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아니면 말고'식 부동산 선거공약

재건축 완화는 국토부도 어려워
"후보자 공약, 주민 기만하는 꼴"

박종필 건설부동산부 기자
“낡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의 표심을 단시간에 쓸어 담기에 이만한 공약이 없죠.”

서울의 한 구의원 선거를 돕고 있는 핵심 참모는 재건축 규제 완화 공약이 남발되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새 아파트를 얻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득표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재건축 규제 완화를 일개 구의원이 추진할 수 있냐고 묻자 “관계기관과 협의해서 하겠다는 것이지 나 혼자의 힘으로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6·1 전국동시지방선거전은 시작부터 끝까지 부동산 공약 일색이었다. 레퍼토리도 비슷하다. 대부분 종상향을 통한 용적률 500% 이상 확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 등이다. 출마한 체급도, 여야도 상관없다. 공약이 가장 남발된 곳은 경기지사 선거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 모두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 용적률 500% 이상 상향, 재건축 안전진단 1, 2차 통합심의 등을 내걸었다. 이 덕분에 1기 신도시 집값만 들썩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일산은 2주 연속 0.08%, 분당은 전주 대비 0.04% 매매 가격이 올랐다.

재건축 등 정비사업 관련 공약은 추진이 가장 어려운 정책이다. 규제 권한이 여러 곳으로 산재돼 있어서다. 대부분 국회에서 법 개정을 해야 하거나, 국토교통부의 시행령을 고치거나, 각 시·도 의회에서 조례 개정을 해야 한다. 국토부 장관을 비롯해 대통령까지 그 누구도 재건축 규제 완화를 장담할 만한 권한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재건축 첫 단계인 안전진단 기준 완화가 대표적이다. 안전진단은 도시정비법 시행령 및 안전진단 기준에 근거한다. 송영길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아예 ‘30년 이상 구축 아파트 안전진단 완전 폐지’를 앞세웠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가 사실상 철회한 공약이다.

국토부조차 2년 전 약속한 ‘주택공급활성화지구’ 정책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에 주택공급활성화지구라는 특별지역을 지정해 재개발 재건축을 장려하고 서울에 7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2020년 5월 내놨다. 정비구역 지정부터 착공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사업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하겠다고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된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국토부도 어려운 재건축 정책에 기초의원 후보자들까지 달려드는 걸 보면서 기만당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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