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완화 늦을 것"…리모델링 72% 늘었다

조합설립 72→124개 단지

'규제완화땐 재건축' 예상 깨고
"빠른 추진이 정답" 속도 빨라져
용적률 높은 단지 선택폭 좁아

SK, 리모델링 사업 첫 진출
쌍용과 인천 1982가구 첫 수주
대치 2단지는 재건축파와 '갈등'
재건축과 리모델링은 한 쪽의 수요가 늘면 다른 쪽은 감소하는 ‘대체재’ 관계다. 재건축이 활성화되면 리모델링은 시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 출범과 6·1지방선거 규제 완화 공약 영향으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단지들이 재건축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됐지만,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더 늘었다. 기약없는 재건축 규제 완화를 기다리기보다 리모델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 리모델링

30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5월 기준 전국에서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된 곳은 총 124개 단지로 전년 동월(72개 단지)보다 72% 증가했다. 올해 리모델링협회에 등록한 단지만 20곳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 화정동 별빛마을 8단지 부영아파트는 지난 21일 리모델링 창립총회를 열었다. 1기 신도시 일산에서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부산 해운대 상록아파트도 지난 3월 리모델링 조합 첫 총회를 열고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성동구 응봉동 신동아아파트, 송파구 문정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조합도 지난달 쌍용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 시그널에도 리모델링이 활발한 이유는 사업 추진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재건축은 안전진단 등급이 D등급 이하여야 하지만 리모델링은 B등급으로도 할 수 있는 데다, 사업 가능 연한도 15년으로 재건축보다 짧다. 리모델링 부문 선두 업체인 쌍용건설은 “정부의 재건축 규제 완화 속도가 더딘 만큼 리모델링 시장 전망은 여전히 밝다”고 설명했다.이에 따라 리모델링 수주전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28일 인천 부개주공3단지 아파트(사진) 리모델링 조합은 쌍용건설-SK에코플랜트(옛 SK건설) 컨소시엄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인천의 첫 리모델링 사업이다. 1724가구인 이 단지는 수평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1982가구로 바뀐다. 10대 건설사 가운데 리모델링 시장에 가장 늦게 뛰어든 SK에코플랜트는 하반기에는 용인 죽전 도담마을 7단지 리모델링 사업을 단독으로 수주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재건축·리모델링 파로 갈린 단지도

정비사업 초기 단지들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놓고 고민하는 분위기다. 면적을 늘리고 지하주차장을 신설하는 정도는 수직, 수평 증축 리모델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커뮤니티 등 특화설계를 적용하려면 재건축이 낫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권의 가장 큰 리모델링 추진 단지인 강남구 개포동 ‘대치2단지’는 주민들이 리모델링파와 재건축파로 갈라져 갈등을 빚고 있다. 대치2단지는 1992년 준공된 단지로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준공 30년을 넘겨 재건축 연한을 획득했다. 재건축 찬성파 주민들은 대치2차의 용적률이 182.7%로 재건축을 시도해도 될 만큼 사업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재건축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리모델링 시공권을 따내려고 했던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입찰을 포기했다. 사업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미 리모델링 사업에 들어간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재건축으로의 선회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갈림길에서 리모델링을 택한 단지도 있다. 서울 용산구에서 2036가구로 최대 리모델링 단지로 꼽히는 한가람 아파트는 용적률이 358%에 달해 재건축 사업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틀었다.전문가들은 리모델링 조합 설립 인가까지 마친 곳은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낫다고 조언한다. 이동훈 무한건축 대표(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는 “새 정부 들어 재건축으로 바꾸는 게 나을지 문의하는 리모델링 조합이 부쩍 많아졌다”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이 나오지 않은 데다, 재건축으로 바꿀 경우 기존 조합을 해산하고 안전진단과 재건축 조합 설립 등의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