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도-중국, 국제유가 교란시키는 기름진 삼각관계 [정인설의 워싱턴나우]

인도 중국, '판매금지' 러시아산 둔갑시켜 전 세계에 판매
미국 유가 사상 최고치...JP모간 CEO "유가 50% 더 오른다"
당분간 인플레이션은 국제유가가 주도할 전망입니다. 물가상승은 대부분 기름으로 시작해 기름으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기'요, 오매불망이 아니라 오일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오일불망' 입니다.

계속해서 기름값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1일부터 상하이 봉쇄령을 풀었습니다. 공급망이나 물류 문제로 보자면 호재이지만 국제 유가 상승을 부추길 엄청난 악재입니다. 중국인이 다시 움직이고 중국 공장이 재가동되는 만큼 오일 수요는 폭증할 공산이 큽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원유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납니다. 국제유가 강세 요인입니다.

결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두 손을 들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단기간 내 기름값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습니다.

같은 날 제이미 다이먼 JP모간 최고경영자(CEO)는 "유가는 틀림없이 더 오를 것"이라며 "배럴당 150∼17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자칫 '오일쇼크'가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중국발 '오일쇼크' 오나



기름값이 오르는 건 수급 불일치 때문입니다. 여름을 앞두고 세계적으로 이동 수요가 늘고 있습니다. 중국이 봉쇄령을 해제했고 일본도 빗장을 풀어 오는 10일부터 해외 여행객을 받겠다고 합니다.

반면 공급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러시아산 원유가 형식상 퇴출됐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대러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그렇다면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처를 확보하거나 수요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등 산유국들은 증산을 거부하고 있고 이란과 베네수엘라 같은 대안도 여러 이유로 국제 원유 시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유한 전략 비축유를 방출해봤지만 조족지혈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에너지 기업들을 상대로 마진을 낮추라고 압박했지만 별무효과였습니다.

정제시설 부족이 기름난의 근본 원인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이날도 갤런당 4.67달러로 또다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렇다고 국제유가는 사상 최고치를 갈아 치우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등락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왜 미국 휘발유 가격만 급등하고 있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원유 정제 시설 부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습니다. 국제 원유 공급이 줄어든 것도 있지만 원유를 확보해봐야 그걸 가솔린이나 디젤 같은 석유제품으로 바꿔주는 정제 시설이 태부족이라는 겁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내 정유 시설은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러합니다.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기간에 석유 수요가 줄자 정유 회사들은 정유시설 투자를 줄였습니다. JP모간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중 전 세계에서 하루 약 300만 배럴 정도의 정유시설이 폐쇄됐습니다.

실제 2018년 미국 내 휘발유 수요는 하루 평균 933만 배럴로 역대 최고치였습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수요량이 800만배럴로 떨어져 정유시설을 그 수준에 맞췄는데 지난해부터 수요가 급증했지만 정유시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재기'에 '밀거래'도 빈번

러시아 제재로 글로벌 원유 공급도 줄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러시아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100만 배럴이었지만 300만 배럴 이상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도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미국은 거의 원유를 자급자족하고 있어 러시아산 원유에 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지난달말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수입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그 시행 시기는 6개월 후입니다.
결국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상당수의 국가들과 기관투자자들은 원유 선물을 미리 구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유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전망이 지배적이어서입니다. 다이먼 CEO는 110달러 선인 국제유가가 150달러 이상 오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국가들은 자국 내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일부 원자재와 식량 수출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자원과 식량의 무기화입니다.


원유를 제값 주고 사는 이들만 바보?



러시아 제재의 빈틈도 여전합니다. 러시아산 원유가 원산지를 바꿔 여전히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오일 세탁'입니다.

인도가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러시아산 석유 제품은 인도 정유회사들을 통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대서양 일대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제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환적을 거칩니다.
러시아산 원유를 실은 인도 유조선이 미국 뉴욕에 입항하는 경우도 있다고 WSJ는 전하고 있습니다. 전쟁 전에 비해 인도 정제유 제품이 유럽과 미국으로 나간 수출액은 각각 33%, 43% 증가했습니다. 인도 뿐 아니라 중국도 러시아산 원유를 구입한 뒤 원산지를 지우고 다른 나라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헝가리도 앞으로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사용할 예정입니다. EU가 러시아산 원유의 해상 수입만 금지했을 뿐 헝가리처럼 송유관으로 들여오는 것은 막지 않았습니다.

대러시아 제재가 곳곳에 구멍이 있어 러시아가 받는 타격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외교적 정공법이 최우선



꼬여 있는 원유 시장을 정상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정학적 요인이 너무 크다"고 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고 뒷짐 지고만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중간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인플레이션이 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 강도를 결정할 변수는 국제유가여서 원유시장을 가만히 놔둘 수만은 없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산유국을 설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뒤틀린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란과 핵협상도 타결하면 국제 원유 시장에 호재가 될 전망입니다. 이란과 사우디와의 갈등 때문에 둘 다 취할 수 없다면 하나라도 얻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가능성이 낮다고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충된다는 이유 등으로 시도라도 해보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 게 뻔합니다. 또 러시아와 인도, 중국의 오일 커넥션도 강화시켜줄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백악관도 이 점을 의식하고 있겠죠.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워싱턴포스트(WP)의 보도가 있으니 향후 추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