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포트폴리오] 부동자금 1200조원 시대, 기준금리 인하가 부동산시장에 미칠 여파를 생각하며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부동자금 1200조원 시대가 현실화된 가운데 최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수준인 1.25%로 낮추었다. 이는 미중무역분쟁, 한일경제갈등, 내수경기침체와 같은 국내외 경제여건이 악화되면서 경기침체 심화를 우려한 정부의 고육지책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내심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시중의 자금흐름을 원활히 개선시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문제는 가야할 곳을 잃은 부동자금 1200조원의 향배다. 현금, 요구불예금, MMF(머니마켓펀드) 등 단기성 부동자금이 넘쳐나고 있는 가운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눈치보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상 최저수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정부의 의도대로 시장경제를 활성화시키는데 일조한다면 천만다행이지만 정부의 의도와 달리 부동자금 1200조원과 맞물려 혹여 부동산시장을 자극하지는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미 시중에 1200조원에 달하는 부동자금이 풀려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책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정부의 잇따른 규제정책에도 쉽사리 꺾이지 않고 있는 서울 아파트 가격을 더욱 자극하지는 않을까 다소 염려스럽기만 하다. 실제로 기준금리 인하 직후의 한국감정원 주간 아파트 가격동향(2019.10.14. 기준)을 살펴보더라도 정부의 강력한 규제책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 값은 꺾이기는커녕 전국 기준치(0.02% 상승)보다 훨씬 높은 007%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 여파가 오히려 서울 아파트시장을 유망투자처 내지 안전자산시장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씁쓸하기까지 하다. 최악의 경우는 금번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9.13 부동산대책 등을 총동원한 덕분에 그나마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주택시장에 새로운 유인책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주택시장에 투기를 부추기는 잘못된 시그널로 인식되지는 않을까하는 점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부동자금 1200조원 시대가 초저금리 기조와 맞물리면서 근래 들어 개인들뿐만이 아니라 기업들마저 부동산을 안전자산 내지 유망투자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전국 곳곳에서 기업들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자로 비중을 넓히고 있다는 말이 속속들이 들려온다. 사실 기업들이 지금껏 사내유보금을 적지 않게 쌓아놓고서도 선뜻 설비투자 등에 나서지 않는 것은 금리가 높아서라기보다는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부동산시장을 안전자산시장 내지 유망투자처시장으로 인식하면서 설비투자 등을 통하여 생산이익 내지 영업이익을 확대시키기 보다는 자산의 단순 매각차이를 기대하고 부동산을 매입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하니 걱정이 앞선다.

국내외 경기침체 확산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책은 필요하다. 다만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잠시 머물고 있는 부동자금이 이미 1200조원을 넘어선 현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마땅한 유인책 없이 경기를 부양시킬 목적으로 돈을 풀기만한다면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경기부양을 위하여 기준금리를 좀 더 인하하더라도 부동산 투기 확산이나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부동산 투기를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언해왔던 정부를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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