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기름값에 전전긍긍…박정희도 떨게 만든 '미친 물가' [대통령 연설 읽기]

[대통령 연설 읽기 ①] 60여년 물가와의 사투

공권력으로 가격 통제한 박정희·전두환
노태우 땐 부동산 공급 대폭 늘려 '방어'
이명박 'MB지수'로 관리 나섰지만 실패
박근혜 정부선 되레 '저물가의 늪' 빠져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니 6만원, 라면에 김밥을 먹어도 1만원.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한숨 섞인 푸념이 여기저기 터져나온다. 윤석열 대통령도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물가 상승의 원인을 파악하고 억제 대책을 고민해 달라”고 주문했을 정도로 인플레이션은 한국 경제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물가는 너무 낮아도 너무 높아도 문제이기 때문에 역대 모든 정부에서 최우선 과제로 다뤄졌다. 과거 정부의 ‘물가와의 사투’는 어땠는지 대통령의 연설문을 통해 되짚어본다.
전문가들은 올해 전체 상승률이 전년 대비 4%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물가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스1
박정희 정권의 고도성장은 만성적 물가 폭등을 초래했다. 거의 매년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박 전 대통령은 1966년 12월 취임 3주년 기자회견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저축을 많이 해서 물가가 뛰지 않도록 인플레를 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며 고심을 토로했다.1차 오일쇼크 직후 물가가 25%까지 치솟자 1974년 1월 ‘국민생활 안정을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선포’ 특별담화를 통해 쌀·밀가루와 같은 생필품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담화문에서 “해외 인플레의 압력을 받는 물자의 가격은 부득이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극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며 원자재 61개 품목의 가격을 조정할 때는 반드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그럼에도 물가는 잡히지 않았고, 결국 임기 마지막 해인 1979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에게 고통을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거듭 드린다”고 사과했다.

2차 오일쇼크 직후인 1979년에도 20%가 넘는 살인적인 고물가 상황이 이어졌다. 악성 인플레이션을 넘겨 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다.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11월 ‘근로자 격려를 위한 리셉션’에서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 올라도 생활은 여전하므로 무엇보다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에 노력하겠다”며 “근검절약하는 기풍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기업의 원가 절감, 품질관리 없이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근로자 임금 동결을 강제한 것이다. 또 중화학공업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한편, 1983년에는 물가 안정을 위해 세출예산을 동결하는 ‘강수’를 뒀다. 그 결과 1980년 28%를 웃돌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4%까지 내려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공사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는 물가가 연평균 7% 상승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억눌렸던 임금 인상 요구가 확산한 영향이 컸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4월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근로자들의 목소리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집권 5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연평균 13.8%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는 주요 요인으로 부동산을 지목했는데, 1989년 6월 라디오 주례방송에서 수도권 1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동산 안정화에 나섰다. 이날 연설에선 “신혼 때부터 30대 중반까지 셋집살이를 했기 때문에 집 없는 설움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김영삼 정부에선 물가상승률이 4~5%대를 유지했다. 하지만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여파로 물가 불안이 우려되자 10월 한국경제신문 창간 기념 특별회견을 통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통화 공급을 늘리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내년 공공요금 인상을 앞두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물가 상승 압력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물가 안정 기조를 확실히 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취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2월 취임 연설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물가를 잡아야 한다. 물가 안정 없이는 어떠한 경제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3.5%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카드대란의 후유증과 부동산 가격 폭등 속에서도 물가상승률은 3%대의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닥뜨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독한 ‘물가와의 전쟁’을 치렀다. 취임 첫해 소비자물가가 4%대를 훌쩍 넘자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MB 물가지수’까지 만들어 집중관리에 들어갔다. 이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특별 기자회견에서 “원자재와 곡물 가격이 엄청나게 오르고 국제유가는 작년보다 두 배나 뛰었다”며 “물가를 안정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3년 뒤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물가는 또다시 요동쳤다. 2011년 7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 전 대통령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물가와 전쟁을 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럼에도 백약이 무효했고, 다음해인 2012년 1월 라디오 연설에서 “국민 여러분의 기대만큼 정부의 물가대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2010년 구리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 가게를 찾아 상인을 격려한 후 배추를 구매하고 있다. 사진=한경DB
박근혜 정부에선 너무 낮은 물가가 고민이었다. 5년간 평균 1%대를 유지했는데 식료품 등 생활물가는 전년보다 떨어진 해도 있었다. 반대로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과도한 유동성이 물가 압력을 가중시키면서 인플레 방어에 안간힘을 썼다. 문 전 대통령은 공급망 관리로 물가 억제에 나섰는데 올해 초 참모회의에서 “희토류 등 핵심광물의 비축과 예산 등을 점검하고 공급망 문제에 대응할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또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등 가용 수단을 총동원했지만 퇴임 직전인 4월 소비자물가는 4.8% 상승해 13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