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와 '냄새'로 뉴욕·런던 뒤흔든아니카 이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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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드스톤서 국내 첫 개인전“독창적 상상력으로 냄새 풍경화(scentcape)를 만든 작가.”(런던 테이트모던)
지난 10년간 파격적 작품으로 전 세계 예술계를 뒤흔들고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아니카 이(51)가 31일부터 7월 8일까지 서울 청담동 글래드스톤갤러리에서 국내 첫 개인전을 연다.아니카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40세에 첫 개인전, 50세에 런던 테이트모던 전시,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개념미술의 개척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는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영화를 공부하고, 패션 관련 일을 하다가 30대 중반에서야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기계와 냄새로 독특한 냄새의 풍경을 창조해내며 ‘시각 중심의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작가는 개인전으로 데뷔한 지 5년 만인 2016년 가장 혁신적 예술가에게 트로피를 안겨주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휴고보스상’을 받았다. 이후 베네치아 비엔날레 전시(2019년), 테이트모던 터바인홀 전시(2021년) 등 각국 주요 미술관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엔 아시안·아메리칸 여성들에게서 채취한 땀, 여러 종류의 살아있는 곤충들, 박테리아로 얼룩이 낀 타일과 의자 등이 등장한다. ‘공기’와 ‘냄새’가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다.1971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두 살 때 미국 텍사스로 옮겨갔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니다 1990년대 영국 런던으로 건너갔고, 향수에 조예가 깊던 어머니 영향을 받아 30대 중반 향수와 과학을 접목한 작품을 시작했다. 2016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예술과학기술센터 입주 작가 생활을 하며 첨단기술과 생물학을 접목한 문제적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엔 그의 대형 전시작은 빠졌지만, 예술과 과학의 관계성을 탐구 중인 작가의 작품세계를 알 수 있는 설치작품이 많다.아마존에서 영감을 받은 ‘치킨 스킨’ 시리즈 등은 자연과 인공의 구분을 무너뜨리려는 작가의 시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닭살 돋은 모양의 액자 안에 서양란 조화가 담겨 있다. 큰 패널에 말미잘과 산호 폴립, 아메바와 같은 형태를 섬세하게 깎은 ‘아네모네 패널’ 시리즈의 최신작도 전시됐다. 작가는 “네트워크로 구축된 지성과 버섯 포자들이 상관관계를 이루는 이미지를 구현한 것”이라며 “생물계와 기술계라는 두 영역이 서로 고립시키지 않고 통섭하면서 오늘날 세계를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탐구했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