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던 옷이면 어때, 싸고 좋은데"…리커머스 시장 몰리는 2030

인플레에 인기 높아진 중고 의류

패션회사 옷값 인상 잇따르고
글로벌 친환경 소비도 확산
젊은 층, 중고 의류로 눈 돌려

중고나라 女의류 판매 2배 뛰고
신생 플랫폼 콜렉티브·리클 인기
"세계 중고의류 시장 3년 뒤 100兆"

인플레이션발(發) 옷값 상승 등의 요인으로 중고 의류를 거래하는 리커머스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한 소비자가 국내 중고 거래 플랫폼 콜렉티브와 리클을 살펴보고 있다. 허문찬 기자

“구입한 뒤 한 번 입은 반바지 1만2000원에 팝니다.”(중고 의류 플랫폼 콜렉티브 입점 셀러)

중고 의류를 사고파는 ‘리(re)커머스’가 20~30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패션 회사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가격을 잇달아 올리자 부담을 느낀 젊은 소비자들이 저렴한 중고 의류 플랫폼으로 시선을 돌리는 추세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환경 오염과 자원 낭비를 지양하는 친환경 소비 트렌드가 확산한 것도 중고 의류 인기 배경으로 꼽힌다.

중고 패션 플랫폼 잇달아

5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최근 인터넷과 모바일에는 중고 의류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패션 플랫폼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중고 상품을 거래하는 플랫폼이라면 당근마켓, 중고나라, 번개장터 세 곳이 전부였다. 헌 옷은 여기에서 거래되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최근 중고 패션 상품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콜렉티브, 리클 등이 등장했다. 헌 옷 거래로 유명한 서울 동묘 구제시장의 플랫폼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들은 아직 규모는 작지만 20~30대 여성을 끌어모으며 점차 세력을 키워가고 있다.

패션 리커머스들은 중고 의류를 깨끗이 세탁해 새 옷처럼 온라인에서 판매한다는 점이 오프라인 구제시장과 다르다. 리클은 헌 옷을 비대면으로 수거한 뒤 그 보상으로 ㎏당 100~400원을 준다.

수거한 옷은 동남아시아 시장에 넘기거나 국내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한다. 한국 중고 의류가 태국 등 동남아 지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을 노렸다. 중고 패션 상품을 소비자끼리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플랫폼 콜렉티브는 지난달 네이버 크림으로부터 55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기존 플랫폼에서도 패션 상품 인기

기존 중고 상품 플랫폼에서도 패션 상품 거래가 늘고 있다. 중고나라에 따르면 여성 의류 등록 비중이 2020년 22%에서 올해는 23%포인트 불어난 45%로 집계됐다.

여성복 브랜드 ‘럭키슈에뜨’와 아동복 ‘리미떼두두’ 순으로 거래가 많다. 중고나라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용자들이 고가 중고 제품에 관심이 많았으나 올해부터는 중저가 브랜드 검색률이 높다”며 “중고 의류시장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번개장터에서도 여성 의류 카테고리가 디지털·가전 카테고리를 앞질러 1위에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인터넷 중고 의류 거래가 보편화했다. 미국 중고 의류 스타트업 스레드업은 지난해 매출이 3000억원에 달했다. 최근 수년간 매년 20%씩 증가해 글로벌 패션업계는 물론 벤처캐피털(VC) 사이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스레드업은 나이키에서부터 구찌 같은 명품에 이르기까지 3만5000여 개의 중고 패션 브랜드를 판매한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전 세계 중고 의류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억달러(약 50조원)에서 2025년 770억달러(약 95조원)로 두 배 가까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친환경 트렌드도 영향

중고 패션시장 활성화의 토대는 ‘과시 소비’ 성향이 강했던 국내 소비자들이 2020년부터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나만의 가치’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갖춰졌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여파로 올해 봄 시즌 의류 가격이 일제히 10%가량 인상된 게 직격탄을 날렸다. 옷값에 부담을 느낀 소비자들이 중고 의류 구매를 늘리는 ‘짠돌이 소비’로 대응하는 것이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불면서 패션 기업들이 소비자의 중고 의류 구매를 견인하는 측면도 있다. 스위스 UBS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매년 만들어지는 옷은 1000억 장에 달하고, 이 중 500억 장은 구입 후 1년 이내에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글로벌 패션업계에선 “(유니클로, 자라 같은) 패스트패션은 10년 안에 없어져야 한다”(로버트 겐츠 잘란도 창업자)는 발언이 나올 정도다.

국내에서 버려지는 의류 폐기물이 연 8만t에 달하는 만큼 국내 기업들도 이런 트렌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코오롱FnC는 이달 ‘코오롱스포츠’를 비롯한 핵심 브랜드의 중고 옷을 매입해 판매하는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다. 코오롱FnC 관계자는 “남이 입었던 옷은 찝찝해 구매가 꺼려진다던 소비자들의 인식이 과거와 크게 바뀌었다”며 “중고 의류 구매를 친환경 활동으로 생각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