 좀 더 심각한 영향을 가정하면 20% 정도의 추가 상승을 예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가공식품 기업의 원가 부담이 가중되면서 추가적으로 상품 및 외식비 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음식료 기업들은 매출에서 원재료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이라며 "국제 곡물가 상승은 3~6개월 후 가공식품 업체에 원재료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같은 흐름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이어진 자유로운 국제무역 기조가 흔들리고 있기 떄문이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에 따르면 올해 들어 26개국이 식품이나 비료 관련 전면 수출 금지 혹은 특별 인허가 절차 신설 등 수출 제한 조치에 나섰다. 이는 식량 위기가 극심한 2008년 당시 33개국에 육박하는 수치이고, 이 가운데 23개국은 현재 수출 규제를 이어가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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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공급 우려도 일고 있지만 제조업계에선 밀가루와 설탕 공급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전망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다. 국내의 인도산 밀 수입 비중이 낮고, 국내 기업은 설탕이 아닌 원당을 수입하는 만큼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란 설명이다. 국내 기업은 설탕은 호주나 태국 등에서 원당을 수입해 설탕을 제조하고 있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인도의 밀, 설탕 수출 제한 조치가 국내 업계의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가격은 인상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수급에는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