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물가 감세로?…세금은 경제 살려놓고 올려도 된다 [여기는 논설실]

尹정부 첫 물가대책, '탄력세' 넘어 전반적 감세 필요
여론 압박 커져도 '시장친화 정책' 견지할 지가 관건
해외 공급요인, 대응책 마땅찮아…정부지출도 줄여야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경제관계장관회의가 어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렸다. 그간 기재부 중심으로 주물럭거려온 ‘고물가 대책’을 확정하는 자리였다. 회의가 끝나면서 미리 준비된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긴급 민생안정 10대 프로젝트’라는 긴 이름의 자료가 발표됐다.

전체적으로 감세(減稅)안이 두루 망라돼 있다. 여소야대에서 국회의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시행할 수 있는 정부 방안이 여러 가지 들어가 있다. 인플레이션을 넘어 스태그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최근의 고물가와 관련해 정부의 대응 스탠스와 향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시금석이라는 차원에서 어제 회의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감세로 방향 잡은 것은 불황 때 고물가에 대한 대책으로 정석 플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탄력세인 할당관세제도를 적극 활용해 돼지고기 식용유 커피 등 14개 품목의 가격인하를 유도하겠다는 게 그렇다. 커피 코코아 등의 원수 수입에서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겠다는 것이나 김치와 장류 등 단순가공식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 확대도 농산물에 대한 적극적 해석으로 보인다. 물론 이제부터 정부 지출 줄이기도 동반돼야 한다.

감세로 간다고 해서 바로 문제제기할 필요는 없겠다. 세금은 경기가 활성화되면 세율을 올려 대응하면 된다. 우선은 경제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할당관세라는 것이 월래 그런 취지로 시행되는 것이다. 물자수급을 아주 원활하게 하거나 과다한 공급을 막기 위한 탄력세다. 최근 치솟는 국제유가에 대응한 유류세 한시 인하도 탄력세로서의 유류세제 운용법이다.

부임 때 거듭 외친 '자유', 정책으로 실행해 나가야

다만 윤석열 정부는 물가대책을 내더라도 좀 달라질 필요가 있다. 대통령 부임 때부터 그토록 ‘자유’를 강력히 외쳤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도 져야 하는 차원이다. 물가 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즉 ‘물가 대응’을 하고 ‘고물가 대비책’을 세울 때 세우더라도 시장친화적 대책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기조에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중·장기 관점에서 시장과 가격(물가)을 보는 것도 중요하다. 감세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법인세도 일단 인하될 필요가 있다. 국제비교가 되고, 기업 투자를 유인하는 주요한 요소인 까닭이다. 소득세도 이제는 부자증세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징벌적 부동산 세제를 정상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업에 대한 상속세는 고용 유지, 축적한 기술 의 승계·발전 차원에서, 개인 자산의 상속세는 커진 경제규모에 맞춰 현실화 한다는 측면에서 고칠 필요가 있다.

모두 법률 개정이 뒤따라야 한다. 당연히 국회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안 발의는 정부도 하는 만큼 국민만 보면서 가야 한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국회 탓을 하면 지금 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된다.

해외발 공급 요인의 고물가, 한국 대응책 마땅찮아

물가대책에서 과욕을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고물가는 국제 요인, 즉 해외 발(發) 공급 쪽 요인 탓이 크다. 그러니 국내에서 우리 정부나 기업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경제적 약자 중심의 소비자들의 대책마련 호소는 끊이지 않겠지만, 정부가 이런 현실을 솔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고래로 흉년에는 세 끼 다 먹기 어려운 법이다. 지혜를 발휘하되, 인내도 절실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끝이 없고 미국과 중국의 대립 심화로 글로벌 공급망의 판 자체가 바뀌면서 원자재 값이 치솟는 데 어떻게 할 것인가. 전제 군주 시절 임금도 흉년에는 한 끼 쯤은 줄이지 않았겠나. 허리띠를 더 죄고 모두 긴축으로 가야 한다.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마른 수건도 다시 짜는 노력을 가계, 기업, 정부 모두 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솔선해야 할 때다. 공기업 등 공공부문 전체가 그렇다. 임금, 선심성 재정 지출… 등 긴축의 대상은 무척 많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물가가 문제 될 때마다 “도대체 정부는 뭐 하나”라는 불만과 푸념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언론, 야당, 사회단체 구별도 없다. 그러나 이 압박에 흔들리고 넘어지면 상황만 악화될 것이다. 가령 구청 공무원과 세무서 직원 등으로 합동물가단속반을 만들어 시장통을 돌게 하면서 가격 단속을 한다고 치자. 그렇게 음식 값을 올린 식당 같은 곳에 괜히 위생 문제 등으로 시비나 하고, 상품 가격을 올린 기업에 국세청과 관세청이나 동원한다고 고물가가 풀릴 수 있을까. 속된 말로 ‘88년도 식’의 이런 우격다짐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정부에 대한 반발을 키우고 행정 감시에 대한 내성만 키울 것이다. 효과도 없다. 이런 유혹부터 떨쳐야 한다.

'88년도 완장부대 식' 가격 감시·단속 유혹 떨쳐내고 안정적 공급망 확보에

정부가 노력해야 할 부문이 있다면 단연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다. 밀가루·식용유·육류부터 가스·석유 다 그렇다. 돈이 있어도 물량을 확보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지금 정부 역할이다. 윤 정부 물가대처 능력도 여기서 판가름 날 것이다. 가격 상승에도 물량은 확보된다면 불안 심리를 없애면서 유통망에서의 막힘 현상도 막아낼 수 있다. 도소매 유통사업자를 필두로 민간 공급자들 스스로 사재기나 무리한 반출량 조작 등의 행태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고통분담은 지금의 공급망 위기를 극복에 크게 도움 되고, 궁극적으로 자기 이익을 키울 것이다. 하지만 이게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또 당위론으로 필요하다고 외치기만 한다면 순진한 정부다. 예나 지금이나 그런 '시장의 선의'에만 기댈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정부가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는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통신요금 등을 보면 가격개입에 개입하려는 한국 고유의 ‘관료적 전통’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윤 정부는 부디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종합적으로 지금의 물가대책은 이전 정부 때보다 더 어렵게 됐다. 여건은 불리한데, 자유를 외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책임을 져야 할 것 아닌가. 대신 잘 이겨내면 박수를 더 받을 기회도 커졌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