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탄광촌을 멜론마을로 바꾼 '고졸 시장'

소멸 위기의 지방도시는
어떻게 명품도시가 되었나?

전영수 외 지음
라의눈
528쪽│2만5000원
경매 시장에서 한 통에 250만엔(약 2480만원)에 팔린 멜론이 있다. 한때 ‘유령도시’로 불린 일본 홋카이도 유바리시의 특산물 ‘유바리 멜론’이다. 일반 상품 기준으로 4만~5만원에 팔리는 이 과일은 이 도시의 얼굴이다. 샤베트 아이스크림 빵 등 가공상품은 물론 멜론꽃으로 벌꿀과 젤리도 만든다.

유바리 멜론은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깜짝 상품’이 아니다. 100년 전부터 있던 작물을 30세 청년 시장이 ‘유바리의 간판 상품’으로 바꿔놨다. 유바리시는 1950년대까지 잘나가던 탄광 마을이었다. 하지만 탈(脫)석탄 움직임에 휩쓸리면서 일본 도시 최초로 파산을 선언했고, 이후 ‘도시 몰락의 상징’이 됐다.전환점은 도쿄 출신 고졸 공무원인 30세의 스즈키 나오미치가 시장에 취임한 2011년에 찾아왔다. 젊은 시장은 유바리 멜론 50통을 들고 해외에 나가 수출길을 직접 뚫는가 하면,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도 가동했다.

《소멸위기의 도시는 어떻게 명품도시가 되었나?-지역과 미래를 되살린 일본 마을의 변신 스토리》는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를 겪고 있는 일본 마을을 현장에서 연구한 보고서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진과 연구원들이 소멸 위기에서 부활한 일본의 명품 도시 8곳을 발로 뛰었다.

버려진 톱밥으로 산촌 자본주의를 만든 마니와, 골칫거리였던 빈집을 ‘찾아가고 싶은 호텔’로 개조한 단바사사야마, 콤팩트시티의 교과서가 된 도야마, 몰락한 상점가를 일으켜 세운 마루가메, 가진 것이 없다는 데서 시작한 홋카이도 사진마을 히가시카와 등을 다룬다. 숫자가 가르쳐주지 않는 거리의 풍경, 사람들의 표정과 현장 분위기까지 담아냈다.책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뛰어든 일본 도시들의 성패를 가른 요인을 사례 중심으로 분석한다. 저자들은 지방 소멸을 막는 핵심은 구호보다 사람에, 목표보다 과정에 그 답이 있다고 결론 낸다. 지역 재생은 결국 돈을 벌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시사점도 남긴다.

한겨울 혹독한 날씨로 악명 높은 후쿠이현 사바에는 안경산업 관련 장소를 청년을 위한 기술 인큐베이터 센터로 만들었다. ‘청년을 위해 모든 걸 다 한다’는 게 이 도시의 슬로건이었다. 사바에는 이제 ‘이토록 멋진 마을’이자 창업·취업의 도시가 됐다. 지금도 연 200~300명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찾아오면서 10년째 인구가 늘고 있다. 노동률(64%), 취업률(62%), 여성 취업률(55.1%) 등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