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로 세상얻기] 부동산은 왜 경매시장에 나올까?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이번에는 원론적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업무나 교육 중에 빠트리지 않고 받는 숱한 질문 중 하나가 “팔아서 빚을 청산하면 되지 부동산이 왜 경매시장에 나오느냐?” 하는 것이다.
충분히 궁금해 할 수 있는 사안이다. 부동산을 매각해서 빚을 갚으면 될 텐데 왜 경매에 부쳐질 때까지 그냥 수수방관하고 있느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이다. 그러나 이는 부동산 소유자(채무자)의 사정을 모르는 말씀! 채무자라고 그냥 지내고 싶어서 지냈을까!
그렇다면 부동산이 왜 경매시장까지 내몰리게 될까? 경매가 무엇인지를 알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경매는 채무자가 사법상 개인의 청구권에 대한 이행의무를 실현하지 않을 경우 국가공권력(집행기능)으로 채무이행을 강제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집행구제방법이자 채권자와 채무자간 채권채무에 대한 강제조정절차이기도 하다.
왜 부동산이 경매시장에 나오느냐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바로 경매가 채권자와 채무자간 채권채무에 대한 강제조정절차라는 데에 있다. 부연하여 설명해 보자.
부동산은 채무자(또는 소유자)의 사정으로 인해 등기부등본에 여러 가지 권리들이 설정돼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부동산에 따라 한 두 개 정도의 간단한 권리만 설정돼 있거나 전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경매시장에 나올 정도의 물건은 대출을 목적으로 설정된 근저당권, 개인 신용관계에 기해 설정된 가압류, 임대차관계에 기해 설정된 전세권 등 많은 권리가 복잡하게 설정돼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건에 따라서는 가등기나 가처분, 지역권, 지상권 등도 설정돼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권리가 설정돼 있는 경우 일반매매를 통해서는 이들 채권자들의 권리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각 채권자들이 누구 하나 손해를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공권력이 개입하여 이들 채권자들의 권리를 강제로 조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경매다.
경매는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하면 이를 압류하고 환가하고 배당하는 절차를 갖는다. 압류는 경매대상 부동산에 대한 경매개시결정(등기)를 말하는 것이고, 환가는 매각기일(=경매기일)에의 매각을, 배당은 일정한 배당원칙에 기해 환가대금(=매각대금)을 각 채권자에게 배분해주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시세가 5억원 하는 아파트에 근저당 3억원, 전세권 2억원, 가압류 4천만원, 가압류 4천만원이 순서대로 각각 설정돼 있다고 하자.
이렇게 권리가 복잡하게 설정돼 있는 부동산을 매매를 통해 거래하고자 할 때 부동산 위의 권리자, 즉 채권자들의 채권액을 모두 만족시킬 수가 없다. 5억원에 매각이 되었다고 가정하고 이 금액으로 채권자에게 배분해도 8천만원이 부족하다. 2건의 가압류채권자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각각의 채권자들이 조금씩 손해를 보는 식으로 양보해야 문제가 해결되지만 누구 하나 자기 채권액을 손해 보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반 매매를 통해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다. 특히 위 사례에서의 후순위 권리자인 가압류채권자들이 채권액을 상환받지 못하는 한 매매에 동의해줄 리도 만무하다.
설령 매매가 된다고 한들 등기부등본에 설정된 위 후순위 가압류 2건을 가압류 채권자가 말소시켜줄 리도 없다. 가압류가 말소되지 않고 등기부등본에 그대로 남는다면 그런 물건을 매수하려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일반시장에서 거래가 어려운 거다.
이 물건을 경매로 처분하는 경우에는 어떤가? 경매에서는 권리의 인수 또는 말소주의가 적용된다. 즉 (근)저당, (가)압류, 담보가등기 등 이른바 말소기준권리라 하는 권리를 기준으로 이보다 선행하여 설정된 다른 권리가 있으면 이는 말소되지 않고 매수인(낙찰자)에게 인수되지만, 말소기준권리보다 후행하여 설정된 권리는 말소된다는 원칙이다.
위 사례에서 경매 매각기일에 매각이 된다면 제일 선행하여 설정된 근저당을 말소기준권리로 하여 이하의 전세권 1건과 가압류 2건은 채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두 말소대상이 된다.
각 채권자들에 대한 배당도 일정한 배당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최초감정가를 5억원으로 가정하고 첫 매각기일에 5억원에 매각이 됐다면 최초 근저당권자에게 3억원, 전세권자에게 2억원이 배당되고 이하 2건의 가압류채권자에게는 한 푼도 배당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역시 채권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배당이 이루어지고 가압류채권자가 자기 채권액을 배당받지 못했다고 해서 매각(=낙찰)이 무효라거나 매각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도 없다.
만약 위 물건이 4억원에 매각이 됐다면 최초 근저당권자에게 3억원이 배당되고 전세권자에게는 채권액 2억원 중 배당하고 남은 잔액 1억원만 배당이 된다. 전세권자 역시 배당받지 못한 1억원을 이유로 매각의 무효나 매각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매각으로 인한 권리의 말소나 인수, 매각대금의 채권자에의 배당이 채권자의 자의적인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강제적이고도 규칙으로 정해진 일정한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 그럼으로써 채권자와 채무자간 채권채무의 강제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바로 경매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왜 부동산이 경매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복잡한 권리관계에 대한 강제조정이라는 것 외에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부동산이 경매로 나오는 이유도 있다.
즉 부동산 가격이 담보대출액 또는 여타 채권액을 합한 금액보다 높은 경우 일반 매매거래를 통해 채무를 변제할 수 있지만 매물을 내놓아도 시장침체 여파로 오랫동안 거래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요즈음이 그런 시기이다.
채무자가 보유 부동산을 매각하고 싶어도 매각이 안되는 상황을 대출금융기관이 언제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그 외에도 채무자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을 팔면 채무변제하고 남는 금액이 거의 없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집을 팔지도 못하고 주저하다 경매 처분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이처럼 경매물건은 일반매매로는 해결할 수 없는 권리관계의 난해함, 팔래야 팔 수 없는 시장상황, 채무자 개인의 궁박한 사정 등이 한데 어우러져 경매시장에 던져지는 물건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채무자(또는 소유자)의 부동산이 경매 처분된다고 해서 ‘왜 부동산을 팔아서 채무를 상환하지 못할까?’ 하는 식으로 그들을 바보취급하지는 말지어다.
카페: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경매투자자들의 모임(http://cafe.daum.net/ewauction)(주)이웰에셋(www.e-wellasset.co.kr) 문의: 02-2055-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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