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칸 수상작' 수식어로 그칠 '브로커'가 아냐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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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칸 남자주연상 수상 '브로커'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12분간 기립박수를 받았던 영화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가 국내에서 첫선을 보였다. 고레에다 감독의 휴머니즘 넘치는 이야기 위에 '칸의 남자'가 된 송강호부터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배두나, 이주영이 '생명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칸의 감동, 천천히 야금야금 느끼고 싶어"
고레에다 "송강호로부터 출발한 이야기"
"베이비박스 비판 어머니에게 향해"
"진정한 책임 어디에 있나 깊이 다루고 싶었죠"
고레에다 감독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심사위원상, '어느 가족'(2018)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바 있어 '브로커'는 칸 영화제 개막 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월드 프리미어를 통해 공개된 후 외신 평점(스크린 데일리) 1.9점을 받으며 반응이 엇갈렸으나 이 영화를 통해 송강호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됐다.31일 열린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어제 칸에서 돌아왔다.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다.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배우들과 함께라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송강호는 "'기생충' 이후로 3년 만에 극장에서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다. 관객, 영화인들도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준비한 작품을 소개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날이 와서 기쁘게 생각한다"고 인사했다.
"칸 남우주연상의 감동, 천천히 야금야금 느끼고 싶어요"
송강호는 칸 남우주연상 수상에 대해 "칸 영화제는 워낙 적은 상을 준다. 21편 중 7편에 상을 수여하는데 확률은 3분의 1로 굉장히 낮다"며 "폐막식 전 12시 가까이 전화를 주는데 그때 가장 긴장이 됐다. 막상 전화를 받게 되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떤 것이라도 한 개의 상이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웃었다.자신의 이름이 호명된 순간에 대해 "복기가 잘 안 되는데 순간 패닉이 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쁨에 앞서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제일 먼저 영국 런던에 있는 봉준호 감독, 한국의 김지운 감독에게서 문자가 왔다. 유튜브로 그 새벽에 보고 있더라. 쭉 많은 분이 축하해 주시고 과찬을 받고 있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감동을 천천히 야금야금 느끼고 싶다"며 기쁨을 드러냈다.
고레에다 감독에게도 송강호의 수상은 특별했다. 그는 "이렇게 진심으로 기쁠 수 있을까 생각할 만큼 기뻤다"고 털어놨다.그는 "제가 연출한 작품에서 배우가 상을 받는 게 이번이 두 번째"라며 "저는 삐딱한 성격이라 제가 상을 받을 때는 '어디가 좋았을까'라며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반면, 배우가 칭찬받게 되면 기쁨을 누린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칸 영화제에서 만난 일본 언론 관계자들로부터 '평소보다 즐거워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엔 제가 뭔가 했다기보다 송강호 배우가 그동안 이뤄냈던 성과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사실 그가 아직 상을 못 받았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한국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봉준호, 이창동, 박찬욱 감독 작품에서 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을 텐데, 제가 맡은 작품에서 상을 받게 되어 송구한 마음도 있고, '브로커' 입장에선 가장 기쁜 상이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고레에다 "생명은 보편적인 주제, 전 세계에 전달될 것"
고레에다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이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영화다. 베이비 박스에 놓인 아기를 몰래 데려온 ‘상현’(송강호)과 ‘동수’(강동원). 하지만 아기를 두고 갔던 엄마 ‘소영’(이지은)이 다시 돌아오고, 의도치 않게 세 사람이 함께 아기의 새로운 부모를 찾아 나서며 이야기가 시작된다.영화는 아기의 새 부모를 찾기 위해 의도치 않게 서로 함께하게 된 이들이 여정을 거치며 어느샌가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그려내 국경과 세대를 불문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고레에다 감독은 '브로커'의 첫 출발은 송강호로부터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3년경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촬영하고 있을 때 취재 과정에서 일본의 입양, 양부모 제도에 대해 조사를 많이 했다. 일본 구마모토현에 아기 우편함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한국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감독은 일본보다 한국에 더 많은 베이비박스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통계적으로 10배 가까운 아기가 베이비박스에 맡겨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생명에 대한 이야기는 보편적인 주제라고 생각한다. 가치 없는 생명이 어디 있겠는가.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에서 이런 것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보편적으로 전 세계에 전달되는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고레에다 감독은 또 "엄격한 비판이 줄곧 어머니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상황을 둘러싸고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진정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영화를 통해 깊이 다루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배우와 호흡을 맞춘 것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함께 일해보고 싶은 배우들이 한국에 많이 있었고, 의기투합해서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으나 영화가 실현된 것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영화의 처음은 송강호가 아이를 안고 자상한 미소를 머금고 말을 거는데, 그러나 팔아버리는 그런 신이 머릿속에서 떠오른 것이다. 선악이 혼재된 존재로서의 송강호. 그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했다.한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는 고레에다 감독으로서는 작품을 쓰고 연출하는 데 장벽이 있었다. 구세주는 송강호였다.
그는 "제가 한국어를 모르기에 배우들이 불안감을 느낄 수 있었을 거다. 촬영 전 손 편지로 마음을 표현했고, 현장에서도 밀도 있게 소통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송강호가 그날 촬영이 끝나면 편집본을 꼼꼼히 봐주시고 대사의 뉘앙스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많은 피드백을 해줬고, 신뢰를 가지고 그에게 의지했다.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아웃까지 죽 의견교환을 했다. 큰 도움을 받아 불안감을 극복하고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이에 송강호는 "아무래도 일본 감독이시기 때문에 한국어의 묘한 뉘앙스나, 단어나 발음, 문장의 디테일에 대해 모르시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 리딩할 때부터 많은 이야기를 해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저도 혹시 결례될 수 있으니 편집본을 보고 이야기해 드려도 되느냐고 여쭤봤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감독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편집의 최종 결정권은 백 퍼센트 감독이 하시지만, 약간의 뉘앙스 같은 부분은 조언을 해드렸다. 큰 건 아닌데, 크게 말씀해주셔서 난감하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송강호부터 이지은까지…더하거나 뺄 것 없는 앙상블
송강호는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차가운 현실을 보여주고,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끝내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브로커'는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그는 "'브로커' 첫 장면을 보고 오히려 따뜻했다. 잔혹하고 차갑게 아기를 버리는데, 아기가 화면에 잡혔을 때 그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라며 "따뜻하고 유머 있게 풀어내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냉정해지고 오히려 차가운 현실을 그대로 그림으로 관객에게 따뜻함이 어떤 것인가, 우리는 따뜻함을 가장해 살고 있지 않나를 질문한다"고 해석했다.
이주영이 연기한 이 형사의 마지막 대사 '브로커는 우리가 아닐까'를 언급하며 "이런 지점이 고레에다 감독 작품의 놀라운 깊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명을 다룬 이야기를 가슴으로 깊이 있게 받아들이도록 작품을 설계하고 연출하셨다. 일본, 한국을 떠나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강동원은 극 중 버려지는 것에 대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진 브로커 동수로 분해 절제된 감정으로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그는 촬영 전 보육원 관계자 등을 만나 깊은 대화를 통해 이들의 기억을 동수에게 불러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 친구들은 보육원에 차가 오면 혹시 자기를 데리러 온 게 아닌가 기대한다고 하더라. 보육원 출신 신부님과 대화하다 무르익었을 때 '어머니가 안 보고 싶으시냐'고 물었는데 지금은 그런 감정은 남아있지 않은데, 돌아가시기 전에 꼭 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 마음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지은은 사연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미혼모 소영 역을 연기해 상업영화 데뷔작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층적인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그는 "상업영화 첫 데뷔작인데 멋진 선배, 배우들과 함께 작업해 좋은 시간이었다. 어제 입국했을 때부터 많은 분이 환대해주셔서 얼떨떨하고 설레는 상태"라며 "많은 분이 좋은 시선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지은은 극 중 차진 욕설 연기를 해 송강호, 강동원을 놀라게 했다. 그는 "감독님이 일본 분이셔서 한국 욕과는 조금 다르더라. 제가 느끼기엔 일본식 욕이라고 느껴져서 한국식으로 해도 되겠냐고 여쭤봤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하라고 하셔서 고민을 많이 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욕 위주로 대사를 꾸려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어디 활동하면서 직접적으로 욕을 하는 연기는 처음이어서 사실 집에서 연습도 많이 하고, 촬영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다행히 상대 배우들도 화가 나게 연기를 잘 맞춰주셔서 예상했던 것보다 짧은 테이크로 마무리했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송강호는 "이지은 씨는 '나의 아저씨'든 많은 드라마에서 훌륭한 연기를 늘 봐왔다. 뛰어난 배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살벌하게 잘할 줄은 몰랐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제가 좀 더 좋아하는 장면은 욕설 다음이다. 아기를 팔지 못한 후 봉고차에 탔는데 상현과 동수는 어쩔 줄 몰라 하는데 소영이 앞자리를 팍 찬다. 그건 이지은의 즉흥 연기였다. 저희 둘은 정말 놀랐다. 리액션이 저절로 나왔다. 제가 너무 좋아하는 신이었다"고 덧붙였다.
고레에다 스타일 벗어난 직설적 대사 '태어나줘서 고마워'
고레에다 감독은 부산, 영덕, 울진, 월미도 등을 오가는 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한국의 리얼한 모습을 담아냈다. 그는 "즐거운 추억만 남아 있다. 이번 작품에는 CG나 합성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으나 저는 정말 즐거웠다"고 했다. 이어 "KTX 열차가 터널에 들어가는 찰나 송강호, 이지은 대화하는 장면을 찍는데 타이밍 맞추는 게 되게 어려웠다"고 떠올렸다.'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소영의 대사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해석은 보는 분들의 몫"이라고 말하면서도 "극 중 동수는 어머니의 목소리로 듣고, 상현은 매우 복잡한 심경으로 이 목소리를 받아들였을 거다. 상현은 범죄자이면서도 그 말을 듣게 되면서 아기의 생명을 지키려 행동에 나서는데 그 선택지가 범죄였다는 부분은 또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보는 분들의 감상, 생각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감독은 "취재하는 동안 보육시설 출신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은 '태어나길 잘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며 살아가고 있더라. 자신의 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안고 어른이 된 사람들의 감정을 접했을 때 그 책임이 어머니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어른과 사회의 책임이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다. 평소 직설적인 메시지를 잘 쓰지 않는 편인데 그들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소영의 대사로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고레에다 감독은 "처음 소영이가 베이비박스 앞에 아기를 놓고 간다. 다음에 수진(배두나)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이를 안고 하는 대사가 있다. 그 생각이 이 영화에서 다뤄지는 2시간 동안 어떻게 변해가는가가 이 이야기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의 구조는 3가지 박스 형태"라며 "아기가 들어가는 박스, 아기를 팔려고 브로커들이 타고 있는 차량과 형사들이 타고 있는 차량, 선악의 경계선이 허물어진 사회를 큰 박스라고 생각했다"며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현처럼 주변에서 지켜보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작은 박스가 점차 커지는, 큰 상자(사회) 속에서 아이가 축복받는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었다"고 귀띔했다.'브로커'는 오는 6월 8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