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아침] 나폴레옹이 흡족해 한 그림,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를 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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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는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뺨치는 기회주의자였다. 그의 처세술은 웬만한 정치인보다 더 현란했다. 30대 초반 루이 16세의 궁정화가가 돼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재빨리 혁명 정부의 편으로 돌아선다. 혁명 과정을 그린 ‘테니스 코트의 선서’(1790년), 혁명 지도자 장 폴 마라를 추모하는 ‘마라의 죽음’(1793년) 등 혁명을 미화하는 그림을 여럿 그린 것.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정권을 잡자 그는 또 한 번 나폴레옹의 전속 화가로서 변신에 성공한다. 다비드의 대표작인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사진·1801년)은 이때 그린 작품이다. 1800년 나폴레옹이 북부 이탈리아를 침공할 때 알프스산맥을 넘었던 사건을 기념해 그렸다.다비드의 ‘미화 실력’은 굉장했다. 실제 나폴레옹은 키가 작고 뚱뚱했다.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산맥을 넘은 것도 아니다. 안전을 위해 병사들이 먼저 지나간 뒤 지리에 밝은 현지 농부가 끄는 노새를 타고 몰래 산을 넘었다. 하지만 그림 속 조각 같은 이목구비의 나폴레옹은 위엄이 넘치고, 앞발을 든 백마에 탄 채 병사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림 왼쪽 아래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은 화룡점정이다. 그 밑에는 알프스를 넘었던 카르타고 장군 한니발과 신성로마제국의 샤를마뉴 대제 등 전설적인 영웅들의 이름이 흐릿하게 적혀 있다. 나폴레옹이 이들을 뛰어넘는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란 뜻이다. 나폴레옹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다비드는 이후 ‘어용 화가’이자 프랑스 예술계의 왕으로 군림하다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브뤼셀로 망명한다. 망명지에서도 다비드는 부자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풍족한 여생을 보냈다. 지금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 근대를 대표하는 명화로 추앙받는다. ‘너무 잘 그렸기 때문’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