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무서운 배급의 시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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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프롤로그>
인류 문명의 발달로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풍족해졌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문명의 밝은 빛은 퇴색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코로나의 위기 상황에서도 잘 갖춰진 ICT(정보통신기술)로 음식과 생필품을 원활하게 조달하며 위기 상황을 극복해 왔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자국 이기주의 정책으로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와 공급망이 훼손되면서 석유, 식용유, 반도체, 백신까지 <자유로운 배달의 시대에서 결핍된 배급의 시대>로 퇴행하는 위기를 맞고 있다. 영화<홍등(Raise the red lantern), 1991>에서 봉건적인 중국 사회에서 모든 자원과 인간성까지 통제된 배분은 결국 사람들을 비극적인 삶으로 몰아넣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물과 의견이 자유롭게 공급되는 <배달의민족>을 유지하게 하는 소중한 체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영화 줄거리 요약>
1920년대 중국, 19세의 송련(공리 분)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몰락하자 대학을 중퇴하고 계모의 강요에 봉건적인 가문인 진 부자의 넷째 첩으로 시집간다. 진 부자는 네 명의 부인 중 매일 한 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선택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그날 밤 홍등을 밝히는 가풍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다. 네 명의 부인들은 서로 시기하고 모략하면서 폐쇄된 공간에서의 권력 암투에 나선다. 지성을 갖춘 송련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홍등이 가져다주는 쾌락에 익숙해지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빠져들게 된다.<관전 포인트>
A. 진 부자 부인들의 특징은?
@첫째 부인 유루: 유일한 아들을 안겨 주었지만 마음 붙일 곳을 잃고 삶에 지쳐 있다.
@둘째 부인 탁운: 겉으로는 가장 친절하지만 무서운 야망을 숨기고 다른 부인들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셋째 부인 메이샨: 전직 오페라 가수로 진부자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새벽에 지붕에서 아리아를 부르는 욕심 많은 여인이다. 결국 의사와의 불륜이 드러나 죽음을 맞이한다.
@넷째 부인 송련: 대학을 중퇴하고 학식도 있지만 주체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결국 바꿀 수 없는 거대한 봉건 제도 속에서 비극적인 여인으로 전락하게 된다.
B. 진 부자에게 오늘의 부인으로 선택되면 받는 특권은?
아침에 진 부자에게 선택된 여인은 침실 처소에 홍등이 켜지고 하녀가 목욕을 시켜주며 전속 시녀가 발 마사지를 해준다. 진 부자는 송련과의 첫날밤 "여자는 발이 편안해야 남자를 잘 모실 수 있다"라며 여자를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도구로 생각한다. 진부자를 모신 부인은 다음날 아침 식단을 정할 수 있는 권리도 얻게 된다. 이러한 특권을 통한 서열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부인들은 무서운 암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C. 송련이 진 부자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위해 벌인 사건은?
@홍등의 권력을 맛본 송련은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하여 잠시 진 부자의 환심을 사지만 몸종의 고발로 거짓이 들통나면서 진 부자는 대로하여 검은 천으로 홍등을 봉하는 이혼 선고나 다름없는 조치를 취한다.
@송련은 외로움에 술에 취해, 셋째 부인의 불륜 사실을 둘째 부인에게 알리게 되고 사악한 둘째 부인은 진 부자에게 고자질하여 결국 셋째 부인은 옥상 끝 집 작은 골방에 끌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D. 하녀 연아가 송련을 증오한 이유는?
하녀는 평소 진부자의 간택을 통해 사랑을 받고 싶은 욕망에 송련에게 강한 질투를 느껴 홍등을 훔쳐 자신의 처소에 밤마다 몰래 불을 밝히고 둘째 부인의 사주로 송련을 주술로 저주하다가 들키자 송련의 가짜 임신 사실을 둘째 부인에게 고해 송련이 주인에게 소박당하게 되자 화가 난 송련은 하녀가 숨겨둔 홍등을 불태우며 응징하게 된다.
E. 영화에서 비극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은?
셋째 부인이 처형당하고 송련까지 미치게 된 비극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부조리와 광기는 개선없이 진 부자는 다시 다섯 번째 부인을 맞아들인다. 미친 송연의 모습을 보며 누군지 묻는 넷째 부인의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그녀 역시 또 다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장예모 감독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특유의 색채 미학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하고 있다.<에필로그>
과거 6.25 동란 이후 우방국에서 보내준 원조 물자 보급을 받던 결핍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경제성장의 결과로 주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는 질 좋은 제품들이 산처럼 쌓여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존속과 지속적인 발전이 필수적이다. 거대하지만 통제적 환경을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통해 우리는 체제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자유로운 배달의 시대에서 무서운 배급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도록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 수준의 국격과 리더십을 만들어 나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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