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발코니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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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석 건축가·경희대 교수 komagroup@hanmail.net미세먼지와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건강을 지켜주던 마스크가 공동체 구성원 사이에 심리적인 벽을 형성했다. 코로나 블루에 갇혀 있던 잿빛 트라우마도 쾌청한 하늘 아래에서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고 있다. 막혔던 관계와 마음의 벽도 걷히는 느낌이다.
우리가 사는 주거 공간도 걷어내야 할 닫힌 벽이 있다. 발코니다. 베란다 또는 테라스라 불리는 소중한 공간이다. 건물 전면에 배치돼 탁 트인 주변의 전경과 공기를 한껏 접할 수 있게 보장한 매력적인 장소다. 교황의 발코니 아래 광장에서 일어나는 성대한 퍼포먼스나 발코니를 올려다보며 줄리엣에게 구애하던 로미오의 세레나데 장면을 상상해 보면, 공중에 매달린 발코니의 효용성과 낭만적 가치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아쉽게도 우리 주거 환경에서 발코니는 항상 천덕꾸러기로 취급받았다. 본래 기능은 무시되고 짐 보관소, 세탁 공간, 방을 확장하는 공간 등으로 변형돼 아파트 평수 확장의 욕심만을 채워주는 곳이었다.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가 주거 공간에 혁명적 해결책을 가져다주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여러 가정의 다양한 수요를 고려하면서 현대 생활이 가능토록 최적화한 주거 공간 유닛을 도심의 땅 위에 놓인 하나의 좁은 건물 속에 무수히 집적해 넣었으니, 이보다 경제적이고 기능적이며 평등한 도시의 주거 방식이 있었을까? 분명 아파트는 효율적인 주거 방식임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조금 더 여유롭게 내부 공간을 넓히려는 욕망이 발코니를 희생시켰다. 최소의 외부 공간마저 벽을 변형하거나 유리 창호로 가둬 내부에 편입하려는 도시민의 과욕은 발코니의 순기능을 한국형 아파트 유형에서 아예 퇴출하는 우를 범했다.
아파트의 주 소비층이던 핵가족 사회가 한두 명의 극소가족 형태로 가속화하면서 발코니를 확장해 실내 면적으로 키운 방들이 이제는 그 선호도에서 조금씩 밀리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19가 우리 주거 공간까지 침범해 왔고, 위드 코로나 시대에는 바람 유입과 신선한 공기 순환이 매우 중요한 일상의 습관이 됐다. 쾌적한 외부 공간에서의 활동이 선호되며, 초록빛 화초들이 자라날 수 있고 자연 통풍이 용이한 진짜 살아있는 외부 공간은 더 절실해졌다.
주거가 고급스러워질수록 외부 공기 속에 매달린 발코니의 존재가 더 중시될 것이다. 그동안 구박받던 발코니의 역습이 시작되는 것이다. 완전히 마스크를 벗게 되면 발코니에 나가서 청량한 바람을 깊이 호흡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