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거래 부동산 내에서 벌어진 자살(살인) 사건에 대한 고지의무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건물을 매매하거나 임대차할 때, 해당 건물 내에서 자살 사건이 있었다면 이를 거래 상대방에게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부동산매매나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후 나중에 이를 알게 된 매수인이나 임차인이 계약해제나 취소를 주장하는 분쟁이 적지 않은데, 이 때 고지의무의 범위가 문제되곤 한다.

최근 필자는, 임대차기간 도중에 해당 임대차목적물 내에서 며칠 전 발생한 임차인 가족의 자살 사건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계약해지에 협조하기로 했다가 자살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게 되면서 신규임차인과의 임대차계약이 파기된 이후, 기존 임차인으로부터 임대차보증금반환 소송을 제기당하게 된 임대인(의뢰인)으로부터 소송을 의뢰받았다. 소를 제기한 이 임차인은 ‘며칠 전 발생한 자살사건을 은폐한 채 임대인에게 계약해지를 부탁하였고 그 때문에 새로운 임대차계약 과정에도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못한 점은 인정하지만, 자살사실을 고지할 의무가 없으며, 경위불문하고 합의해지되었으니 합의된 대로 보증금을 반환해달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임대인을 대리하여 필자가 제출한 답변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사건의 경위

가. 피고는 2015. 6. 2. 소외 망 김00(이하 ‘망인’이라고 합니다)에게 서울 00구 000로400길 16(00동) 제00층 제000호(이하 ‘이 사건 부동산’이라고 합니다)를 임대차보증금 110,000,000원, 차임 월 250,000원(매월 10일 선불로 지급), 기간 2015. 6. 10.부터 2017. 6. 9.까지 2년으로 정하여 임대하는 계약(이하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라고 합니다)을 체결하였습니다. 나. 그런데 임대차 기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2015. 9. 3. 18:30 경 피고는 망인의 아들인 원고 김00으로부터 ‘이사를 하고 싶은데 부동산 중개비를 부담할 테니 집을 내놓아도 되느냐’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5. 9. 1. 이 사건 부동산에서의 망인의 자살 사실을 전혀 고지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승낙하고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는 것을 전제로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다. 이 사건 부동산을 임대 목적물로 내놓은 즉시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성사되어, 피고는 2015. 9. 5. 00부동산(공인중개사 정00)과 000부동산의 공동중개로 소외 이00에게 이 사건 부동산을 임대차보증금 100,000,000원, 차임 월 300,000원(매월 3일 선불로 지급), 기간 2015. 10. 3.부터 2017. 10. 3.까지 2년으로 정하여 임대하는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을1).

라. 며칠 후인 2015. 9. 8. 피고는, 00부동산 정00 공인중개사를 통해 ① 2015. 9. 1. 망인이 이 사건 부동산 내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 ② 아들인 원고 김00이 부친 사망 불과 이틀 만에 자살 사건에 대해서 일언반구 언급 없이 이 사건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피고에게 연락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 이와 같은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이상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피고는, 2015. 9. 중순경 소외 이00에게 직접 내지 00부동산을 통해서 기존 임차인의 자살 사실을 고지하여 임대차계약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을2). 소외 이00은 처음에는 이사기일이 촉박한 불가피한 상황이었기에 계약유지의 조건으로 도배를 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피고 또한 이를 수락하였으나, 이내 입장을 바꿔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자살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주거용 임대차로는 도저히 부적합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결국 피고는 2015. 9. 17. 소외 이00과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기로 합의하면서(을3) 이미 받았던 계약금을 동인에게 반환하였고,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사실을 원고들에게 통보하였습니다.

바. 이렇게 임대차계약이 해지된 이후에는 이 사건 부동산에서의 흉사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관계로 임차인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원고들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 이후 두 건의 새로운 계약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무근입니다).

2.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합의해지 여부 가.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합의해지 여부’라 할 것인데,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해지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으므로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없어 배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 피고가 원고 김00으로부터 ‘집을 내놓아도 되느냐’는 연락을 받은 시기는 이 사건 임대차계약 기간이 불과 3개월 남짓 경과한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1년 9개월가량 계약기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피고로서는 원고 김00의 부탁을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임차인의 편의와 임대차계약 관행 등에 따라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아 이 사건 임대차계약의 중도해지에 합의했던 것입니다.

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소외 이00과의 임대차계약은 계약금만을 지급받은 이후 곧바로 파기되고 말았습니다. 피고가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원고들에게 통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추후 소외 이00이 실제로 전입하게 될 경우 이사 날짜의 혼선으로 인한 차질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을 뿐 결코 최종적인 합의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외 이00으로부터 지급받은 계약금을 원고들에게 전달하지 않은 채 보관하고 있었던 것 역시 망인의 자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새로운 임대차계약의 파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라. 이 사건 임대차계약 합의해지의 전제조건이 된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는 것’이라 함은, 단순히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확정적으로 새로운 임차인이 전입하여 이 사건 부동산에서 거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해석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자가 단순 변심하여 계약금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도 임대인은 기존 임대차계약의 효력을 주장할 수 없게 되어 매우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을1 ‘제6조’ 참조).

마. 따라서 피고가 소외 이00과의 사이에 ‘새로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교부받은 사실’만으로는 합의해지를 위한 조건이 성취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조건의 불성취로 인하여 이 사건 임대차계약은 여전히 유효하게 존속하고 있다고 해석함이 상당합니다.

3. 원고들의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 반환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합니다.
가사 자살 사실에 관해 피고가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중도해지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이를 고지하지 않은 원고들이 이제 와서 피고에게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은 신의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합니다.

피고가 망인의 자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결코 계약해지를 흔쾌히 승낙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승낙하는 경우에도 ‘새로운 임차인이 확정적으로 구해지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는 의사표시를 보다 명확히 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자살 사실이 어느 정도 잊혀질 때까지는 이 사건 부동산에 거주하려는 임차인을 구하기 힘드리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예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소외 이00에게도 미리 흉사 사실을 고지함으로써 새로운 임대차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신중을 기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망인의 자살 사실은 신의칙상 원고들이 피고에게 고지하여야 할 내용임이 분명한데도, 이를 전혀 고지하지 않은 원고들이 이 사건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청구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습니다.

피고가 원고들의 청구대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면, 새롭게 입주하겠다고 하는 임차인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므로 적어도 수년간은 이 사건 부동산을 아무런 활용도 하지 못한 채 비워두게 될 것인데, 이는 단지 원고들의 편의를 봐주고자 했다는 이유만으로 감당하기에는 피고에게 너무나 가혹한 결과입니다.

4. 결어
원고들은 계속해서 협박 및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임대차보증금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지 않은 이상 피고로서는 보증금을 반환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설령 중도해지가 합의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의 청구는 권리남용에 해당되어 배척되어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 사건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 번째는, 우리 사회 전반적인 정직성의 문제이다.

이 사건에서는 불과 며칠 전 발생한 자살 사건을 은폐한 임차인의 태도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가 쟁점이고, 또 몇 년 전에는 자살사실을 고지하지 않은 채 매매계약하고 이전등기까지 마쳐진 상태에서 매수인이 계약해제를 주장하여 인용된 판결이 있었지만, 이와 같은 신의칙상 고지의무의 법적인 판단은 구체적인 케이스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사실 판단이 쉽지 않다.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가 무엇인지, 얼마나 경과된 사건인지, 임대차목적물의 종류가 주거인지 영업용 건물인지 등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적인 판단을 떠나서 “정직”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매우 낮은 수준이고 부동산거래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무경험 때문인지 이런 사기성 속임수는 다른 분야에 비해 부동산분야가 더 심하다고 생각된다. 이 사건은 자살 사건을 임차인이 은폐한 경우이지만, 임대인이나 심지어 전문가라고 하는 부동산중개업자마저도 돈 욕심 때문에 이런 상식에 속하는 사실에 대해서마저 은폐하기 일쑤이다. 재판도 우리 문화의 일부인 이상 우리 사회에서 보편화된 “사회상규”라는 잣대로 판단하게 되지만, 우리 거래문화를 선도하는 차원에서 보자면 “정직”과 “신뢰”라는 보다 엄격한 잣대를 통해 정직하지 못한 측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판단이 대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는, 합의내용을 서면화하는 데 게으른 관행의 문제이다.

위 사건에서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면 기존 임대차계약을 중도해지해주겠다’는 구두로 전달된 임대인의 의사표시를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다시 말하면 중도해지의 조건이 새로운 임차인과의 계약체결인지, 아니면 새로운 임차인이 입주하게 되는 경우를 의미하는 것인지 판단은 애매할 수 있다. 이런 논란은 이 사건과 같은 자살 사건이 아니더라도 임대차기간 중 중도해지하는 일반적인 경우에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거래규모나 내용에 걸맞는 적절한 계약내용의 문서화가 정착되어져야 한다.

다음은, 살인사건이 발생한 점포에 대한 임대차계약체결 과정에서의 분쟁을 소재로 한 필자의 예전 칼럼내용인데, 계약내용 서면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소개한다.



현재 필자가 진행하고 있는 실제 소송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필자의 의뢰인은 몇 달 전에 인천의 모 식당 점포하나를 임대했는데, 원래 그 점포는 약 1년 전에 점포 안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몇 개월간 비워져 있다가 최근에 다른 사람에게 임대가 되었다고 한다. 의뢰인 주장에 의하면, 계약과정에서 이와 같은 좋지 않은 과거가 모두 임차인에게 이야기되어졌고, 이런 점을 반영하여 시세보다 싸게 임대차계약체결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상대방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임대차계약과정에서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보증금을 전부 지급하고 개점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상대방은 이런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임대차계약이 취소 내지 해제될 수 있으므로 지급한 임대차보증금반환은 물론, 개점준비과정에서 들어간 각종 비용(인테리어, 홍보비 등)상당의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반면에 의뢰인의 주장은, 이런 과거를 모두 알고서 계약한 임차인이 영업을 하지 못하는 개인적인 다른 사정이 있어 영업을 하지 않기 위한 구실로 이미 계약과정에서 양해되고 넘어간 문제를 끄집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재판에서는 임대인인 의뢰인 뿐 아니라 거래를 담당했던 중개업자까지 모두 피고로 되어 버려 객관적인 증인마저 확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상대방인 원고 측은 원고의 가족을, 의뢰인인 피고 측은 중개보조원을 증인으로 신청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들의 증언마저 정반대로 이루어질 형국이다. 결국 어느 한쪽은 완전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인데, 객관적인 증인마저 없으니 재판부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정황을 근거로 판단할 수밖에 없어 사실관계 판단이 매우 어려울 수 있는 사안이고, 심지어는 사실관계에 관한 법적인 판단이 진실과 다를 수 있는 소지도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처럼, 계약과정에서 오고간 과정들이 정확하게 계약서상에 반영되어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더구나, 계약서를 중시하는 사회적인 관행과 더불어 부동산거래과정에서 변호사참여가 관행화된 미국이다보니 향후 재판에서는 거래과정에서 오고간 대화와 관련된 사실관계가 분쟁이 되었을 때 중립적인 변호사가 증인으로 나갈 수도 있어, 사실관계에서의 주장차이가 크게 발생할 가능성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적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사건은 앞서 소개한 자살사건과 달리 임대차대상이 주거가 아니라 상가점포인데다가, 개점비용도 상당히 소요되어졌기 때문에 주택 내에서의 자살 사건보다 분쟁규모가 컸었는데, 계약의 특성과 규모에 걸맞는 적절한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칼럼에서 인용된 판결의 전문은 최광석 변호사의 홈페이지인 www.lawtis.com 에서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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