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셀럽 영부인' 김건희 [여기는 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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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동욱 반장의 대통령실 돋보기“출근을 함께 하는 대통령 부부도 볼 수 있겠죠?”
셀럽이 된 ‘영부인 김건희’, 왜?
김건희 백, 김건희 블라우스에 김건희 굿즈까지
늘씬한 키에 예쁜 외모는 셀럽의 필요조건일 뿐
진영논리에 동정여론 가세…‘성공한 커리어우먼’ 입소문도
영부인 이후에도 ‘저자세’…국민들은 오만한 정치인 싫어해
윤석열 대통령에겐 미안하지만, 최근 대통령실 복도의 화제가 ‘살짝’ 김건희 여사로 기울고 있습니다. 출근길 스탠딩 회견도 이제는 식상해졌는지, 부부 동반 등원을 바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유력 언론들은 지난 27일 나온 여러 사진 중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사전투표장에 함께 가 찍은 사직을 ‘콕’ 집어 보도합니다. 당시 김 여사가 입은 흰색 반소매 블라우스와 펜화 스타일의 그림이 인쇄된 가방 등은 네티즌들의 관심이 말 그대로 ‘폭발적’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셀럽 영부인’이 나왔다” 정치권은 예전에 보지 못한 모습에 적지 않게 놀라고 있습니다.
셀럽은 영어로 유명인을 뜻하는 ‘Celebrity’의 줄임말입니다. 셀럽이 입은 옷이나 착용한 장신구를 대중들이 따라 사기 때문에 소비 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김 여사가 한국 최고의 ‘셀럽’ 중 한명으로 등극하는 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김건희’를 치면 연관 검색어로 ‘김건희 치마’ ‘김건희 슬리퍼’ ‘김건희 휴지’ 등이 함께 올라옵니다. 김건희 여사의 공식 카페인 네이버의 ‘건사랑’엔 김 여사를 소재로 한 안경, 컵, 마스크 등 ‘김건희 굿즈’도 판매됩니다. 까페 회원수는 최근 9만2000명을 돌파했습니다. 회원수가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대선 당시 선거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그림과 ‘사뭇’ 다릅니다. 선거 당시엔 김 여사의 대학 경력 부풀리기 의혹과 인터뷰 녹취록 논란 등이 연거푸 제기되면서 윤 대통령 선거에 부담이 주는 인물로 간주됐습니다. 네티즌 뿐 아니라 언론도 희화화하기 일쑤였습니다. 석사 논문의 한국어 제목 ‘회원 유지’를 영어로 ‘member Yuji’로 번역한 것이나 “보수는 챙겨 주니깐 ‘미투’(성폭력 고발)가 별로 안터진다”는 녹취록 발언 때문에 선거 실무진들이 전전긍긍하며 밤을 세웠습니다.
진영논리에 동정심 가세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후엔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는 자취를 ‘싹’ 감췄습니다. 새정부 출범 직후 허니문 기간이라는 영향도 있겠지만 ‘인간 김건희’에 대한 호감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고 있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우선 주목하는 요인이 ‘외모’입니다. 눈이 크고 피부가 고운데다 170cm에 가까운 늘씬한 키가 사람들의 이목을 모이게 만듭니다.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 스포츠 스타와 다를 바 없다는 설명입니다.하지만 ‘미인 아나운서’ 출신의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성 정치인들은 ‘셀럽’이라는 얘기를 듣지 못합니다. 외모가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진영 논리가 작동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국민들의 정치 성향이 보수와 진보 성향으로 극명하게 갈리면서 내편은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상대편은 무조건 반대한다는 주장입니다. 정치인들에 대한 ‘팬덤’이 강화되는 것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에 대해 절대적 지지를 보이는 소위 ‘개딸’(2030세대 개혁 성향의 여성)들과 김건희의 팬덤이 근본적으로 유사한 현상이라는 거죠.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동시에 종교화되고 있다”며 “내 편은 무조건 보호하고 남의 편은 천사라도 악마화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정치권의 극렬한 팬덤이 주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형성돼왔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 문재인 등 전직 대통령 사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팬덤 현상의 연장선상에서, 김건희 여사에겐 동정여론이 가세했다는 얘기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본인이 그동안 쌓아 온 실력과 개인적 성품에 비해 상대 진영에서 과도하게 비판과 공격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진영 논리와 동시에 동정심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한 측근은 “김건희 여사는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한 스토리가 분명하다”며 “앞으로 이런 내용이 차차 알려지면 진영 논리와 관계없이 호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대중은 ‘오만한 정치인’을 싫어한다
실제 미술 애호가들은 김건희 여사가 2015년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 전을 기획한 코바나콘텐츠의 대표라는 사실을 알면 적지 않게 놀랍니다. 미국 워싱턴국립미술관이 소장한 로스코 작품을 약 3개월동안 예술의전당에 들여 온 대형 전시회였습니다. 보험 평가액 2조5000억원에 이르는 과감한 전시 규모 뿐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작가’라는 ‘잡스 마케팅’이 주효하면서, 당시 전시업계에선 “전례없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받았습니다. 김 여사가 지난 주 방한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당시 로스코 전의 전시 도록(圖錄)을 선물하면서 이 전시회가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국민과 대중을 대하는 자세가 남다르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건희 여사는 영부인이 된 이후에도 외부 노출을 자제하면서 선거 이전부터 보여 온 ‘저자세’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영부인을 보좌하는 대통령실의 제2부속실도 선거 공약대로 없앴습니다. 본인을 향한 팬덤 뿐 아니라 본인을 반대하는 진영까지 고려하는 겸손한 자세를 국민들이 높게 평가한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면서도 김 여사 측은 외부로 노출되는 사진이나 영상 등은 섬세하게 기획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신 교수는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셀럽들의 신비주의 전략과 유사한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