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치려다 3000만원 사기당한 엄마…이 시장 '빈틈' 있다고 생각했죠" [긱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대한 결정을 앞두거나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 우리는 ‘점집’의 문을 두드린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정답에 조금이나마 가까운 ‘해답’(解答) 이라도 찾기 위해서다.

인간의 ‘점치기’ 본능을 비즈니스화 하겠다는 용감한 청년들이 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VC) 알토스벤처스에게 투자받으며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온・오프라인연계(O2O) 점술 플랫폼 ‘천명’의 유현재・전재현 공동대표(사진)가 주인공이다.
지난 4월 천명앤컴퍼니의 유현재(왼쪽)・전재현 공동대표가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년 4월 만들어진 천명앤컴퍼니는 O2O(온・오프라인연계) 점술 플랫폼 '천명'을 운영한다. 김종우 기자
지난달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이들은 “점술계의 유니콘, 점술계의 딜리버리 히어로가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94년생 동갑내기인 유현재·전재현 대표는 고려대 프로그래밍 학회 ‘멋쟁이 사자처럼’에서 만났다. 각각 중어중문과, 경영학과를 전공한 두 사람은 한 차례 창업을 함께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업계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해 증권사 리포트가 없는 분야를 뒤졌고 그중 점술에서 사업적 가능성을 봤다.

"점술보다 점술 시장을 믿었죠"

개인적 관심사로 창업하게 된 건 아니었다. “점을 믿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 대표는 “무신론자에 가까운 불가지론자”라고 답했다.이들이 믿은 건 '점술 시장의 유구한 역사'였다. 두 대표는 “점술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고 애니미즘, 토테미즘 신앙이 있을 때부터 지속된 시장”이라며 “동시에 피해와 불만족이 분명히 존재하는 시장이기도 하다"고 했다.

2020년 창업 당시 데이터가 전무했던 점술은 시장 규모는 고사하고 상호 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은 극도의 음지 산업이었다. 소비자 피해가 있어도 마땅한 구제기관도 없었다.

유 대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제가 고3 때 어머니가 저를 서울대에 보내고 싶어 하셔서 3000만원을 들여 굿을 하려 했지만, 무속인이 돈만 받고 연락 두절됐다"며 “그때부터 이 시장에 피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본 경험에서 오히려 기회를 발견했고, 점술 창업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며칠 전 저도 집 근처에서 점을 봤어요. 투자를 받고 나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한 거예요. 점술인이 올해 7월 대운이 있으니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한대요. 냉장고 위를 깨끗이 하라길래 걸레질도 자주 하고 있고요. (웃음) 비행기가 휘청하면 기도하고 마음이 힘들면 심리상담을 받잖아요. 점술은 이와 비슷하면서도 달라요. 위로와 공감을 해주면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죠.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희망과 기회로 여길 수 있도록요. " (전재현 대표)

편의점만큼 많다...1조원 점술 시장

천명은 시장 규모부터 직접 조사하며 업계의 표준을 만들어갔다. 천명은 지난 2년간 사업을 토대로 국내 점술 시장 규모를 1조4000억원 규모로 추정했다. 이중 전화나 영상통화, 채팅 등으로 이뤄지는 비대면 점술 상담 시장의 규모가 약 2000억원이다. 시장의 대부분 직거래로 운영되는 셈이다.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위해 앱 이용자 2000명을 대상으로 일일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대면과 비대면 방식으로 신점, 사주, 타로 상담을 몇 명이 이용해봤는지, 연평균 이용 횟수는 얼마인지, 평균 단가는 얼마인지 조사했다. 점술 상담을 주로 이용할 만한 20~69세의 인구를 곱해 시장 규모를 추산했다.공급자(점술인)가 4만1000명이라는 집계도 비슷한 방식으로 계산했다. 두 대표는 "천명에 지원한 점술인 중에서 포털 사이트 지도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비율이 22%가량 됐다"며 "포털사이트 지도에 등록된 점술인 수가 9000명가량인 점을 고려해 역산하면 4만 명이 넘는 숫자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점술인 1명이 점집 1개를 운영한다고 가정하면, 점집 개수가 편의점 수와 맞먹을 정도로 많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발에 치이는' 수준으로 점집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회사는 2026년까지 1조원 남짓의 대면 시장의 수요를 모두 끌어오는 게 목표다. 소비자들이 모두 천명의 플랫폼을 거쳐 예약과 상담을 하도록 이끌 것이라고 설명한다. 두 대표는 "요식업계의 미슐랭처럼 '천명'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파편화된 점술 시장을 통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점술과 혁신, 같이가겠다"

“역삼동 OOO. 큰 손 개인 사업가들이 자주 찾음. 지금 예약하면 2~3달 대기. 5만원. 010-XXXX-XXXX”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식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통해 점집을 찾는다. 혹여나 '신빨'이 떨어질까 우려해 점술과 관련한 얘기들을 양지로 끌어오기도 쉽지 않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에서 날고 긴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는 여의도 OOO, 사업가들이 많이 찾는 역삼동 XXX식으로 '찌라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 서비스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였다. 천명은 일정 수준의 퀄리티 보장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자체 검증단을 꾸렸다. 선생님이 입점 신청을 하게 되면 무작위 소비자 검증단 3명을 보내고 이 3명 모두 만족시켰을 때 천명에 합류하게 된다. 올해 상반기부터는 검증단 숫자를 5명으로 늘리고 이들 중 4명을 만족시켜야 입점이 가능해진다.
천명은 음성-텍스트 변환 기술을 통해 상담 내용을 다시보기 기능을 제공한다. 최다은 기자
소비자의 불만족은 소비자 특정되지 않도록 전달한다. 천명의 서비스 후기는 익명으로 남기고 싶은지, 천명팀에게만 전달하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정보기술(IT)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 질을 높이기도 했다. 개인별 맞춤형 선생님 큐레이션, 머신러닝 기반 선생님 추천, 음성-텍스트 변환 기술을 통한 상담내용 다시 보기, 다시 듣기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그간 점술 업계는 공급자 입장에서도 불편한 점이 많았다. 정해진 시간에 한 팀만 받을 수 있는 업의 특성상 사업 확장과 관리에 어려움이 있었다. 천명은 손님 관리 자동화를 도입해 선생님들의 스케줄링 시간을 간소화했다. 안전 결제를 도입해 ‘노쇼’ 등을 방지하기도 했다.

또, 시설이 낙후된 곳이 대부분인데 업 특성상 임차가 쉽지 않았다. 천명은 독점 가맹계약을 통해 이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천명 온리’에 대한 독점 가맹 계약을 맺어 간판이나 내부 인테리어, 어메니티 같은 것들 멋지게 꾸밀 예정입니다. 과거 pc방도 담배 연기 자욱하고 퇴폐적이었지만 요즘에는 깔끔하잖아요. 점술에 대한 인식이 양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좋은 점술인 모셔라... 산 속 굿당까지 가서 홍보

퀄리티 좋은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우수한 점술인을 유치해야 한다. 우수한 점술인을 어떻게 입점하게 할 것인가. 대단한 점술인이 굳이 플랫폼에 있을 이유가 있나. 플랫폼의 영원한 숙제다.

음지의 시장에서 신빨이 좋은 점술인을 선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점술인들이 돈을 들여가며 플랫폼에 입점해 브랜딩한 뒤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것과 같은 변화의 '의지'도 크지 않았다. 천명에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점술인의 비율은 40% 정도다. 나머지 60%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들을 일일이 설득해야 했다.

우선 '콜드 콜' 방식으로 일일이 점술가를 찾아 전화했다. 점술인이 주로 쓰는 '도사폰' 같은 앱에 기업 간 거래(B2B) 형태로 입점한 뒤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산길에 있는 수백개의 굿당(굿 행사 같은 거 할 때 대관 장소)을 돌아다니며 천명 로고가 박힌 라이터를 공급하며 브랜드를 알리기도 했다.
서비스를 설명하고 있는 유현재 공동대표. 시장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았던 초창기엔 투자사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다은 기자
투자를 끌어내는 일도 시련이었다. 수치조차 명확하지 않은 시장 탓에 투자자들의 의구심을 지우는 일이 어려웠다. '잘 모르겠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다 알토스벤처스와 네이버 계열 VC인 스프링캠프가 손을 내밀었다.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두 대표는 "우리 같은 '얼리 스테이지'에 있는 스타트업들에겐 VC의 존재가 인생을 함께할 부부관계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잠재력을 알아봐 준 투자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두 대표는 알토스벤처스를 만날 당시 기업설명회(IR)를 다니면서 전략을 바꿨다. 이를테면 회사가 '잘하는 것'보다 '못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신뢰가 담보돼야 할 점술 업계에서 솔직하게 한계를 말하는 전략은 통했다. '얘들은 거짓말로 사고 치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을 심어주려 했다. 정직한 자세로 비전을 이루는 데만 집중한다는 걸 어필하고 싶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중후한 그 이름, 천명(天命)

혁신을 지향하되 점술이라는 업의 본질을 살리고자 했다. 스타트업답지 않게 묵직한 ‘천명’이라는 작명이 대표적이다. 천명은 전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는 “점술 상담의 근본적 가치가 미래에 대한 고민 해결이고 이를 진중한 형태로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사업 초반 많은 토론을 거쳤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이름이 다소 올드해 보인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시중에는 친근하고 캐주얼한 점술 앱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천명이라는 이름은 기존 ARS 역술 사이트와 유사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소신은 견고했다. 천명의 서비스는 점술 콘텐츠가 아닌 역술인과 이용자를 연결해주는 것이기에 산뜻함보단 신뢰감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갖고 있고 이를 잘 해결할 수 있는 게 ‘하늘의 뜻’이잖아요. 천명이라는 이름이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믿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

서비스의 신뢰만큼이나 조직문화도 신뢰를 중시한다. '좋은 조직은 좋은 사람이 만든다'는 철학을 가진 두 대표는 '도덕성'을 가장 큰 가치로 보고 있다. 이들은 "입소문이 중요한 점술 사업은 비도덕적인 행태가 적발돼 소문이 나면 바로 망하는 구조"라며 "숫자를 만들기 바쁜 상황에서도 '옳은 일을 하자'는 마인드로 똘똘 뭉쳐 있다"고 했다.
천명팀은 서비스에서의 신뢰뿐 아니라 조직 문화에서도 신뢰를 중시한다. 하이퍼 케어 제도를 도입해 모든 구성원들이 담당 매니저를 통해 밀착 케어를 받도록 했다. 사진=게이티이미지뱅크
직원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천명에는 20여 명의 직원에 대한 '하이퍼 케어'를 하는 독특한 사내 문화가 있다. 모든 구성원 한명 한명에 각자의 담당 매니저가 배정되는 일종의 '멘토-멘티' 제도다. 일상 이야기부터 커리어, 자아실현까지 다양한 주제를 세세하게 챙겨준다. 팀원 모두가 '빛나는 별'로 대접받게 해주겠다는 취지다.

덕분에 2년 반 동안 퇴사한 직원이 한 명도 없다. 한때 월급이 밀리기 직전까지 갔지만 누구도 회사가 성장할 거란 믿음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직원들의 '꿈'을 책임지는 게 20대 후반의 두 대표에겐 버거운 일이었지만 솔선수범해 회사를 이끌었다. 유 대표가 아빠라면, 전 대표는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

K-점술 전파 꿈꾼다

해외에도 저마다 점술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시장규모도 상당하다. 일본은 10조, 인도 50조, 중국 15조, 미국은 2조 정도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자팔라스', '미디어코보', '컨피던스' 등 점술 분야 상장사가 여러 곳 존재하기도 한다.

영미권의 점술 스타트업 ‘코-스타’(Co–Star)도 최근 21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코-스타는 미국 NASA의 행성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아와서 별을 활용한 운세를 제공한다. 이처럼 동양권뿐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운세’에 대한 믿음이 강하게 포진돼 있다.
행성 정보를 활용한 운세 서비스. 미국의 코-스타 서비스 사진. 코-스타 홈페이지 캡쳐.
천명은 우선 국내 시장을 확실히 점유한 뒤 해외에 진출할 예정이다. 두 대표는 “2025년께 일본 진출도 조심스럽게 계획 중”이라며 “로컬라이즈를 잘 해야 하는 분야인 만큼 국내부터 확실히 성공한 뒤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상담의 퀄리티를 높이고 선생님을 공격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연내에 선생님 2500명, 독점 가맹 계약 50건 달성이 목표다. 사주나 타로 같은 교육 기관과 제휴를 맺어 졸업생을 대상 천명 선생님으로 모셔 오는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다.“고대 그리스 우화에 ‘여우와 고슴도치‘ 이야기가 있어요. 여우는 많은 걸 알지만 고슴도치는 하나의 큰 걸 안다는 이야기 인데요, 우리는 고슴도치처럼 이 분야를 정말 깊게 파고들다 보면 이 시장 전부를 혁신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최다은/김종우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