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테크에서 유니콘이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 언번들링 [긱스]

추가영의 HR테크 트렌드 리포트
모든 것을 잘할 필요도,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도 없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맞물려 '언번들링'이 새로운 산업의 화두로 등장했습니다. 추가영 레몬베이스 콘텐츠 리드가 한경 긱스(Geeks)에 언번들링 시대 스타트업의 도전과 기회를 분석하는 '명품 글'을 보내왔습니다.

필자는 언번들링이 HR테크를 급성장시키는 동력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가 말하는 'HR테크에서 유니콘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 무엇인지 살펴볼까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십수 년 전만 해도 타이틀곡을 듣기 위해 앨범 전체를 사야 했다. 듣고 싶은 건 한두곡인데 10여곡의 수록곡을 함께 구매했다. 안보는 채널이 많은데도 이를 통째로 제공하는 케이블TV에 가입했다. 두 개 이상의 다른 제품을 묶은 일종의 '번들'을 구매하는 것이 예전에는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최근 해체되고 있다. 디지털 싱글이 나오면서 듣고 싶은 노래의 음원만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특정 콘텐츠를 내세운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케이블TV의 번들(묶음)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기존에 하나의 상품이었던 것을 쪼개는 방식을 ‘언번들링(unbundling)’이라고 부른다.

언번들링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기존에 하나의 번들로 제공하던 서비스가 충족하지 못한 소비자의 니즈를 채우면서 새로운 시장을 연다.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사 안데르센호로위츠(a16z)는 언번들링 과정에서 새롭게 열린 시장에 적시에 진출한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 변환(digital transformation)이 빨라지면서 인적자원(HR)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도 채용, 성과관리, 급여 등으로 언번들링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이 시장에 뛰어든 스타트업의 성장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은행 언번들링 기회 잡은 핀테크 스타트업

언번들링은 주로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을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버티컬(수직적) 플랫폼으로 쪼개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한 분야에 특화되거나 특정 소비자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틈새시장을 발견한다.

은행 및 금융기관의 다양한 기능을 해체하면서 등장한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대표적인 언번들링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10년대 모바일 기기가 널리 보급되면서 은행이 제공하던 여·수신, 송금, 결제, 투자, 자산관리 등의 상품이 모바일 서비스로 각각 쪼개졌다.

금융 시장에 새로운 기술 기업들이 진입하여 핀테크(금융+기술) 시장을 열었다. 신규 진입자들은 까다로운 대출 심사, 비싼 수수료 등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사용 편의성을 내세워 상대적으로 모바일 기기 사용에 능한 밀레니얼 세대를 빠르게 공약했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졌고, 금융 거래에서 인증 등 여러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편을 줄였다. 모바일에서 탭만 몇 번 하면 지급, 송금, 투자 등이 이루어지게 됐다.이 당시 급격히 성장한 스타트업이 스퀘어·스트라이프(모바일결제), 캐비지(중소기업 대출), 렌딩클럽(P2P대출), 로빈후드(주식투자) 등이다. 한국에선 2010년대 중반 토스, 렌딧 등의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했다.

언번들링=혁신의 기회

언번들링을 통해 기존의 '번들'보다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거나 경쟁자가 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미국의 중고나라’라고 불리는 크레이그스리스트(Craigslist)다. 중고거래하는 사이트에서 프리랜서 구인·구직, 대안 숙박 예약, 데이트 상대 탐색 등이 이뤄졌고, 각각의 수요와 공급을 더 잘 연결하는 새로운 서비스로 언번들링이 일어났다. 그 결과로 나타난 서비스가 업워크, 에어비앤비, 틴더 등이다. 이렇게 새로운 이용자 경험(UX)과 비즈니스모델(BM)을 찾은 스타트업은 기존 플랫폼이 장악했던 시장보다 더 큰 시장을 차지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에어비앤비의 지난해 연 매출은 60억달러에 육박해 크레이그스리스트의 6배에 달한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도 언번들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정 카테고리와 오디언스를 타깃으로 하는 동영상 플랫폼들이 언번들링의 주체다. 이중 가장 성공한 플랫폼으로 게임 방송에 특화한 트위치, 짧은 모바일 영상을 공유하는 틱톡 등을 꼽을 수 있다. 트위치는 2014년 아마존에 10억달러에 인수되었고,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의 기업가치는 4000억달러까지 치솟았다.언번들링은 분야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다. 자율주행차를 예로 들어보자. 차체를 만드는 기업도 있지만 라이다, 레이더, 컴퓨터 비전 센싱, 고화질(HD) 지도 등 각 분야에서 모빌아이와 같은 유니콘이 탄생했다. 호텔 역시 마찬가지다. 호텔 예약, 컨시어지, 이벤트·미팅 등 각각의 기능을 고도화한 서비스들이 나왔다.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링크드인도 마찬가지다. 직업이 분화되고, 계약직 혹은 임시직을 고용하는 ‘긱 이코노미(임시직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구인·구직 시장 역시 쪼개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각각의 니즈에 특화된 버티컬 플랫폼인 요리사 채용 앱 페어드(Paired), 음식점 및 숙박업계 인력 플랫폼 인스타워크(Instawork) 등이 나타나고 있다.

팬데믹으로 HR 언번들링 가속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산업 곳곳에서 디지털화를 앞당겼다. 일하는 방식 등 HR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격 근무 및 하이브리드 근무(사무실 근무와 재택근무의 혼합)가 보편화하면서 서로 얼굴을 보면서 일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많은 기업에 과제로 주어졌다. 기업들은 클라우드 환경에서 화상회의에 접속하고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활용을 늘렸다. 디지털화에 필요한 인력과 스킬셋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더 빠른 채용과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거나 더 복잡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숙련도를 높이는 ‘업스킬링’, 다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리스킬링’ 등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다.

인적자원관리(HRM)와 인적자원개발(HRD)의 디지털화가 빨라지면서 인적자본관리(HCM) 소프트웨어 시장도 커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5년 HCM 앱(응용프로그램) 시장은 379억달러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이 시장이 커지는 것도 언번들링이 활발하게 이뤄진 결과로 분석된다. HR의 일부 분야에 특화된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통합 HCM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SAP, 워크데이, ADP와의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는데, 이들 기업이 제공하는 HCM 소프트웨어 역시 전사적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를 언번들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HR 스타트업 급성장

언번들링을 거쳐 버티컬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 HR 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늘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HR 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92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0년 대비 130% 증가한 수치다.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딜, 리모트는 모두 2019년 설립되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둘 다 원격근무가 가능한 인력을 채용하고 급여를 관리하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밤비(Bambee)는 타깃을 중소기업으로 좁혀 중소기업과 HR 전문가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하이밥(HiBob)은 HR 제도를 운용하는 인사담당자가 아니라 구성원에 초점을 맞춰 UX를 단순화한 피플매니지먼트 플랫폼을 선보여 ‘HR의 인스타그램’으로 불리고 있다.

구성원의 성과, 웰니스(신체와 정신 건강) 등을 원격으로 관리할 필요가 더욱 부각되면서 이 분야에 집중하는 스타트업도 많아지고 있다. 구성원의 성과와 몰입 관리를 돕는 래티스(Lattice), 얼라이(Ally), 컬처앰프(CultureAmp) 등의 스타트업이 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이가운데 얼라이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에 7600만달러에 인수되기도 했다. 구성원들의 건강 상태를 원격으로 관리하는 툴을 제공하는 웰독(WellDoc)의 누적 투자액은 6500만달러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목표관리부터 다면평가까지 손쉽게 진행하도록 돕는 성과관리 SaaS 레몬베이스가 대규모 투자를 유치했다.채용플랫폼 경쟁도 치열하다. 원티드랩, 리멤버 등이 ‘한국의 링크드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수시채용이 늘면서 지원자추적시스템(ATS)을 제공하는 두들린(그리팅 운영사)도 주목받고 있다.
추가영 | 레몬베이스 콘텐츠 리드(Content & Communications Lead)
일하는 사람들이 성과를 내고 성장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스타트업 레몬베이스에서 쌓은 지식을 콘텐츠에 담아 널리 알리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레몬베이스에 합류하기 전엔 한국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며 창업 정책, 혁신 기업을 일군 기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으며 넷플릭스의 ‘자유와 책임의 문화’를 담은 『파워풀』을 번역했다. 이후 혁신을 이끄는 사람과 문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