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경력 없어도 '경단녀'로 본다는 여가부

"과도한 개념 확장" 논란 불거져
누구나 납득할 만한 기준 세워야

이광식 사회부 기자
이달 8일부터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촉진법, 이른바 ‘경단녀법’을 전면 개정한 ‘여성의 경제활동 촉진과 경력단절 예방법(여성경제활동법)’이 시행된다. 2008년 법 제정 후 14년 만에 이뤄지는 손질이다.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사후 지원에 초점을 맞춘 기존 법의 한계를 넘어 경력단절 자체를 사전 예방하기 위한 게 이번 법 개정의 이유다.

개정법에서 주목받는 변화는 경력단절 여성에 대한 정의다. 기존 경단녀법상 경력단절 사유로 나열돼 있던 혼인·임신·출산·육아와 가족 구성원의 돌봄에 더해 ‘근로조건’이 추가됐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성별 임금 격차 등 노동시장 구조도 경력단절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그럴듯한 설명이지만, 근로조건을 경단녀의 경력단절 사유로 볼지에 대해선 벌써부터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근로조건 중 임금 수준은 성별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 학력, 노동조합의 결속력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단순 저임금에 따른 이직은 개인적으로는 속상한 일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경제 현상이다. 이들에게까지 경단녀 지원이란 명목으로 혜택이 주어진다면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개정법을 준비한 여가부조차 근로조건이 왜 경력단절 사유에 추가됐는지 명쾌한 답변을 못 내놓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성의 임신·출산·육아 등이 복합적으로 성별과 임금 격차를 발생시킨다”고만 설명했다. 그렇다면 기존 규정으로도 경력단절 지원이 가능한 것 아니냐는 추가 질문에 “국회에서 논의된 사항이니까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여성경제활동법은 또 ‘경제활동을 한 적이 없는 여성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도 경력단절 여성으로 정의했다. 단절될 경력이 없는데 경력단절 여성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지적이다. 법안 목적이 ‘경력단절 예방’이라 해도 상식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임신·출산·육아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일들 때문에 멀쩡히 다니던 회사에서 사라진 ‘진짜’ 경력단절 여성들은 이 규정을 어떻게 느낄까.

여가부가 그동안 공개한 경단녀 재취업 지원 성공 사례는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는 게 대다수다. 부장 진급 제안을 받은 뒤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자 해고 통보까지 받은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충격과 스트레스로 유산 위기까지 몰렸다. 이런 일로 인한 경력단절을 예방하자는 것이 새 법안에 담긴 여가부의 진심일 것이라 짐작은 한다. 다만 ‘좋은 말 대잔치’보단 평범하지만 명료한 단어가 진의를 전달한다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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