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의 논점과 관점] 경찰을 정치에서 놓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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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논설위원지난 27일 인천지방법원 317호 법정에서 ‘서창동 층간소음 칼부림 사건’ 1심 재판이 있었다. 법원은 아래층 가족 3명을 칼로 찔러 다치게 한 가해자에게 살인 미수죄를 적용, 징역 22년형과 전자 발찌 10년 부착을 명령했다. 피해자 측은 “층간소음에 의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살인 미수 혐의를 인정한 재판부에 감사한다”면서도 “이런 비극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는 경찰에 더 분노한다”고 말했다. 경찰이 어떻게 칼부림 현장에서 도망칠 수 있느냐는 울분이다.
검수완박 어거지로 경찰 초토화
‘도망 여경’ 사건은 미스터리다. 당사자는 지난해 11월 사건 직후 “트라우마로 기억이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경찰인데’라는 의문을 남겼다. 소지하고 있던 테이저건만 제때 발사했어도, 식칼로 세 가족이 난자당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런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저간 사정은 이렇다. 여경은 2020년 말 중앙경찰학교 305기로 2422명의 동기와 함께 입교했다.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경찰 드라마 ‘라이브’에 나오는 혹독한 사격·체포술 훈련 등은 생략됐다. 대신 4개월간 이론 위주의 비대면 교육을 받았다. 훈련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현장에 덜컥 배치된 것이다. 피해자 목에서 피가 1m 이상 뿜어져 나오는 사고 현장에서 여경이 혼비백산해 도망간 것은 어찌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주목되는 것은 경찰 신규 임용 건수다. 집권 초부터 검찰개혁을 외친 문재인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2019년과 2020년 경찰 신규 채용 규모를 전년 대비 각각 30%, 10% 늘렸다. 여경은 2018년 대비 배 수준으로 2년 연속 뽑았다. 임용 규모는 왕창 늘렸는데 교육은 부실하니, 현장에서 문제가 터진 것이다. 결국 경찰 개인의 자질 문제도 있지만 섣부른 정치 개입이 부른 참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 정치가 경찰을 어떻게 망쳤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이재명 의혹 뭉개기나 이용구 봐주기 등 경찰 스스로 정치를 하다 망가진 예도 있고, 울산시장 선거 하명수사처럼 정권의 압력에 박자를 맞춰주다 ‘정치 경찰’로 낙인찍힌 경우도 있다.그중 압권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경찰들은 검수완박을 ‘일감 대박’으로 읽는다. 작년 1월 검경 업무 조정으로 경찰 수사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일감은 늘었는데 당장 써먹을 인력이 태부족이니 일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검수완박으로 9월이면 검찰서 4대 중대범죄 업무까지 넘어온다. 경찰 내부에선 수사 부서 발령을 기피하고, 아예 수사권을 반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건당 2만원의 해결 수당 방안을 내놨지만 “그 돈으로 당신들이 처리해보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경찰 자정 노력 지켜봐야
윤석열 정부가 각 분야에서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고위급 인사를 단행했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을 직접 지휘 감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 조직을 쇄신하고, 검수완박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힘을 통제하려는 시도에 다름아닐 것이다.그러나 명심할 게 있다. 권력의 통제와 개입이 강하면 강할수록 해바라기 경찰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권력기관 개혁’을 명분으로 경찰 등 온갖 사정기관을 휘둘러 결국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게 지난 5년이다. 그런 조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통제와 개입보다 자정 노력을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를 잊은 경찰, 그것이 제2, 제3의 ‘도망 여경’ 사건을 막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